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이탈리아] 숨바꼭질하는 듯 변화하는 향 - Fattoria di Magliano Perenzo 2012

까브드맹 2020. 12. 4. 16:59

Fattoria di Magliano Perenzo 2012

파토리아 디 말리아노(Fattoria di Magliano)의 페렌쪼(Perenzo) 2012는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Toscana)주에 있는 마렘마(Maremma) DOC에서 재배한 시라(Syrah) 100% 포도로 만든 슈퍼 투스칸(Super Tuscan) 와인입니다.

1. 와인 생산자

이탈리아의 서해라 할 수 있는 티레니아 해(Tyrrhenian Sea)와 인접한 토스카나주의 마렘마 지역은 까베르네 소비뇽 같은 프랑스 포도 품종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갖췄습니다. 그래서 사시까이아(Sassicaia) 같은 위대한 슈퍼 투스칸와인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죠. 파토리아 디 말리아노의 페렌쪼 2012도 마렘마에서 만드는 슈퍼 투스칸 와인입니다.

파토리아 디 말리아노는 보르도 와인 애호가인 아고스티노(Agostino)가 마렘마에 세운 와이너리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와인을 만들려고 한 아고스티노는 1996년 마렘마에 포도나무를 심은 후 슈퍼 투스칸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메이커 지아코모 타키스(Giacomo Tachia)를 찾아갔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아고스티노에게 지아코모는 수제자인 그라지아나 그라씨니(Graziana Grassini)를 추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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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공업을 전공한 그라지아나는 식품 성분을 분석하는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와인 성분 분석과 테스트를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와인 양조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된 그라지아나는 1986년 시에나의 농업기술연구소(Technical Agriculture Institute of Siena)에서 양조와 포도재배 전문가 과정을 마쳤고, 1991년에 양조학자 자격을 받게 됩니다.

2000년부터 파토리아 디 말리아노의 와인 양조에 참여한 그라지아나는 자신의 Lab실을 와인 양조 실험실로 바꿨고, 와인 양조법을 발전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아코모 타키스가 사임한 후에는 뒤를 이어 사시까이아의 와인 생산도 이끌고 있죠.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여성 와인 메이커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페렌쪼는 파토리아 디 말리아노를 대표하는 와인 중 하나입니다. 뽀지오 베스티알레(Poggio Bestiale)와 티지(Tizzi) 포도밭에서 기른 시라 포도를 10월 초에 손으로 수확해서 줄기를 제거하고 부드럽게 으깼습니다. 온도 조절되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넣고 20~25일간 알코올 발효한 다음 속을 중간 단계로 그을린 225ℓ 오크통에 넣고 12~24개월 동안 숙성했습니다. 오크 숙성이 끝나면 병에 담고 다시 12개월간 숙성해서 와인을 안정시켰죠.

 

 

2. 와인의 맛과 향

Fattoria di Magliano Perenzo 2012의 색

진한 루비색입니다. 먼저 검은 자두와 졸인 간장, 발사믹, 호두 껍질 향이 나오고 간장 향은 곧 깨 넣은 간장 향으로 바뀝니다. 여기에 검은 체리와 태운 커피콩 같은 조금 매캐하고 고소한 향이 이어지네요. 종잡을 수 없는 향의 출현이 마치 숨바꼭질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시간이 지나면 시원한 석회 향과 은밀한 후추 향을 풍기고 초콜릿과 카카오 같은 어둡고 고소한 향도 퍼집니다. 나중엔 블루베리와 젖은 여물, 삼나무, 연필심 등의 향도 올라옵니다.

농후한 질감은 부드러우면서 관능적입니다. 섬세한 탄닌은 입안을 쓱 훑으며 지나가네요. 우아한 구조가 아름답습니다.

검은 과일의 은밀한 단맛이 입안에 가득하고, 검은 과일의 무겁고 부드러운 산미가 균형을 맞춥니다. 검붉은 서양 자두와 베리 종류의 과일 맛이 풍성하고 깨 넣은 간장의 고소하고 짭짤한 맛도 나오네요. 은은한 타임(thyme)과 우아한 나무, 그 속에서 가끔 느끼는 진득한 초콜릿과 과일 맛은 재미를 더해줍니다. 우아하고 관능적이면서 장난치는 느낌을 주는 와인으로 알코올의 힘은 선을 넘을 듯 말 듯 넘지 않습니다. 풍성하고 부드러우면서 재미있는,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푸근하고 편안한 느낌도 듭니다.

 

 

여운은 꽤 길고 검은 과일과 우아한 나무, 고소하고 맛있는 카카오, 또는 모카 느낌이 나옵니다.

부드럽고 진한 탄닌과 풍성하고 우아한 산미, 훌륭한 기운을 가진 14%의 알코올이 서로 짜고 치는 듯한 균형을 이룹니다. 모든 향과 맛이 조화롭고 은밀한 가운데 짓궂게 모습을 드러냈다 감춥니다. 익살맞은 장난꾸러기 귀부인 같은 와인으로 말괄량이 길들이기(1967)의 엘리자베쓰 테일러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 와인과 잘 어울리는 음식은 소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 소고기와 양갈비 숯불구이, 돼지고기 구이, 닭고기, 미트 스튜, 미트 소스 파스타, 숙성 치즈 등입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A-로 비싸더라도 기회가 되면 꼭 마셔봐야 할 뛰어난 와인입니다. 2020년 11월 3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