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연대기

[술 연대기] 1841년 ~ 1860년

Bar10The 2019. 6. 7. 23:59

듀어스 화이트 라벨
(이미지 출처 : https://www.lukasliquorsuperstore.com/product/dewars-white-label-1-0l/)

● 1841년 ~ 1860년

1841년. 전통주(증류식 소주, 서울 삼해주) : 조선조 헌종 7년의 《일성록》을 보면, “정월에만 담그던 삼해주가 아무 해일에나 담그는 술이 되었고, 또 이것을 청주보다 소주의 원료로 쓰게 되었다."면서 "겨울부터 담는 소주의 밑술까지도 삼해주라 일컫는 풍이 생겨서 근래에는 삼해주 하면 도리어 소주의 밑술 이름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와인(Wine) : 잡지인 《르 프로뒥퇴르(Le Producteur)》의 등급 분류에서 샤토 드 크뤼조(Château de Cruzeau)가 프리미에 크뤼로 판정받았습니다.

스카치위스키(Scotch Whisky) : 위스키가 최초로 유리병에 담긴 것은 맥켈란(Macallan) 증류소에서 검은색 유리병에 위스키를 담아 판매할 때였습니다.

1842년. 맥주(Beer) : 1월 11일, 보헤미아 보리와 자츠 홉, 플젠의 연수에 바이에른의 라거 효모를 섞어 만든 요제프 그롤의 맥주가 대중들에게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발효 능력이 뛰어난 바이에른의 라거 효모가 들어온 보헤미아의 플젠 지방에서 플젠 맥주가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최초의 진정한 골든 라거의 출현과 동시에 유리잔이 개발되었고, 이 둘이 만나 인상적인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보헤미아의 필스너(Pilsner)에서도 필스너 타입의 맥주가 탄생했습니다.

와인(Wine) : 모엣 에 샹동(Moët & Chandon)이 첫 빈티지 샴페인을 출시했습니다. 모엣 에 샹동은 이때 이후 무려 63개에 달하는 밀레짐(Millesime)의 오랜 샴페인들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밀레짐은 와인 라벨에 기재되는 포도 수확 연도로 영어의 빈티지(Vintage)와 같은 뜻을 가진 불어로 와인 품질이나 성격을 예측하고, 마시기에 적당한 시기 등을 판단하는데 좋은 자료가 됩니다.

1843년. 조선(shipbuilding) : 이 해에 등장한 영국 상선인 그레이트 브리튼호를 시작으로 선박의 역사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와인 : 모엣 에 샹동이 이 해에 멕시코, 중국, 인도로 첫 수출을 시작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시바스 브라더스(Chivas Brothers)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첫 번째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s)를 하사 받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이 해가 글렌모렌지(Glenmorangie)의 공식적인 설립연도입니다. 윌리엄 매더슨이 글렌모렌지를 위스키 증류소로 바꿨는데, 설립 당시엔 자금이 부족해서 진을 생산하던 중고 증류기를 가져와서 설치했습니다. 글렌모렌지 증류소는 북해 연안의 도너크 퍼스(Dornoch Firth)에 자리한 스코틀랜드의 왕실 교구인 테인(Tain)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향긋한 가시금작화와 우뚝 솟은 소나무로 둘러싸인 조용한 개간지에 자리 잡은 탈로지(Tarlogie) 샘물은 이 해 이후 글렌모렌지 증류소의 유일한 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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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스카치위스키 : 제임스 와이트와 찰스 매카이의 합작으로 와이트 앤 매카이(Whyte & Mackay)가 블렌디드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1845년경. 칵테일(Cocktail) : 오늘날 "칵테일의 왕자"라는 별명이 주어지고, 걸작 칵테일의 면모를 나름 보여주고 있는 마티니(Martini)는 이 명칭을 처음 내놓은 이탈리아의 마티니 에 로씨(Martini E Rossi, Cia) 사가 자기 회사 제품인 버머스의 판매 확장을 위해 진(Gin)과 버머스를 반반씩 섞어서 만든 것입니다. 회사의 이름인 "마티니"를 씌워서 PR 한 것이 기원이 되었습니다. 1845년경 쯤의 일이라고 합니다.

