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저녁 7시 30분에 논현동 FEB22에서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으로의 여행> 벙개가 있었습니다. 벙개라고 하지만, 이탈리아 중북부 지역의 다양 다종한 화이트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시음회였죠.
많은 분이 참석하셔서 시음회는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제가 느꼈던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해 올려보겠습니다.
1. 자씨&마르케사니 트레비아노 다부르쪼(Jasci & Marchesani Trebbiano D'Abruzzo) 2014
연한 금색, 또는 진한 밀짚 색을 띠고 있습니다. 레몬과 사과의 시원한 향 속에 돌 내음이 약간 나고, 리슬링(Riesling)도 아닌 것이 페트롤 향도 조금 납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 감기 시럽 같은 달달한 냄새도 풍깁니다.
미디엄 바디에 제법 튼튼한 구조감을 지녔고, 크리스피(crispy)한 느낌이 납니다.
산미와 알코올의 조화가 좋습니다. 산미는 산뜻하면서 강하고, 양도 많군요. 침이 저절로 나옵니다. 잘 익다 못해 살짝 마른 노란 속살의 홍옥 사과의 맛이 나며, 미네랄리티 풍미에 살짝 페트롤 풍미가 느껴집니다. 단순한 스타일이지만, 제법 깊이가 있습니다. 여운은 길지 않지만, 느낌이 좋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강도도 셉니다.
트레비아노는 프랑스에서는 우니 블랑(Ugni Blanc)이라고 부릅니다. 보르도 북부에서는 이 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서 단식 증류기로 두 번 증류한 다음 오크통에서 숙성해 브랜디를 만듭니다. 이것이 꼬냑(Cognac)이죠.
2. 빌라 스파리나 가비 디 가비(Villa Sparina Gavi di Gavi) 2014
연한 레몬색입니다. 쇠, 또는 부싯돌 냄새가 먼저 납니다. 레몬과 청사과가 떠오르는 상큼하고 상쾌한 향이 나고 허브 내음도 약간 있습니다.
약한 탄산끼가 느껴지며, 구조감은 조금 어설픕니다.
살짝 연한 단맛이 나고 산미는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귀엽지만 어설픈 소녀 같은 느낌이 드는 와인이지만, 자기만의 개성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피니시는 약하고 좀 어설픈 느낌입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귀엽고 부담 없는 산도를 지닌 맛있는 와인으로 변모하니 천천히 마시는 게 좋습니다.
3. 이나마 빈 소아베 소아베 클라시코(Inama Vin Soave Soave Classico) 2014
중간 레몬색을 띠는 와인입니다. 시원하고 상큼한 향 속에선 청사과와 덜 익은 홍사과의 중간 정도 되는 향이 느껴집니다.
구조감은 잘 짜여 있고, 약간 오일리(Oily)합니다.
산미는 풍부하고 산도는 중간보다 살짝 높습니다. 오일리하고 씁쓸한 맛 속에선 허브와 풀의 풍미가 납니다. 여운의 길이가 좋고, 허브와 미네랄 풍미가 이어집니다. 점잖은 중년 부인이 떠오르는 와인.
4. 비시 베르디끼오 디 마테리카 비녜토 디 폴리아노(Bisci Verdicchio di Matelica, Vigneto di Fogliano) 2010
중간에서 살짝 옅은 레몬색입니다. 구아바 같은 열대 과일 향이 나고, 라이찌(lychee)나 망고 같은 향도 느껴집니다. 허브나 아몬드 향도 있습니다.
묵직하며 견고한 구조감을 지닌 와인으로 부드러운 질감을 지녔지만, 목질(木質)의 느낌도 조금 있습니다.
풍부하며 부드러운 산미를 지녔고, 구아바와 라이찌 같은 열대 과일과 허브와 풀, 나무 같은 식물성 풍미가 섞여 있습니다. 여운은 길고 느낌이 강렬합니다. 열대 과일의 풍미가 길게 이어집니다.
5. 바스티아니찌 빈느 오르소네 프리울라노(Bastianich Vigne Orsone Friulano) 2012
묽은 레몬, 또는 아주 묽은 금색입니다. 부드러운 단내가 미세하게 나며, 식물성 오일향이 있습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견과류 향이 나는데, 마카다미아나 캐슈넛 같은 느낌입니다. 미네랄 향 또한 미세하게 존재합니다.
오일리한 질감을 지닌 풀바디 와인으로 부드러운 산미가 있고, 13%의 알코올이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견과류와 미네랄 풍미가 이어지지만, 아쉽게도 과일 향은 매우 적습니다. 복숭아 정도의 풍미. 인상이 강하고, 여운은 깁니다. 부족한 과일 향이 아쉽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는 좋습니다. 시원하면서 매운 느낌이랄까요? 뒤늦게 산미가 확 치고 올라오는 것이 인상적이군요.
