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주법 이전의 화이트 진판델
화이트 진판델은 달콤한 맛이 나는 분홍빛 와인입니다. 차갑게 해서 과일이나 디저트와 함께 먹으면 아주 좋죠. 미국에서 널리 사랑받는 화이트 진판델은 다음과 같은 역사를 가졌습니다.
1869년에 캘리포니아 로다이(Lodi)의 엘 피날 와이너리(El Pinal Winery)에서 진판델(Zinfandel)로 만든 로제 와인이 처음 나왔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포도 재배 감독관이면서 훗날 크레스타 블랑카 와이너리(Cresta Blanca Winery)를 세웠던 찰스 웻모어(Charles Wetmore)는 엘 피날 와이너리의 로제 와인을 마셔보고 화이트 와인용 포도로서 진판델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죠. 그러나 이때 만들어진 화이트 진판델은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금주법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2. 현대적인 화이트 진판델의 탄생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1970년대 초반에 프리미엄 레드 진판델 와인을 생산하던 서터 홈 와이너리(Sutter Home Winery)에서는 진판델 와인의 농도와 풍미를 더 진하게 하려고 알코올 발효 전에 포도 주스를 일부 뽑아서 발효조 안의 포도 껍질과 씨앗의 비율을 높이는 세니에(saignée) 법으로 레드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뽑아낸 포도 주스를 따로 발효해서 드라이한 맛을 가진 로제 와인을 생산했습니다. 이 로제 와인은 색이 아주 연해서 서터 홈 화이너리에서는 로제 와인이라 하지 않고 "화이트 진판델"이라고 불렀습니다.
1975년에 양조 중이던 일부 화이트 진판델 와인에서 이스트가 와인의 당분을 전부 발효하기 전에 죽어버리는 "스턱 퍼멘테이션(stuck fermentation)" 현상이 일어납니다. 문제가 일어난 와인들은 딴 데로 치워졌죠. 몇 주 후에 와인 생산자가 그걸 맛봤고, 이 달콤한 핑크빛 와인이 앞서 만들던 드라이 화이트 진판델 와인보다 더 낫다고 판단해 시장으로 내보냅니다. 단맛 나는 화이트 진판델 와인은 바로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 화이트 진판델이라고 부르는 로제 와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런데 이 와인은 초기에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까베르네 블랑(Cabernet Blanc), 혹은 화이트 까베르네(White Cabernet)로 알려졌다는군요. 물론 지금은 화이트 진판델로 불리죠.
서터 홈 와이너리에서는 지금까지 생산해온 와인들보다 화이트 진판델 와인을 더 많이 팔 수 있을 거란 걸 깨달았고, 점차 이 값싼 와인의 생산을 늘려나갔습니다. 현재는 화이트 진판델 와인의 가장 크고 대표적인 생산자가 되었고, 매년 400만 상자 이상 판매하고 있죠. 모스카토 와인과 함께 화이트 진판델 와인은 서터 홈 와이너리 매출액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