1845년~1850년 : 감자(potato) : 아일랜드에서 겨울에 내려야 할 비가 가을부터 내리기 시작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쏟아졌습니다. 이 사건이 아일랜드 대기근의 시작입니다. 감자 역병으로 감자가 모두 썩어 가면서 사람들도 점차 굶어 죽기 시작했습니다. 대기근이 발생했고, 백만 명이 넘는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이 해에 존 바그(John Bagg)가 디 강(River Dee)의 남쪽 강둑에 뉴 로흐나가(New Lochnagar)를 설립했습니다. 나중에 로열 로흐나가(Royal Lochnagar)가 됩니다.

리큐르(Liqueur) : 이 해에 베르난디노 브랑카(Bernandino Branca)가 최초로 페르네(Fernet)를 만들었습니다. 이 제품을 만들었던 곳은 나중에 프라텔리 브랑카 디스틸러리(Fratelli Branca Distillery)가 됩니다.

1846년 : 영국의 곡물법 폐지 논의 때 부르주아 지주 세력이 의회 정치에서 패배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로우랜드 지역의 리틀밀(Littlemill) 증류소에 사업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던 핵터 핸더슨(Hector Henderson)이 쿨일라(CAOL ILA)를 설립했습니다. 글래스고의 증류소 소유주인 헥터 헨더슨(Hector Henderson)은 갤릭(Gaelic)의 쿨일라(Caol Ila)로 알려진 아일라(Islay) 섬의 소리가 내려다보이는 그의 양조장을 짓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존 커밍스가 죽고, 농장과 카듀(Cardhu) 양조장의 운영이 루이스에게 전해졌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듀어스(Dewar’s)가 처음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존 듀어(John Dewar)가 퍼스 하이 스트리트(Perth High Street)에 와인 및 주점 상점으로 설립했습니다.

리큐르 : 독립군 지도자 시몬 볼라바르를 기리기 위해 앙고스투라 비터스(Angosturs Bitters)가 탄생한 앙고스투라 시의 이름이 볼리바르 시로 바뀌었습니다.

리큐르 : 조제프 뒤보네(Joseph Dubonnet)가 프랑스 군대를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키니네 베이스의 영약을 만들어 냈습니다.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외인부대 대원들이 말라리아를 물리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조제프 뒤보네가 만든 것이 바로 뒤보네(Dubonnet)입니다.

 

 

1847년. 초콜릿(Chocolate) : 영국의 한 제과 회사가 카카오 버터에 맛술을 섞어서 세계 최초의 고체 초콜릿을 생산해 냈습니다.

도넛(doughnut) : 열다섯 살의 네덜란드계 미국인 소년 핸슨 그레고리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둥근 빵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빵의 가장자리는 바삭바삭했지만 한가운데는 늘 눅눅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기기 전에 칼로 가운데를 도려냈습니다.

와인 : 샤토 디껨(Château d’Yquem)에서 포도 수확이 이루어졌을 때 푸리튀르 노플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성주가 여행에서 늦게 돌아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포도 수확을 일부러 늦게 지시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수확 명령이 떨어졌을 때는 이미 포도에 푸리튀르 노블 현상이 나타나 있었고, 그것으로 만든 와인은 전에 없는 환상적인 맛이 났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맥켈란(Macallan)은 제임스 프리스트(James Priest)와 제임스 데이빗슨(James Davidson) 소유였습니다.

럼(Rum) : 알프레드 램(Alfred Lamb)이 런던에서 럼을 만들어 영국 해군에 공급했습니다.

1848년 : 프랑스 7월 왕정에 불만을 품은 중소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2월 혁명을 일으킵니다.

