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포도 품종

[품종] 양조용 포도에 관하여 (재업)

까브드맹 2023. 11. 16. 20:00

다양한 양조용 포도
<다양한 양조용 포도>

최근 20년간 국내에 불어닥친 와인 열풍 덕분에 많은 분이 와인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마트와 편의점에도 다양한 지역의 각양각색 와인들이 와인을 처음 접하려는 분이나 오랫동안 마셔왔던 분을 유혹하고 있죠. 그런데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호주, 칠레 등등의 와인은 있는데 왜 우리나라 와인은 찾아보기 힘든 걸까요?

1. 국산 와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도 와인이 나옵니다. "마주앙"이라는 브랜드는 많은 분이 익숙하게 들어본 와인일 겁니다. 하지만 마주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와인의 대다수는 국내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것이 아니고 세계 각지에서 주문자 생산방식(OEM)으로 들여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요?

마주앙 모젤 화이트 와인
<마주앙&nbsp;모젤&nbsp;화이트&nbsp;와인>

마주앙 모젤이라는 와인은 국내 회사에서 출시하는 와인이지만, 내용물은 독일의 모젤강변에서 재배한 리슬링이라는 포도로 만든 다음 라벨(에티켓이라고도 합니다.)만 국내 회사의 것으로 부착해서 들여오는 것입니다.

왜 국내에서는 와인을 잘 만들지 않는 걸까요? 양조 기술이 부족한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국내의 주류 회사들이 와인을 잘 만들지 않는 결정적 이유는 와인 양조용 포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잘 자라는 캠벨이나 거봉 같은 식용 포도는 와인으로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죠.

와인 양조에 적합한 품종은 모두 유럽종 포도이고, 유럽종 포도는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라서 이른바 '지중해성 기후'라고 부르는 서안해양성 기후 지역이나 대륙성 기후 지역에서 잘 자랍니다. 캘리포니아 같은 세계 각지의 유명 포도 산지는 이러한 서안해양성 기후 지역이거나 대륙성 기후 지역이고, 적어도 비슷한 기후를 가진 곳입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기후는 양조용 포도를 기르기에 알맞지 않고 토양도 적합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와인을 만들려면 질 좋은 양조용 포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여건이 불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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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도의 종류

양조용 포도는 식용포도와 어떻게 차이가 나는 걸까요? 포도는 크게 세 품종으로 나눕니다.

1) 유럽 종(Vitis Vinfera)

고급 와인을 양조할 때 사용하는 포도로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입니다. 중앙아시아에서 그리스로 넘어가고, 다시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 지역으로 재배지가 확대되면서 오랫동안 유럽에서 길러왔고, 다양한 품종으로 분화되었습니다.

더운 지방인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이기 때문에 추위에 약한 편입니다. 샤르도네(Chardonnay), 리슬링(Riesling),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등의 품종이 있습니다.

2) 미국 종(Vitis Labrusca)

미국에서 자생하던 포도로 추운 날씨에 강하지만, 폭시 그레이프(foxy grape)라는 독특한 냄새가 나고 장기 숙성을 하면 맛이 변해서 와인을 만들기엔 좋지 않습니다. 유럽인들이 미국에 처음 정착했을 때 해안가에 잔뜩 열린 미국종 포도를 보고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흥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200여 년 동안 미국종 포도로 와인을 만들려는 노력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죠. 이때 미국 종으로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의 눈물을 흘리고 만 사람 중에는 미국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도 있었습니다.

콩코드, 카타와, 델라웨어 등의 품종이 있고 국내에서 많이 재배하는 캠밸 얼리도 미국 종입니다. 주로 포도 주스를 만들 때 사용됩니다.

3) 동북아시아 종

동북아시아에서 자생하는 포도들입니다. 비티스 아무렌시스(Vitis Amurensis)는 러시아와 중국에 걸쳐 있는 아무르 계곡에서 이름을 땄습니다. 주스와 잼, 술 제조에 사용합니다. 비티스 코와이네티아(Vitis coignetiae)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머루 포도로 극동 러시아와 일본에서도 발견됩니다.

