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연대기

[술 연대기] 18세기 (1701년 ~ 1800년)

Bar10The 2019. 5. 24. 12:00

글렌 마레이 증류소
(글렌 마레이 증류소 : 이미지출처.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8/Glen_Moray_Distillery.JPG)

● 18세기(1701년~1800년)

18세기 초기부터 국가가 주도하는 각종 이주자 지원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미국에 대한 개발 투자도 성행했습니다.

18세기의 유럽 경제는 식민지 경제를 착취하는 구조 위에 성립됩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테크놀로지의 진화가 있었습니다. 영국은 해외 식민화를 추진하면서 서인도 제도와 신대륙에서 생산되는 면화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했습니다.

스페인은 왕위 계승전쟁으로 프랑스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손으로 먹는 식사법이 나이프와 포크, 스푼의 식사법으로 완전히 바뀐 것은 18세기 중반부터였습니다.

18세기 중반까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인구는 약 70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18세기 후반의 유럽 각국은 동세기 전반의 인구에 비해 20~30% 늘었고, 식량 수요도 급증했습니다.

영국은 제2차 영국-프랑스 백년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프랑스 세력을 몰아내고 북아메리카 대륙과 인도 지배권을 거머쥐고 세계에 군림하는 대영제국이 되었습니다.

18세기 후반에 프랑스는 자본 투입으로 산업이 진흥하고 조금씩 성장 기미가 보였지만, 식민지쟁탈전에서 영국에 패배하면서 재정난에 빠졌고, 스페인을 지원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18세기 후반 청나라의 통계 인구는 3억 명이나 됩니다.

(~19세기) 제철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증기기관 동력을 이용한 철도와 증기선이 활발히 생산되었습니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가장 성공한 나라였지만, 성공 모델에만 안주하는 바람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개혁하지 못했고 독일과 미국에 비해 산업구조의 전환이 늦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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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pasta) : 18세기 이전만 해도 파스타는 버터와 치즈에 버무려 손으로 집어 먹었던 서민 음식이었습니다.

고추(Chili pepper) : 18세기 들어 김치나 젓갈의 맛이 변하는 것을 방지하고 냄새를 제거하는 용도로 고추를 사용되면서 비로소 매운맛의 재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콩(soybean) : 대두가 유럽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초입니다.

키스(Kiss) : ‘키스 마이 아르스(kiss my arse)’는 매우 경멸적인 언사였습니다.

란제리(lingerie) : 프랑스에서 란제리의 원료인 아마 재배 산업은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피자(Pizza) : 18세기 항구 도시인 나폴리에는 수많은 빈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침 식사나 점심 식사로 노점에서 파는 피자를 사 먹었습니다.

감자(potato) : 18세기에 접어들자 감자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양식으로 자리 잡았고, 산업 혁명에 필요한 값싼 노동력에게 영양분을 제공한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감자는 동유럽에서 주식 작물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7년 전쟁 중인 18세기 중반에 감자가 주요 식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8세기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왕은 감자를 경작해서 식량난을 해소하려고 했습니다. 일본에선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세기) 코르셋(corset) : 18세기말부터는 '빳빳하게 죄는 속옷'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광귤(Bitter Orange) : 세비야 광귤이라고도 부르는 이 새콤한 오렌지는 18세기에 무어인들을 따라 스페인에 전파되었습니다.

정향(Clove) : 18세기에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은 인도네시아 향료 제도의 테르나테, 티도레, 바칸, 마킨, 말루쿠 섬의 통치권을 두고 싸웠습니다.

 

 

콜라 너트(Kola Nut) : 유럽인들은 18세기에 이 식물을 약물로 활용했습니다.

수수(Sorghum) : 18세기 미국에서 빗자루 옥수수의 일부 품종이 재배되기도 했습니다.

사탕수수(sugarcane) : 18세기에 바베이도스를 제치고 자메이카가 사탕수수의 최대 생산지로 부상했습니다.