독일 각 영토의 지식인들이 프랑크푸르트에 모여 국민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계급투쟁이야말로 사회이며, 역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기성체제에 반항하던 사람들에게 이 해의 혁명은 실패였습니다. 노동계급과 중산층에 속하는 수많은 독일인이 자신의 터전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핫도그(Hotdog) : 당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으로 유럽 곳곳에서 일어난 혁명의 실패로 불만이 가득했던 다수의 유럽인이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이때 유럽에서 미국으로 수많은 음식이 건너왔고, 특히 독일에서 많이 건너왔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이 해에 빅토리아 여왕이 로열 로흐나가 증류소를 방문해서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를 수여하고, 몰트를 왕실 조달품으로 지정했습니다. 이후 로열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아메리칸 위스키(Amarican Whiskey) : I.W 하퍼(I.W. Harper)의 역사는 설립자 I.W. 베른하임(Bernheim)이 꿈과 4달러를 품고 이 해에 미국으로 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브랜디(Brandy) : 샤토 폴레 코냑(Château Paulet Cognac)은 자크나크의 작고 아름다운 샤토 폴레를 본거지로 출발한 회사입니다.

1849년 : 자유당의 러셀 내각이 해양법을 폐지하여 외국 상선의 영국 입항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면서 세계 시장에 대한 문호를 개방했고, 국내 민간 상사의 무역 참여도 허용했습니다.

헌종 15년. 홍석모가 편찬한 《동국세시기》에 술 빚는 법이 수록되었습니다.

와인 : 미국에서 골드러시가 시작되기 전부터 프랑스의 이민자들이 프랑스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리큐르 : 프랑스의 아돌프와 에두아르 장 쿠앵트로(Adolphe and Edouard Jean Cointreau) 형제가 멘(Maine) 강변의 도시 앙제(Angers)에서 쿠앵트로(Cointreau)를 만들어 냈습니다.

 

 

1850년대. 프랑크푸르트 소시지(Frankfurter) : 독일 중서부의 프랑크푸르트 정육점 조합은 투명하고 얇은 창자에 향신료로 양념한 고기를 집어넣고 훈제해서 소시지를 만들었습니다.

체리(Cherry) : 세스 르웰링(Seth Lewelling)은 1850년대에 가족과 함께 인디애나 주에서 오리건주로 이주하여 체리 산업을 개척했습니다.

커피(Coffee) : 네덜란드에서 커피의 수익은 1850년대 정부 재정 수입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영국에서 유리병을 만들 때에는 검은색이나 녹색 병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1850년대 중반 무렵 프랑스 북부의 릴 지역은 사탕무를 발효해서 알코올을 생산하는 산업이 번창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킬마녹은 잉글랜드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고, 이때 조니 워커(Johnnie Walker)의 존 워커는 아들 알렉산더 워커와 함께 자체적으로 블렌딩 한 위스키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칵테일 : 1850년쯤에는 마티니를 더욱 애음하게 되었습니다. 그즈음 이탈리아의 버머스는 스위트 버머스가 주류를 이루었으므로 마티니 회사가 PR를 시작하였던 마티니 칵테일도 당연히 진과 스위트 버머스를 같이 맞추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1850년. 와인 : 라로슈 가문의 역사는 이 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장 빅토르 라로슈는 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으로 손바닥만 한 6헥타르의 포도 농지를 사들여 현재 4대째 이어오는 도멘 라로슈(Domaine Laroche)의 전통을 시작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앤드루 어셔(Andrew Usher)가 코피의 연속식 증류기로 만든 위스키와 그보다 전통적인 방식인 단식 증류기로 만든 위스키를 원료로 하여 최초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생산했습니다.

