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연대기

[술 연대기] 17세기 (1601년 ~ 1700년)

Bar10The 2019. 5. 1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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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세기(1601년~1700년)

17세기에 들어 철을 저렴하게 정련할 수 있게 되자 배의 골격에 철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은 네덜란드와 해상무역의 권리를 두고 대립합니다. 네덜란드는 세계정복에 나섰고, 기독교의 구교와 신교 사이에 벌어진 30년 전쟁 중이던 유럽의 혼란을 틈타 아시아에 진출했습니다.

러시아는 17세기부터 로마노프 왕조가 세워졌고, 그 황제들이 동로마 제국 황제의 의의 또한 계승하게 됩니다.

17세기가 되어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면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등 유럽 선박이 출현하자 대만은 해상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17세기를 전후해 세 번에 걸쳐 동인도로 파견된 약 1,200명의 영국 선원들 가운데 무려 800명이 항해 도중 괴혈병과 장티푸스로 죽었습니다.

17세기에 이르러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일본까지 해상 교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외국선박의 영국 입항을 금지한 항해법은 17세기에 제정되었는데, 이에 따라 네덜란드와 적대 관계였던 영국은 네덜란드 선박의 입항을 막았습니다.

30년 전쟁에서 프랑스에 패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은 쇠퇴의 길을 걷습니다.

17세기에 유대 민족에게 대서양과 태평양을 개척하는 일은 그리 대단한 도전도 아니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7세기 중엽에 말레이 반도와 자바, 수마트라 등을 비롯해 대만과 일본의 독점 무역권을 수중에 넣어서 동남아시아 해상 무역을 장악했습니다.

유럽에선 17세기 중반까지 큰 접시에 담은 음식을 함께 손으로 집어먹었습니다. 음식을 먹고 나면 핑거볼의 물로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는 것이 식사 양식이었습니다.

감자(potato) : 거듭되는 흉년으로 굶주리던 17세기 초반, 아일랜드인에게 감자는 구세주로 등장했습니다. 일본은 중국보다 조금 이른 17세기 초에 네덜란드와 교역이 활발하던 나가사키 항을 통해 감자가 들어왔습니다. 독일에서는 30년 전쟁이 한창인 17세기에 감자가 주요 식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감자가 중국에 소개된 것은 17세기 후반 네덜란드 선교사를 통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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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biscuit) : 영국 해군 장관을 역임한 새뮤얼 피프스가 처음으로 선상 공급을 규격화할 때 비스킷에 빅토리아 여왕의 문장과 오븐의 숫자까지 찍었다고 합니다.

메뉴(menu) : 17세기 유럽에서 메뉴는 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혹은 종업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차(Tea) : 네덜란드가 일본과 주로 무역을 했습니다.

드레스(Dress) : 17세기 중반에는 '옷을 잘 차려입다.'로 의미가 좁아졌습니다.

보리(barley) : 17세기초 허균이 지은 《한정록》에 벼와 보리를 이모작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자작나무(Birch) : 17세기 초반부터 몇몇 과학자들이 자작나무 수액을 의료용 또는 순수한 기분 전환용 리큐어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알로에(Aloe) : 17세기에 원산지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공작고사리(Maidenhair Fern) : 17세기의 약초상 니콜라스 컬피퍼(Nicholas Culpeper)는 기침, 황달, 신장병 치료를 위해 캐필레어 시럽을 추천했습니다.

장미(Rose) : 서양 장미라고 불리는 로사 켄티폴리아는 17세기에 네덜란드의 식물학자가 향기가 진한 품종으로 개발한 것입니다.

설탕(Sugar) :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은 설탕 산업이었습니다.

사탕수수(sugarcane) : 17세기 중엽에 아메리카 사탕수수 산업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감자 : 17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감자는 식용작물로 널리 재배되었습니다.

 

 

커피(Coffee) : 17세기 유럽에서 커피는 비싼 가격 탓에 아무나 마실 수 없었는데도 품귀 현상이 일어날 만큼 인기 상품이 되었습니다. 모카에는 3만 명가량의 유대인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17세기말까지 300년간이나 커피 무역을 독점했습니다.

성경이 영어로 처음 번역 되었던 17세기 초에 맥주는 빈곤층의 술이었고, 상류층에서는 와인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17세기에 영국의 과학자이자 근대 화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은 물리학, 화학, 의학, 박물학에 대한 3권짜리 논문인 《철학적 작업(Philosophical Works)》을 발표했습니다. 보일은 술과 식물학의 연관성을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17세기 중반부터 지나친 알코올 섭취는 종교적 측면에서 악으로 취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맥주(Beer) : 홉이 맥주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와인(Wine) : 17세기에 들어와 샹파뉴 지역의 와인을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킨 사람이 동 페리뇽(Dom Perignon)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샴페인을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17세기 들어와 메독(Médoc)이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보르도 전역의 와인을 17등급으로 분류하면서 쌩-테밀리옹(Saint-Émilion) 와인은 좋은 등급을 받아 품질면에서 상위권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7세기말 샹파뉴의 와인 제조회사들은 청포도뿐만 아니라 적포도에 엄지와 검지 힘을 가해 얻은 흰 포도즙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했습니다.

와인 : 앙드레 뤼르통(Andre Lurton)의 샤토들은 17세기 때 지어진 흔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역사가 17세기경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와인 : 한스 울리히 위겔(Hans Ulrich Hugel)이 리크비르 마을에 정착했습니다. 리크비르 마을에는 17세기부터 오랜 전통을 갖고 와인을 만들어온 위겔 &피스 가문의 포도밭과 양조장이 있습니다.

와인 : 영국에서 프랑스 와인의 수입이 어렵게 되자 포르투갈의 포트 지방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장기간 항해 도중 와인의 변질을 방지하고자 브랜디를 부어 만든 것이 달고 알코올 농도가 높은 포트 와인(Port Wine)의 시작입니다.

마데이라 와인은 17세기 후반부터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하고 항해한 것이 시작입니다.

 

 

와인 : 헝가리(Hungary)는 17세기부터 프랑스와 독일 다음으로 좋은 와인을 만드는 곳으로 이름나 있었습니다.

아이리쉬위스키(Irish Whiskey) : 불법적으로 위스키를 증류하여 만들어진 포틴은 아일랜드에서 유래되어 아이리쉬 위스키의 선조라 할 수 있습니다.

스카치위스키(Scotch Whisky) : 17세기 중반부터 정부가 증류업자들에게 거액의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에든버러(Edinburgh)의 네데밀(Nethemill)은 17세기부터 킨카덴샤에 있었던 대맥 생산 농장의 이름입니다.

브랜디(Brandy) : 17세기 들어서 코냑(Cognac) 지방에서 와인을 증류하기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코냑 회사들이 코냑 지방에 처음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브랜디가 활발하게 전 유럽으로 뻗어나가던 17세기와 18세기였습니다.

럼(Rum) : 17세기에 증류 기술을 익힌 영국인이 소앤틸리스제도(Lesser Antilles)의 바베이도스(Barbados)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진(Gin) : 칵테일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중세 문헌에서 가장 초기 형태의 진을 찾아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물약에 쥬니퍼 추출물을 사용했던 17세기의 네덜란드 의사 프란키스쿠스 실비우스(Franciscus de le Boe Sylvius)가 유력한 후보였습니다.

17세기 초반에 영국에선 다양한 쥬네브르가 생산되었습니다.

17세기 중엽에 홀랜드 곳곳에 셀 수 없이 많은 소규모 증류소가 생겨나서 열심히 쥬네브르를 생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