맥주

[역사] 어떤 종류의 술이 가장 오래되었을까?

까브드맹 2023. 11. 17. 18:30

우르크 유적에서 출토된 BC 3100년경의 맥주 제조법
<우르크 유적에서 출토된 BC 3100년경의 맥주 제조법. 이미지 출처 : https://allthatsinteresting.com/sumerian-tablet-first-signature>

1. 인류의 역사와 술의 출현

인류 역사에서 술의 출현은 꽤 오래된 일입니다. 인간이 문자로 역사를 기록할 때도 술은 있었죠. 아마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기 전부터 술은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 생체분자학 연구소의 과학 담당 국장이면서 같은 대학 인류학과 겸임교수인 패트릭 E. 맥거번은 자신의 저술인 <술의 세계사>에서 “농경의 기원은 배고픔보다는 갈증이 더 큰 계기였을 것”이라며 ‘맥주에 대한 갈망’이 바로 농경 정착 사회가 시작된 원인이라고 단언합니다.

맥거번 교수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선 발효주를 만들었던 사실이 확인되며, 고대인이 우연히 술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물웅덩이에 우연히 떨어져 발효된 보리나 쌀 같은 발아 곡물들을 주워 먹었을 것’이라는 것이죠. 고대인들은 이런 곡물을 먹다가 즙을 내서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더 많이 즐기려고 한곳에 정착해서 곡물을 기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식량을 얻으려고 함께 모여 농경을 시작했다는 기존 가설과 완전히 다른 접근이죠.

정확히 언제부터 술이 인류와 함께했는지 확인하긴 힘들지만, 동서양의 각종 신화, 예를 들어 수메르의 홍수 설화에서 방주를 만들 때 노동자들에게 술과 기름을 주었다는 이야기,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에 취한 노아 이야기, 신하가 발견한(?) 곡식이 썩어 생긴 이상한 물을 맛보고 취한 요임금 이야기 등을 통해 볼 때 아주아주 옛날부터 술은 인간의 옆에서 고락을 같이했던 음료수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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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맥주의 탄생

술 중에서 어떤 종류의 술이 가장 오래되었을까요?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술의 하나가 맥주입니다. 고대 수메르 유적에서 일꾼들이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주점에 모여 맥주를 한잔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는 점토판이 발견되었으니, 맥주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되었죠. 적어도 5,000년 이상일 거라 생각됩니다.

2018년 9월 16일 자 과학기술 정보지 ‘사이언스 얼러트(Science Alert)’는 약 1만 3700년 전에 있었던 맥주 공장(brewery) 유적을 발굴했다는 ‘예루살렘 포스트’의 기사를 인용 보도했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이스라엘 북부 지중해 연안의 카멜산 라케페트 동굴(Rakefet Cave)에서 중석기 시대에 조성된 무덤을 발굴하던 중 3개의 돌절구(stone mortars)를 발견했고, 돌절구에 남은 성분을 분석해 보니 으깨진 보리와 밀이 발효해서 만들어진 것이란 걸 밝혀냈으며, 그 성분이 오래도록 보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반유목의 수렵, 어로인들이 사용한 3개의 돌절구에서 1만 3700~1만 1700년 전에 곡물로 맥주를 양조한 흔적을 발견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중석기 시대에 원시 공동체를 유지하는 장례 의식이나 축제 등의 중요한 의례에서 맥주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였다고 추정하면서 채취한 곡물로 맥주를 만들어 마셨다고 분석했죠.

 

 

3. 그렇다면 와인은?

와인으로 대표되는 과실주의 역사는 맥주보다 더 오래되었을 거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와인은 포도만 있으면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포도의 당분은 단당류라 포도 껍질 표면에 있는 효모가 바로 먹고 알코올을 만들어 낼 수 있고, 포도알에는 수분이 충분해서 효모가 활동하기 좋습니다. 그래서 고대인은 땅에 파묻은 항아리에 포도를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와인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맥주는 효모가 보리나 다른 곡물의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있도록 껍질을 벗기는 도정(搗精)과 다당으로 구성된 분자 구조를 분해해서 단당류로 만들어 주는 '당화(糖化)'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여기에 효모가 잘 활동할 수 있도록 물도 부어줘야 하죠. 그래야 효모가 당분을 섭취하여 알코올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맥주는 와인보다 인류의 식품학적 지식이 더 축적된 후에야 만들어질 수 있는 술이라는 얘기죠.

그렇지만, 유물로 밝혀진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술"은 맥주입니다. 와인 유물은 약 8,000년 전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거든요. 아직 더 오래된 와인 유물이 발견되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면 맥주가 먼저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일까요? 더 많은 유물이 발견되고 관련 연구가 진행되어야 밝혀질 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

1. 패트릭 E. 맥거번 (지은이), 김형근 (옮긴이), <술의 세계(Uncorking the Past: The Quest for Wine, Beer, and Other Alcoholic Beverages)>, 서울 : 글항아리, 2016

2. 더 사이언스 타임즈, <맥주 역사 5000년 앞당겼다>, 2018.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