폭풍으로 오크니섬의 표토가 유실되면서 우연히 '스카라 브레(Skara Brae)'가 발견되었습니다. 5,200년 동안이나 땅 속에 잠들어 있던 환상의 도시로, 참 놀랍게도 이 섬에는 5,000년 전에 술을 마시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스카치위스키 : 울프번(Wolfburn)은 이 해까지 스미스(Smith) 패밀리의 소유였고, 이후 폐쇄된 정확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칸 위스키 : 버번위스키는 1850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불리던 이름으로 프랑스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부르봉(Bourbon) 왕조를 생각하는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칵테일 : 사제락 커피 하우스(Sazerac Coffee House)의 오너인 세웰 테일러(Sewell Taylor)는 사제락 칵테일에 사제락 드 포지 에 피스 브랜디(Sazerac de Forge et Fils Brandy)만 사용하도록 규정하여 독점 판매를 하였습니다.

 

 

1851년. 와인 : 피숑 롱그빌이 지금의 샤토 피숑-롱그빌 바롱(Château Pichon-Longueville Baron)을 지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벨스(Bell’s)의 상호에 벨의 이름이 동업자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852년 : 부르주아 세력이 루이 나폴레옹을 나폴레옹 3세 황제로 즉위시키고 제2 재정을 발족시켰습니다.

와인 : 샤토 드 퓌세(Château de Fuisse)가 포도밭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이 이 해로 그 후 뱅상 가문은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스카치위스키 : 보모어(Bowmore)가 무터(Mutter) 집안에 인수된 후 몇 차례 소유주들이 바뀌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몰트락(Mortlach) 증류소가 새로운 장비로 재개장했습니다. 이전 주인인 존과 제임스 그랜트는 여전히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경쟁을 줄이기 위해 조용히 몰트락을 떠났습니다.

1853년 : 미국 동인도 함대의 매튜 페리(Matthew Perry) 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도쿄만 앞바다에 진을 치면서 전쟁 위협을 하여 일본과 외교 통상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포테이토칩(potato chip) : 이 해에 미국인 요리사 조지 크럼은 프렌치프라이가 너무 두껍다고 잔소리를 해대는 한 손님 때문에 골치가 아팠습니다. "더 얇게, 더 얇게"를 주문하는 이 손님을 골려줄 요량으로 포크로 찍을 수도 없을 만큼 얇은 감자튀김을 내놨습니다. 한데 이를 맛본 '까칠'한 손님뿐만 아니라 다른 손님들까지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웠습니다. 이후 클리블랜드에 공장이 생기고 대량 유통되면서 포테이토칩은 전 세계인의 먹거리가 됐습니다.

와인 :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Château Cos d’Estoumel)의 루이 가스파르 데스투르넬이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하던 이 해에 사망했습니다.

와인 : 뽀이약 마을에 한 채의 성(샤토)이 있습니다. 이 해에 필립 남작의 선조가 사들인 성입니다. 이곳에서 샤토 무통 로쉴드(Château Moutin Rothschild)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앤드류 어셔가 블렌디드 위스키를 발매했고, 이후 그레인위스키 업자와 몰트 위스키 업자 사이에서 '위스키 논쟁'이 시작됩니다.

스카치위스키 : 농부인 윌리엄 매켄지( William MacKenzie)가 스트라스스페이 철도(Strathspey Railway)의 캐론(Carron) 역에서 1.25 마일 떨어진 곳에 달유인(Dailuaine) 증류소를 설립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이름은 게일어로 '녹색의 계곡'을 의미합니다.

스카치위스키 : 경력 대부분을 영국의 인프라 구축에 공헌한 철도 측량사 조지 코위(George Cowie)가 같은 수준의 기술과 결단력을 몰트락의 증류 공예에 적용했습니다.

재패니즈 위스키(Japanese Whisky) : 폐리가 우라가에 내려 일본인에게 위스키를 대접했습니다.

 

 

1854년 : 파리에서 《퀴닌학(Quinologie)》이라는 아름다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약사들이 여러 종류의 나무껍질을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기나나무(Cinchona)를 비롯한 다양한 품종의 나무 그림을 수작업으로 채색한 동판화가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광학이성질체'의 발견으로 파스퇴르는 이 해에 릴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얻었고, 이듬해 사탕무 발효로 얻은 알코올에서 이성질체를 찾는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카듀 증류소의 루이스에겐 양조업자와 몰트 맨의 두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을에서 봄에, 여름에는 '조용한 계절'에 농장에서 일할 때 증류를 했습니다.

