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인구트 베른하르트 후버(Weingut Bernhard Huber)의 알터 레벤 슈패트부르군더(Alte Reben Spätburgunder) 2012는 독일의 바덴(Baden) 지역에서 재배한 슈페트부르군더 포도로 만든 Q.b.A.(Qualitatswein bestimmter Anbaugebiete), 또는 VDP. 오르츠바인(Ortswein) 등급의 화이트 와인입니다.
1. 바인구트 베른하르트 후버
바인구트 베른하르트 후버는 독일 바덴 지역의 와이너리입니다. 남쪽의 보덴제(Bodensee)부터 북쪽의 트라우버(Trauber)까지 약 400킬로미터에 걸쳐서 포도밭이 이어지는 바덴은 포도밭 면적이 15,820헥타르로 독일에서 라인헤센(Rheinhessen)과 팔츠(Pfalz) 다음 가는 와인 생산지이죠. 독일의 최남단 와인 생산지라서 기온이 따뜻하고, 오크통에서 숙성한 풀 바디 슈패트부르군더 와인이 많이 나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슈패트부르군더는 독일에서 피노 누아(Pinot Noir)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영어로는 "Late Burgundian"가 되며 "(익는 것이) 늦은 부르고뉴" 정도의 뜻입니다. 피노 누아는 조생종이지만, 더 일찍 익는 프루부르군더(Frühburgunder = Early Burgundian)가 먼저 전래되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습니다.
바인구트 베른하르트 후버에선 1951년까지 나무통에 와인을 담아서 팔았습니다. 1962년부터 1987년까지는 와인을 만들지 않고 수확한 포도를 포도생산자 협동조합에 팔기만 했죠. 그러다 1982년에 와인 양조 기사 자격증을 딴 후버가 1987년부터 자기 포도밭의 포도로 자신의 이름을 걸은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후버의 레드 와인은 여러 와인 경연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이로 인해 그는 1990년대 초에 독일 레드 와인 혁명을 이끈 최고의 레드 와인 생산자 중 한 명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1977년 후버는 독일우수와인양조협회(VDP)의 회원이 되었고, 1991년에는 프랑스식 오크통인 바리끄(Barrique)를 이용한 와인 숙성 관리와 개발, 완성을 목표로 하는 독일 바리퀘-포럼(Deutsches Barrique-Forum)의 창설 회원이 되었죠. 이 포럼의 목표는 독일의 떼루아에서 자란 우수한 슈패트부르군더를 프랑스식 양조법과 접목해서 뛰어난 와인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2. 와인 양조
이러한 노력으로 탄생한 후버의 슈패트부르군더 와인들은 뛰어난 맛과 향을 보여줍니다. 어지간한 부르고뉴 와인에 밀리지 않으며, 가격을 생각하면 훨씬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죠. 앞서 시음했던 말터딩거 슈패트부르군더(Malterdinger Spätburgunder) 2017도 어지간한 마을 등급 부르고뉴 레드 와인과 견줄 만한 품질을 보여줬습니다.
이번에 시음한 알터 레벤 슈패트부르군더 2012는 한 차원 높은 맛과 향을 느끼게 해 줬습니다. 입에서 느껴지는 풍만한 살집은 웬만한 부르고뉴 그랑 크뤼 레드 와인에 못지않았습니다.
"Alte Reben"은 영어로 올드 바인스(Old Vines), 즉 오래된 포도나무를 뜻합니다. 바인구트 베른하르트 후버가 있는 마을의 여러 포도밭에서 자라는 오래된 슈패트부르군더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습니다. 선별한 포도를 알코올 발효한 후 오크통에서 18개월간 숙성했죠. 이때 발생하는 미세 산화(micro-oxygenation)가 와인의 맛과 향에 영향을 줬습니다. 오크통은 당연히 225ℓ 용량의 바리끄를 사용했으며, 새 오크통의 비율은 70%입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테두리에 가넷 빛이 도는 중간 농도의 루비색입니다. 매콤 달콤한 향신료와 산딸기, 레드 체리 같은 붉은 과일, 향나무와 연한 소나무 향이 향긋하게 올라옵니다. 슬슬 검은흙과 버섯, 타임(thyme), 박하 향도 나오고, 과일 향은 블랙 체리 쪽으로 바뀝니다. 시간을 두고 마시면 신선한 붉은 고기와 볶은 콩, 법회가 열리는 산사에 퍼지는 차례 향(incense), 미네랄과 석회, 말린 붉은 베리류 과일, 구운 고구마 등의 다채로운 향을 맡을 수 있습니다.
부드럽고 매우 풍만합니다. 탄력적인 탄닌이 매우 생동감이 넘치는군요. 구조도 아주 웅장하고 잘 짜였습니다.
드라이하며 붉은 과일의 산미가 풍성합니다. 산미의 품질도 아주 뛰어나네요. 잘 익은 붉은 과일의 풍미가 넘쳐나고 은은한 나무와 버섯, 타임 등의 풍미가 복합적인 맛을 줍니다. 과일 풍미는 점점 검은 쪽으로 나아가고, 다양한 풍미가 따로 놀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부드럽게 녹아듭니다. 걸리는 것 없이 술술 넘어가서 자꾸 잔으로 손을 뻗게 만드네요. 우아한 알코올은 와인에 든든한 권위를 부여합니다. 약간 짠맛도 뒤에 느껴집니다.
여운에선 검붉은 과일과 알맞게 그을린 나무, 과일의 산미가 이어집니다. 마신 후에도 목 깊은 곳에서 와인의 풍미가 올라옵니다.
부드럽고 잘 짜인 탄닌과 검붉은 과일의 풍부한 산미, 13.5%이면서 넘치는 활력을 주는 알코올이 높은 차원에서 균형을 이룹니다.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독일 여왕 같은 와인으로 10만 원 이하의 어지간한 부르고뉴 와인은 압살 할 만한 맛과 향을 보여줍니다. 스타일이 비슷한 부르고뉴 와인을 찾는다면 쥬브레-샹베르땅(Gevrey-Chambertin)이나 샹볼-뮈지니(Chambolle-Musigny)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은 소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 서양식 소고기 찜인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ignon), 양고기 직화구이와 양꼬치, 이베리코 흑돼지처럼 지방이 적은 돼지고기 요리, 꼬꼬뱅 같은 닭고기 요리, 양고기 스튜, 소고기 카르파치오, 육사시미, 연성 치즈 등입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A로 비싸더라도 기회가 되면 꼭 마셔봐야 할 뛰어난 와인입니다. 2020년 10월 21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