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아르헨티나] 섹시한 와인 - Finca Las Moras Malbec 2008

까브드맹 2010. 1. 4. 11:00

핀카 라스 모라스 말벡 2008

1. 와인과 이미지

와인을 마시다 보면 첫 향을 맡거나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을 때 머릿속에 어떤 느낌이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신의 물방울처럼 모든 와인이 머릿속에 어떤 정경이 그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와인은 이미지가 떠오르는 일이 있죠. 저의 경우에는 샤토 가쟁(Chateau Gazin)을 마셨을 때 중세의 우거진 숲이 머릿속에 그려지더군요. 바롤로(Barolo)를 처음 마셨을 때는 겹겹이 자신을 감추고 쉽게 내보이지 않는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고요. 비싸다고 해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고, 저가의 와인이라고 아무런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뜻밖의 와인에서 생생한 이미지가 떠오르죠. 아르헨티나의 산 후안(San Juan)에서 수확한 말벡(Malbec) 100%로 만드는 핀카 라스 모라스 말벡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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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와인 시음기

와인을 잔에 따라 첫 향기를 맡으면 약간 후끈(?)한 기운과 함께 체리와 산딸기가 뒤엉킨 붉은 과일 향이 힘차게 코를 찔러옵니다. 여기에 약간의 허브 향이 바닥에 깔리면서 위의 향들을 밑받침하죠. 맛을 보면 단맛과 쓴맛이 적절히 섞여 있는 가운데 약간의 신맛이 요염하게 포진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맛과 향이 어우러진 느낌은 뭐랄까... 늘씬하고 눈빛이 뇌쇄적인 요염한 미녀? 풍만하지 않은 가는 몸매를 갖고 섹시한 기운이 줄줄 흐르는 20대 초반의 검은 머리 미녀 같습니다.

맛에서는 틀림없이 쓴맛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쓴맛이 기분 나쁘지 않고 입안에서 자꾸 당기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마치 알고도 독을 마시게 되는 느낌이랄까? 첫 느낌의 부드러움이 마지막에 약간 떫어지는 가운데 산미와 쓴맛이 어울리는 풍미가 꽤 매혹적입니다. 뭐랄까 약간 고소한 듯한 내음도 나는데 이게 도대체 어떤 향인지 모르겠네요. 시간이 흐르면 달콤한 포도잼 냄새가 나기 시작하지만, 첫 향에서 느껴졌던 요염한 내음은 마시는 내내 잊히지 않았습니다. 붉은 과일 향이 강하고 달콤한 풍미를 지닌 말벡 품종의 강점이 이렇게 다가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요.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으니 말벡 품종을 좋아하시거나 과일 향 넘치는 와인을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 마셔보시기 바랍니다.

소고기와 양고기 등의 스테이크, 또는 직화로 구운 요리, 오래 숙성한 치즈와 잘 맞습니다. 2010년 1월 4일에 시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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