캐나디안 위스키(Canadian Whisky) : 캐나디안 클럽(Canadian Club)이 첫 번째 위스키 배럴을 내놓았습니다.

1855년 : 파리의 만국박람회가 개최되면서 파리 시내는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비되었고, 부르주아 시민주의 시대의 번영을 누렸습니다.

와인 : 나폴레옹 3세가 보르도 상공회의소에 보르도 와인의 등급 분류를 위임했습니다. 이 등급 체계는 현재까지도 세계 최고의 명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등급 체계가 1855년 보르도 와인 공식 등급(Bordeaux Wine Official Classification of 1855)입니다. 이 등급은 파리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나폴레옹 3세가 세계 여러 나라에 보르도 와인을 소개하고자 보르도 상공회의소에 지시하여 출품할 와인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고, 보르도 상공회의소는 다시 와인 중개인 조합(Union des Courtiers)에 이 일을 맡겼습니다. 이때 그랑 크뤼 클라세에 속하지 못한 샤토는 1932년에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로 다시 등급이 정해졌고, 오늘날엔 수확 후 2년이 지난 다음에 심사하여 매년 9월에 발표하기로 정해졌습니다.

마고 지역은 이 해의 와인 등급 분류에서 21개의 샤토가 그랑 크뤼(Grand cru) 등급을 차지했습니다. 뽀이약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그랑 크뤼 1등급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라투르샤토 라피트 로칠드 외에 16개 샤토가 그랑 크뤼 와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쌩-줄리앙 지역에선 2등급 5개를 포함하여 11개 샤토가 그랑 크뤼 와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쌩-테스테프 지역은 이 해의 와인 등급 분류 당시에는 5개 성만 그랑 크뤼 와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 그랑 크뤼 샤토들은 모두 레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와인 : 샤토 도작(Château Dauzac)이 1855 와인 등급 분류의 61개 레드 와인 그랑 크뤼에 들어갔습니다.

와인 : 샤토 귀로(Château Guiraud)가 와인 등급 분류 시 스위트 화이트 부문의 프르미에 크뤼(Premiers crus : 1등급)로 분류되었습니다.

와인 : 페싹-레오냥의 포도밭은 1855 와인 등급 분류에서 메독(Médoc) 남쪽에선 유일하게 그랑 크뤼로 인정받은 샤토 오브리옹(Château Haut-Brion)이 있어서 그 지명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와인 : 샤토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in Rothschild)의 와인은 당시 최고급 와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소유자가 바뀐 지 2년밖에 안되었다는 이유로 1등급으로 지정받지 못했습니다.

와인 : 소테른과 바르삭 지역의 와인 등급 분류에서 샤토 네락(Château Nairac)이 두지엠므 크뤼(Deuxième Crus, 2등급)로 분류되었습니다.

아메리칸 위스키 : 이 해에 헨리 맥케나(Henry Mckenna)가 바드스타운(Bardstown)에 있는 히븐 힐 증류소(Heaven Hill Distillery)의 현재 증류소 부지에서 10마일가량 떨어져 있는 켄터키의 페어필드(Fairfield)에 증류소를 설립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아메리칸 위스키 : I.W. 하퍼 15년이 1885 뉴 올리언즈 박람회(New Orleans Exposition)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아메리칸 위스키 : 와일드 터키(Wild Turkey)는 이 해에 주류 수입회사로 출발하여 금주 시대 이후에 널리 알려진 메이커입니다.

칵테일 : 이 해에 출판된 영국의 작가 삿카레의 소설 《뉴∙카모스》에 "대령, 당신은 브랜디 칵테일을 마셔본 일이 있습니까"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케(酒. Sake) : 죠젠 미즈노 고토시 준마이 다이긴죠로 유명한 시라타키 주조가 이 해에 니가타현의 에치고 지방에서 창업했습니다. 이곳은 깨끗한 물이 풍부하기로 유명합니다.

