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운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쥬
일반적으로 매운맛은 와인과 마리아쥬를 맞추기 어렵습니다. 와인이 발전한 유럽의 식문화에선 매운 음식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죠. 음식과 술은 함께 발전하거든요.
그렇지만 와인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스타일입니다. 어떤 포도를 사용하느냐, 어떻게 양조하느냐, 얼마만큼 숙성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로 달라지죠. 우리는 그중에서 매운맛과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내면 됩니다.
고추장이나 칠리소스 같은 매운 재료에는 캡사이신이 들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캡사이신은 화끈거리는 느낌과 자극을 주며 심할 경우 통증을 유발합니다. 레드 와인의 탄닌도 수렴성이 있어서 떫은맛으로 자극을 주죠. 그래서 매운 음식에 풀 바디 레드 와인을 함께 마시면 화끈거리는 떫은맛이라는 이중의 자극을 받습니다. 그래서 떡볶이에 레드 와인은 일단 피해야 합니다.
캡사이신은 알코올에 녹기 때문에 와인을 함께 마시면 매운 느낌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알코올 도수가 너무 높으면 캡사이신의 매운맛을 줄여주기보다 화끈거리는 느낌을 더 강하게 해 줍니다. 매운 음식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알코올 도수는 14%까지입니다.
단맛은 매운 음식의 타는 듯한 느낌을 줄여줍니다. 그래서 인도나 동남아의 매운 요리에는 처트니(chutney) 같은 새콤달콤 짭조름한 소스가 함께 나오죠. 매운 떡볶이에 쿨피스를 함께 먹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레드 와인이 아니고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으며 단맛이 나는 와인. 그렇다면 역시 독일의 프레디카츠바인(Prädikatswein) 와인들이죠. 프레디카츠바인은 ‘등급 와인’이란 뜻으로 독일의 13개 와인 재배지에 있는 39개 하위 지구 중 한 곳에서 허용된 포도로만 만드는 최고급 와인들입니다. 6개의 세부 등급이 있고 분류 기준은 발효 전에 포도즙(must)에 포함된 당분의 양입니다.
2. 프리츠 짐머 리슬링 아우슬레제(Fritz Zimmer Riesling Auslese) 2021
아우슬레제는 프레디카츠바인 중에서 당분이 적은 순서로 세 번째 등급입니다. ‘선별 수확’이라는 뜻으로 완전히 익은 포도알만 손으로 수확해서 만들죠. 드라이 와인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십중팔구 세미 스위트 와인이거나 스위트 와인입니다.
프리츠 짐머(Fritz Zimmer)는 1979년에 설립된 독일의 명문 와이너리인 바인굿 뢰머호프(Weingut Romerhot)가 만든 리슬링(Riesling) 전문 브랜드입니다. 세계 최고의 리슬링 산지인 모젤(Mosel)과 라인헤센(Rhinehessen)에서 재배한 고품질 포도와 현대식 와인 양조 기술로 와인을 생산하죠.
이 와인은 독일 모젤-자르-루버(Mosel-Saar-Ruwer) 지역에서 재배한 리슬링 포도로 만들었습니다. 은은한 페트롤 향에 이어 푸른 사과와 흰 복숭아, 싱그러운 배추 같은 흰 채소 향을 풍기고 미네랄 느낌도 나옵니다. 우아하고 싱그러우며 달콤하네요. 달콤새큼한 것이 마치 무르익은 빨간 사과에 자두를 섞어서 만든 주스 같습니다. 페트롤 풍미가 향긋하게 입에 머물고 미네랄과 채소 풍미도 은은합니다. 알코올 도수는 낮지만 강한 산도 때문에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 짜릿한 신맛과 달콤한 맛이 약한 페트롤, 허브 풍미와 함께 오래 이어집니다.
2017년에 와인21닷컴 기자들이 선정한 '리슬링' BEST 10 와인에 선정되었을 만큼 맛과 향이 뛰어난 와인입니다.
3. 리슬링 아우슬레제 와인과 떡볶이의 궁합
떡볶이와 아우슬레제 와인을 함께 마시면 떡볶이의 ‘매콤 달콤한’ 맛과 와인의 ‘새콤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멋진 궁합을 보여줍니다. ‘새콤달콤 매콤한’ 맛을 만들어 주죠. 와인과 떡볶이가 서로 거슬리지 않고 각자 가진 맛을 살려주면서 조화를 이루네요. 떡볶이에 든 어묵도 화이트 와인이라서 잘 어울립니다. 또한 떡볶이의 짠맛은 와인의 바디를 두드러지게 하고 신맛을 부드럽게 다스려 줘서 더 마시기에 좋게 해 줍니다.
제가 먹은 떡볶이의 매운 정도는 순한 맛이지만 더 매운맛도 잘 어울릴 겁니다. 또한 아우슬레제보다 덜 단 카비네트(Kabinett)나 슈페트레제(Spätlese) 등급의 프레디카츠바인도 떡볶이 같은 매운 음식과 잘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