6. 바스티아니찌 빈느 오르소네 피노 그리지오(Bastianich Vigne Orsone Pinot Grigio) 2013
연한 레몬색으로 톡 쏘는 레몬과 청사과 향이 있습니다. 돌과 허브 내음이 납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느껴지지만, 거친 느낌이 살짝 있는 미디엄 바디 와인입니다.
날카롭지만 질 좋은 산미는 산도가 높고 풍성해서 한 잔 하면 침이 입에 잔뜩 고입니다. 사과와 풋풋한 풀, 흰 꽃, 미네랄 풍미가 느껴지며 살짝 견과류 풍미도 있습니다. 여운은 느낌이 아주 좋고, 가벼운 견과류와 허브 풍미, 사과 풍미가 살짝 이어집니다.
7. 스키오페토 콜리오 프리울라노(Schiopetto Collio Friulano) 2011
중간 레몬색의 와인으로 코코넛 버터와 스위트 스파이스 향이 강합니다. 라이찌 같은 열대 과일 향도 나오고요. 좀 더 있으면 향긋한 노란 꽃과 식물성 비린내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질감을 가졌고, 잘 짜인 구조감을 보여줍니다.
부드럽고 우아한 산미가 풍부합니다. 열대 과일, 특히 라이찌 맛이 강해서 언뜻 게뷔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와인과 유사한 느낌을 줍니다. 그밖에 다양한 향신료와 허브 풍미가 있습니다. 볶은 커피콩의 풍미도 느껴지고요. 입안에서 느껴지는 강도가 좋고, 기분 좋은 여운이 라이찌와 허브 풍미를 남기면서 길게 이어집니다.
8. 스키오페토 콜리오 피노 그리지오(Schiopetto Collio Pinot Grigio) 2011
중간 농도의 금색 와인으로 기분 좋은 노란 꽃 향이 풍깁니다. 레몬과 고소한 견과류 느낌이 있고, 꿀이나 농익은 사과 같은 달달한 내음도 살짝 풍깁니다.
진한 맛과 잘 짜인 구조감을 지닌 견고하고 묵직한 풀 바디 와인입니다.
굳건한 산미 속에 약간 짭짤한 미네랄리티 풍미가 있습니다. 과일 풍미보다는 허브와 미네랄 풍미가 강합니다. 입안에 꽉 차는 느낌을 주면서 강도가 매우 세고, 여운은 아주 길고 복합적입니다. 다시 한 번 마신다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셔보고 싶습니다.
9. 스키오페토 콜리오 피노 비앙코(Schiopetto Collio Pinot Bianco) 2011
중간보다 살짝 진한 금빛을 띱니다. 스모키(smoky)한 향과 부싯돌, 맵싸한 나무 향, 벌집, 희고 노란 꽃의 향 등등이 느껴집니다.
부드럽고 윤기 있는 구조감 속에 살짝 거친 기운이 있습니다.
목질감이 느껴지는 산미 속에 희미한 단 느낌이 납니다. 사과와 레몬, 부싯돌 풍미에 맵싸한 나무 풍미가 있고, 견과류 풍미도 느껴집니다. 입안에 강한 느낌을 주는 와인으로 길게 이어지는 여운 속에서 나무와 꽃 향기가 이어집니다.
10. 테누타 프라텔리 포베로 로에로 아르네이스(Tenuta Fratelli Povero Roero Arneis) 2013
연한 레몬색을 띠고 있습니다. 레몬과 사과 향 속에 담배 향과 스모키한 냄새가 나고, 단 사탕 내음이 살짝 있습니다.
다소 빈약한 구조감으로 인해 묽은 느낌이 나는 미디엄 마이너스 바디의 와인입니다.
산미가 풍부하나, 품질은 보통입니다. 단맛이 살짝 느껴집니다. 흰 꽃과 약한 나무 풍미가 있고, 조금 밀키(milky)한 느낌입니다. 민트 같은 허브 느낌도 약간 있습니다. 여운의 느낌은 별로이고 길이도 별로입니다.
11. 리베또 랑게 나스세타(Rivetto Langhe Nascetta) 2013
조금 진한 금색의 와인으로 시원하고 향긋한 노란 꽃 향과 돌 내음이 납니다. 뮈스카_Muscat 같은 포도 향과 견과류 향, 삼나무 향 등도 느껴집니다.
다소 거칠고 신선한 느낌이지만, 미디엄 바디이면서 잘 짜인 구조감을 지닌 좋은 와인입니다.
거친 듯하나 품질 좋은 산미가 풍부해서 마시면 침이 입안에 잔뜩 고입니다. 노랗게 익은 사과와 오렌지 풍미에다 노란 꽃과 시원한 나무 풍미, 미네랄리티 등의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길게 이어지는 여운은 우왁스럽지 않으면서 복합적입니다. 뛰어난 밸런스를 보여주는 우아하고 세련된 와인이네요.
이날 마신 와인 중 가장 뛰어난 것이라면 11번인 리베또 랑게 나스세타 2013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스티아니찌 빈느 오르소네 피노 그리지오 2013이 제일 맘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