 

 

1856년 : 파리 조약에서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의 외국 군함 통행금지, 흑해의 중립화가 결정되었고 러시아는 물러서게 됩니다.

파리에 살던 중남미 지식인들이 멕시코 이남의 나라들은 라틴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당시의 명칭인 '앵글로색슨 아메리카'가 아닌 '라틴 아메리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중남미를 가리키는 말로 국제적으로 통용되었습니다.

수수(Sorghum) : 유명한 실험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수를 미국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정일당 잡식》에 술 빚는 법이 수록되었습니다.

와인 : 양조업자들이 자신들의 포도주가 상하는 이유에 대해 파스퇴르에게 연구를 의뢰했습니다.

1857년. 발효(Fermentation) : 이 해부터 파스퇴르는 발효 과정을 설명하는 논문과 책을 연달아 출간했습니다.

효모(Yeast) : 루이 파스퇴르는 발효가 신의 선물과 무관하다는 것을, 즉 발효란 효모가 먹고 배출하고 증식하는 자연스러운 화학 작용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아이리쉬 위스키(Irish Whiskey) : 이 해에 설립된 W&A 길베이(Gilbey)는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Oxford Street)와 베윅 스트리트(Berwick Street)의 코너에 있는 작은 지하 셀러에서 시작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쿨일라의 소유권이 불록 래드 앤 코(Bulloch Lade & co)라는 회사에 넘어갔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탈리스커(Talisker)가 도널드 맥렐런(Donald McLellan)에게 임대됩니다.

캐나디안 위스키 : 조셉 시그램이 온타리오주에서 시그램스 VO(Seagram’s VO)를 창업했습니다.

스위스 위스키(Swiss Whisky) : 이 해에 야콥 바움버거(Jakob Baumberger)가 뮌헨의 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와 마스터 브류어(Masterbrewer)로서 아버지의 농장에 란가툰(Langatun) 증류소를 설립했습니다.

1858년 : 동인도회사가 해체됩니다.

와인 : 메르시에(Mercier) 샴페인 하우스는 이 해에 창업한 이래 줄곧 새로운 아이디어와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메르시에에는 거대한 샴페인 통이 있습니다. 높이 5.5m, 길이 6.5m로 가운데가 불룩 튀어나온 배불뚝이 모양의 통은 750ml 기준으로 215,000병 분량의 와인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 통을 만들기 위하여 헝가리 출신의 술통 제작자 하인리히 발터(Hernrich Walter)가 작업에 참여하여 울창한 숲으로 유명한 호엔슈타인(Hohenstein)에서 여섯 달 동안 머물면서 참나무를 골랐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철도가 로시스 지역에 개통되면서 철도 운송의 이점이 생기자 다른 증류소에서 생산된 위스키가 스코틀랜드 내에서만 소비되는데 비해 글랜그랜트(Glengrant) 위스키는 잉글랜드에서 2/3가 소비되었습니다.

캐나디안 위스키 : 캐나디안 클럽의 하이렘 워커(Hiram Walker)가 디트로이트(Detroit)에 증류소를 열었으나 심상찮은 금주 운동(금주령)에 놀라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 주의 윈저(Windsor)로 옮겨가 위스키를 생산하였습니다.

음료 : 에라스뮈스 본드(Erasmus Bond)가 기나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키니네(말라리아 퇴치 효과가 있는 쓴 성분)로 토닉 워터(Tonic Water)를 선보였습니다.

1859년 :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서 사르데냐 왕국이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오스트리아를 물리쳤습니다.

와인 : 오스피스 드 본(Hospices de Beaune)은 본의 와인 축제입니다. 나날이 늘어나는 환자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해부터 병원 소유로 경작해 온 60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을 매년 11월 세 번째 일요일 저녁에 병원의 가장 큰 홀(지금은 박물관이 됨)에서 경매에 붙였습니다. 그 후 이 행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오늘날과 같은 축제로 발전해 왔습니다. 경매는 3일간의 축제일 중 맨 마지막 날 이루어집니다.