그 외에 유럽 종과 미국 종을 교배한 교잡종(Hybrid)이 있습니다. 세발 블랑(Seyval Blanc), 라바트(Ravat), 바코 누아(Baco Noir) 등의 품종이 있고, 역시 고급 와인 양조에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3. 양조용 포도와 식용 포도의 비교

양조용 포도와 식용 포도의 차이점은 뭘까요? 우선 식용포도는 껍질이 얇고, 알맹이가 큰 편입니다. 당도가 높아도 쉽게 물릴 정도는 아니죠. 하지만 양조용 포도는 껍질이 두껍고, 알맹이가 작습니다.

양조용 포도인 피노 누아의 단면 모습
<양조용 포도인 피노 누아의 단면 모습. 두꺼운 껍질과 큰 씨가 보입니다>

껍질이 두꺼운 것은 레드 와인 양조에 꼭 필요한 성분인 탄닌이 껍질과 씨앗에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껍질이 얇은 품종은 종자 개량을 통해 점차 사라지고 껍질이 두꺼운 품종이 주로 남게 된 거죠. 양조용 포도는 당도가 높아서 한 송이만 먹어도 물릴 정도입니다.

4. 양조용 포도의 주요 성분과 성분의 역할

1) 효모

포도 껍질에 붙어있는 효모는 와인 양조 시에 발효 작용을 해서 와인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효모는 포도의 당분을 먹고 알코올과 탄산가스를 배출하는데, 자기가 배출한 알코올의 농도가 강해지면 죽어버리고 맙니다. 포도만 사용해도 포도알의 수분과 껍질의 효모로 와인을 만들 수 있지만, 더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인공적으로 배양한 효모를 넣기도 합니다. 인공 효모를 사용하면 맛과 향을 균일하게 할 수 있고, 알코올 도수를 더 높게 만들 수 있습니다.

2) 당분

포도 알맹이에 있고 효모의 밥 역할을 합니다. 발효 작용을 거치면서 당분은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변화되죠. 포도의 당도가 올라가려면 기온이 일정하고 일조량이 풍부해야 합니다. 햇살이 너무 뜨거우면 농익어 버리고, 비가 많이 오면 일조량이 부족하고 포도알에 수분이 많아져서 당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장마철 과일에 단맛이 적은 이유이기도 하죠.

 

 

3) 탄닌

감을 먹으면 떫은맛이 나는 바로 그 성분으로 포도 껍질과 씨, 줄기 등에 들어있습니다. 탄닌은 세균의 번식을 막는 방부제 역할과 산화를 막는 산화방지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탄닌이 많은 포도로 만든 와인은 오랜 기간 동안 보관이 가능하죠. 탄닌이 거의 안 들어간 화이트 와인이 레드 와인보다 오래 보관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탄닌은 처음엔 떫고 거칠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변해서 나중에는 입에 꽉 차면서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탄닌은 인체의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작용도 합니다.

4) 안토시아닌

안토시아닌(anthocyanin)은 꽃과 과일, 곡류의 적색, 청색, 자색을 표현해 주는 플라비노이드계의 수용성 색소입니다. 검게 보이지만 짙은 붉은색이나 진보라색에 가깝죠. 포도 껍질에 포함되어 레드 와인의 색깔을 만들고, 강력한 항산화 물질로써 혈전 형성을 억제해 심장질환과 뇌졸중 위험을 줄여줍니다.

5) 유기산

포도에는 사과산, 구연산, 주석산 등이 들어있어 신맛이 납니다. 이러한 산 성분은 당분, 탄닌과 함께 와인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죠. 유기산은 인체 내에서 각종 질병이 원인이 되는 독 성분을 제거해 주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