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인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충실한 모범생이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은 부족한 편이지만, 다른 지역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에는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죠. 그들이 그리스 문명에서 배운 문화 중에는 당연히 와인도 있었습니다.
일찍이 바다 건너 이탈리아 반도를 주목했던 고대 그리스인은 이탈리아 반도 남단에 여러 개의 식민도시를 세웠습니다. 도시 근처엔 당연히 포도밭을 조성해서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들었죠. 이탈리아의 토질이나 지형, 기후가 포도 재배에 적합했기에 그리스인은 이탈리아를 외노트리아(Oenotria), 즉 ‘와인의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와인 생산 기술은 교류를 통해 로마로 전파되었고 로마의 와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죠.
로마의 와인 문화가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북쪽에 있는 또 하나의 민족도 로마인에게 와인 문화를 전달해줬습니다. 그 민족은 에트루리아(Etruria)인이었죠.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와인 양조 기술은 사뭇 달랐습니다. 우선 그리스인은 포도나무를 ‘낮게’ 재배했지만, 에트루리아인은 올리브 나무나 호두나무 등을 버팀목으로 사용해서 ‘높게’ 재배했습니다. 그리스인은 포도나무를 빽빽하게 심고 수확량을 제한해서 와인 품질을 높였지만, 에트루리아인들은 성글게 심고 수확량을 늘렸으며 와인 품질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재배 방식의 차이가 오늘날까지 유지된다는 것이죠. 그리스인이 살았던 이탈리아 남부와 북서부에서는 지금도 그리스 방식으로 포도 농사를 짓고, 에트루리아 문명이 있었던 이탈리아 북동부에서는 지금도 격자 울타리(high-trellis) 방식의 버팀목을 사용해서 포도 농사를 짓습니다.
기원전 270년경 로마는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해서 그리스의 와인 생산 기술을 완전히 흡수합니다. 기원전 396년에는 에트루리아의 이름난 도시인 베이를 점령하죠. 마침내 기원전 1세기경에 에트루리아 전역을 석권하면서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와인 생산 기술도 고스란히 손에 넣게 됩니다. 로마의 와인 문화에 영향을 끼친 마지막 민족은 카르타고의 페니키아인이었습니다.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가 멸망할 때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의 농업 저술가 마고(Mago)의 저작 26권을 약탈했고, 이를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로마 와인의 발전에 사용했습니다.
<참고 자료>
1. 로도 필립스 지음, 이은선 옮김,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서울 : 시공사, 2002
2. 영문 위키피디아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