와인 :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나파밸리에서 처음으로 와이너리가 문을 열었습니다.

 

 

1860년대 : 레저가 수집한 기나나무 씨앗들을 영국 정부에 판매했지만, 거기서는 퀴닌이 아주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통주(증류식 소주, 당정 옥로주) : "조부 유행룡님께서 쌀과 율무를 원료로 한 곡주로 소주를 빚어 하동의 화개장터에 내다 팔게 되었는데, 술을 마셔 본 사람이면 한결같이 '술 향기가 독특하고 맛이 부드러워 마시기에 전혀 부담이 없고,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숙취가 없다.'라고 하여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와인 : 유명한 파스퇴르(1822년~1895년)가 "미생물에 의해서 발효와 부패가 일어난다."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이론을 주장하여 와인 제조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온살균법을 개발하여 와인의 장기 보존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종 포도에 자생하는 진딧물의 일종인 '필록세라'라는 해충은 1860년대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의 포도밭을 황폐화시키면서 와인을 비롯한 술의 역사를 바꾸는 엄청난 사건을 저지른 중요한 벌레입니다.

와인 : 코도르뉴(Codorniu)의 돈 호세 라벤토스(Don Jose Raventos)가 프랑스 샹파뉴 지방을 방문했습니다.

와인 : 미국의 워싱턴 지역에서 이탈리아와 독일 이민자들이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와인 : 60년대부터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주에 있는 오카나간 밸리에서 와인이 미사용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1860년대 이전에는 고전적인 단식 증류기만 사용할 수 있어서 짙은 향과 독한 맛에 알코올 도수는 낮은 조악한 위스키만 생산되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듀어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주류 중개상을 하며 최초로 블렌딩 기술을 도입하여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든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존 듀어스가 설립했습니다.

아메리칸 위스키 : 켄터키주의 초기 이민자들 중 상당수가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출신이었기에 이들은 증류기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860년대가 되자 스코틀랜드의 증류업자들도 옥수수를 주요 원료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켄터키에는 위스키 제조에 적합한 또 하나의 천연자원이 있었는데, 바로 맑고 시원한 샘물이 솟아나는 풍부한 석회암 매장층이었습니다.

브랜디 : 프랑스의 지질학자가 코냑의 토양 샘플을 채취하면서 해당 토양의 브랜디를 테스트한 결과 석회질 토양일수록 좋은 브랜디가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860년 : 25대 철종 시기에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인 김정호가 1834년에 만든 '청구도'를 증보하여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북부에서 부르주아 상공업자가 출연하면서 북부의 대표인 공화당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철종 11년의 《김승지 댁 주방문》에 술 빚는 법이 수록되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에든버러에서 잘 나가는 글렌리벳 증류소의 판매 대리인이었던 앤드류 어셔가 숙성 년수가 다른 몰트를 섞어 판매하면서 술의 이름을 '어셔스 올드 베티드 글렌리벳(Usher’s Old Vatted Glenlivet)'이라고 지었습니다. 어셔의 방식은 주정 법(Spirirs Act)으로 인정받게 되어 다른 증류소의 원액끼리도 혼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위스 위스키 : 이 해에 역사적으로 "란가툰(Langatun)"이라고 861년에 처음 언급되었던 란겐탈(Langenthal)의 작은 양조장을 인수한 야콥(Jakob)은 이후 증류소와 양조장 양쪽을 매우 성공적인 기업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브랜디 : 지질학자 앙리 코캉(Henri Coquand)이 코냑 지방을 토양과 기후에 따라 여섯 개의 특정 마을(크뤼)로 구분했습니다.

리큐르 : 밀라노에서 카페의 주인인 가스파레 캄파리(Gaspare Campari)가 붉은색이 인상적인 새로운 아페리티프인 캄파리(Campari)를 선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