카스카릴라(Cascarilla) : 카스카릴라 나무는 서인도가 원산지로 18세기말 유럽인들이 실시한 여러 차례의 식물학 원정에서 처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육두구(Nutmeg) : 네덜란드는 18세기까지 육두구 거래를 독점했습니다.

전통주(혼성주, 가문비나무 술) : 가문비나무 술의 레시피는 18세기와 19세기 문헌에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맥주(Beer) : 18세기에 영국에서 '펍(Pub)'이라 불리는 술집이 등장하면서 맥주는 여가를 즐길 때나 정체성의 동질감을 확인할 때 마시는 대표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와인(Wine) : 18세기에는 병과 마개의 사용이 일반화되었고, 수송이 용이해지면서 와인 보급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와인 : 프랑스 대혁명으로 소작인들이 농지를 갖게 된 뒤로 포도밭 크기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부르고뉴에서는 장소가 조금만 달라도 토양 성분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생산되는 와인의 맛과 향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18세기가 되자 샹파뉴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은 거의 대부분 발포성 화이트 와인이었다고 합니다.

18세기 프랑스 사회를 이끌었던 새로운 상류층인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을 영국이나 북유럽 등으로 수출했는데, 이런 흔적은 메독(Médoc) 지역에 남아 있는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라는 명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8세기에는 유명한 샤토네프 뒤 파프의 포도밭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8세기로 넘어가면서 메독 지역의 와인 양조에 과학기술들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네덜란드 상인들은 북유럽인들이 리큐어 와인을 좋아했기 때문에 화이트 와인 생산 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쏘테른바르삭 지역에서 와인을 수입한 후 시럽이나 설탕을 첨가하여 구매자의 구미에 맞는 와인으로 다시 만들어서 팔았다고 합니다.

 

 

와인 : 바르통 앤 게스띠에르(Barton & Guestier, B&G)는 18세기 초에 큰 꿈을 가졌던 한 젊은이의 인생에서 시작됩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젊은이 이름은 토마스 바르통(Thomas Barton)으로 젊은 시절에 와인 무역의 중심지였던 보르도 지방으로 이주했습니다.

와인 : 샤토 랭슈-바쥬(Château Lynch-Bages)의 설립자인 랭슈 가문은 역사적으로 18세기에 보르도 시장과 뽀이약 시장을 배출한 귀족 가문이기도 합니다.

와인 : 샤토 네락(Château Nairac)의 네락이란 이름은 18세기경에 다른 지역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무렵 한 보르도 중개상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와인 : 18세기 퓌멜(Fumel) 가문이 샤토 마고(Château Margaux)의 주인이 되면서 와인 양조를 시작했습니다.

와인 : 18세기 독일에서 태어난 플로렌스 루이 하이직(Florens Louis Heid-sieck)은 샴페인의 거품과 맛에 매료되어 샹파뉴의 랭스(Reims)로 이주했고, 독자적인 양조 기술을 완성시키면서 파이퍼 하이직(Piper Heidsieck)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했습니다.

와인 : 18세기부터 포도 농장을 경영해 온 뒤뵈프 가문에서 태어난 조르주 드뵈프(Georges Duboeuf)는 마콩에서 6km 떨어진 셍트레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포도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와인 : 샤토 퐁테-카네(Château Pontet-Canet)는 18세기에 장 피에르 퐁테(Jean-Pierre Ponter)가 처음 세웠습니다.

와인 : 호이리겐(Heurigen)은 18세기 후반에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양조업자가 소비자에게 와인을 직접 면세로 팔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요즘에는 그 해에 담근 와인인 '햇 와인'의 개념으로 11월 1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팔 수 있습니다.

와인 : 멕시코에서 교회 미사용으로 포도나무를 들어오면서 캘리포니아에 처음으로 와인이 소개되었습니다.

와인 : 18세기에 "호주 포도 재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 버스비(James Busby)가 유럽에서 가져온 678종의 다양한 포도 묘목을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 주에 심으면서 호주 최초의 포도재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위스키(Whisky) : 18세기 초반에는 보다 짧은 버전인 'whiskie'나 좀 더 발음이 경쾌한 'whiskee'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Scotch Whisky)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되고 국왕인 제임스 1세가 위스키 주세를 부과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위스키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글렌모렌지의(Glenmorangie) 증류소의 전신은 18세기에 있었던 맥주 공장입니다.

스카치위스키 : 글렌 마레이(Glen Moray)는 18세기 이래 맥주 공장 자리였던 곳에 설립되었습니다.

아메리칸 위스키(Amarican Whiskey) : 미국에서 곡물을 원료로 증류주를 만든 것은 18세기 후반부터라고 생각됩니다.

(~19세기). 아메리칸 위스키 : 일라이자 크레이크(Elijah Craig)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미국 증류 산업의 개척자였던 일라이저 크레이그의 이름을 딴 스몰 배치 버번(Bourbon)입니다.

캐나디안 위스키(Canadian Whisky) : 18세기말에 퀘벡을 중심으로 전문 증류업자가 등장하여 본격적인 가동을 개시했습니다.

브랜디(Brandy) : 18세기말에 코냑(Cognac)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수출품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진(Gin) : 영국의 진 생산량은 본거지인 네덜란드를 능가했고, 그 후 미국에 건너가서 칵테일 베이스로 쓰이게 되면서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로열 퍼버티(Royal Poverty, 가난뱅이지만 술에 취하면 왕이 된 기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18세기 초반 런던에서 암시장을 통해 유통된 진은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지 못한 곳에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8세기까지 진은 단식 증류기로 증류했고 오늘날의 런던 드라이 진보다 맛이 달았습니다.

 

 

보드카(Vodka) : 18세기에 자작나무 활성탄으로 주정을 수십 번 여과해서 성분을 제거하는 동시에 성분의 일부를 산화시키고, 마지막 단계에 모래로 걸러서 목탄 냄새를 제거하는 방식이 개발되어 풍미를 개선하게 되었습니다.

데킬라(Tequila) : 18세기에 데킬라 마을 부근에서 산불이 났는데 불을 끄고 보니 검게 눌어붙은 아가베가 많이 뒹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좋은 향기가 났다고 합니다.

아쿠아비트(Aquavit) : 18세기부터 신대륙에서 들어온 감자를 원료로 사용하면서 널리 퍼지게 됩니다.

리큐르(Liqueur) : 압생트(Absinthe)는 18세기말 프랑스의 의학자 오디네 박사(Dr. Ordinaire)가 혁명을 피해 스위스로 피난 가서 발명한 것입니다.

리큐르 : 18세기의 여행자들은 페루의 항구도시인 피스코에 배를 정박하고 현지에서 만든 증류주인 피스코(Pisco)를 선적했습니다.

칵테일(Cocktail) : 18세기 들어서서 잉글리시 육군의 프란시스 니거스(Francis Negus)라는 대령이 와인에 탕(湯)과 설탕, 향료를 섞은 혼합음료를 창안하고, 여기에 자기 이름을 따서 "니거스(Negus)"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니거스는 1732년 사망했습니다. 니거스라는 핫 드링크(Hot Drink)는 적어도 17세기 초경부터 마셨을 겁니다.

칵테일 : 플립(Flip)은 18세기에 생겨난 혼합 음료로 와인이나 증류주를 비롯하여 에일, 두보네(Dubonnet)등을 바탕으로 사용하며, 주류성이 없는 것은 과즙만을 사용합니다.

칵테일 : 하이볼(Highball)의 어원은 골프용어의 하이 볼(High Ball)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골프에 취미를 가진 사람이 목이 타서 술인 줄 모르고 위스키와 소다수를 섞어 마셨더니 평소에 없었던 산뜻한 느낌이 났고, 자기 차례가 되어 골프채를 잡고 치니까 볼이 하늘 높이 날아가 골인했다는 18세기 영국의 에피소드에서 발단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전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