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부르네(Libournais)와 까농-프롱삭(Canon-Fronsac)
리부르네는 보르도(Bordeaux) 지롱드(Gironde) 강의 우측, 이른바 라이트 뱅크(Right Bank)에 속한 여러 생산지를 둘러싼 지역입니다. 리부르네라는 이름은 역사적으로 이곳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리부른(Libourne) 시에서 유래된 것이죠. 리부르네는 도르도뉴(Dordogne) 강의 오른쪽, 방위로는 북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이일(Isle) 강이 합류하는 곳까지 뻗어있습니다. 더 서쪽으로 가면 가론(Garonne) 강과 도르도뉴 강이 합쳐지는 지점이 있고, 그 북쪽에 부르(Bourg)와 블레(Blaye) 지역이 있죠. 뽀므롤(Pomerol)과 쌩-테밀리옹(Saint-Émilion) 와인에서 리부르네 와인의 전형적인 맛과 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리부르네에 속한 지역 명칭
① 쌩-테밀리옹(Saint-Émilion) AOC
② 몽타뉴-쌩-테밀리옹(Montagne-Saint-Émilion) AOC
③ 쌩-조르쥬-쌩-테밀리옹(Saint-Georges-Saint-Émilion) AOC
④ 뤼싹-쌩-테밀리옹(Lussac-Saint-Émilion) AOC
⑤ 퓌즈갱-쌩-테밀리옹(Puisseguin-Saint-Émilion) AOC
⑥ 뽀므롤(Pomerol) AOC
⑦ 라랑드-드-뽀므롤(Lalande-de-Pomerol) AOC
⑧ 프롱삭(Fronsac) AOC
⑨ 까농-프롱삭(Canon-Fronsac) AOC
⑩ 꼬뜨-드-까스티용(Côtes-de-Castillon) AOC (현재는 꼬뜨-드-보르도(Côtes-de-Bordeaux) AOC로 변경되었습니다.)
⑪ 프르미에르-꼬뜨-드-프랑(Premières-Côtes-de-Franc) AOC (현재는 꼬뜨-드-보르도(Côtes-de-Bordeaux) AOC로 변경되었습니다.)
1) 뽀므롤
뽀므롤은 고대에 로마군이 주둔하면서 처음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뽀므롤은 메를로(Merlot)를 주로 사용한 레드 와인으로 유명하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했습니다. 생산하는 와인도 대부분 화이트 와인이었죠. 이곳은 뚜렷한 시가지가 없고, 쌩-줄리앙과 비슷한 크기의 지역에 몇몇 마을이 흩어져 있습니다. 토양은 다른 보르도 지역처럼 주로 자갈로 이뤄져 있죠. 서쪽과 남쪽 구획은 모래가 많이 섞였고, 쌩-테밀리옹으로 향한 북쪽과 동쪽 구획은 진흙이 많습니다.
뽀므롤 와인도 다른 보르도 와인처럼 여러 가지 포도를 섞어서 만들며, 그중 메를로 함량이 제일 높습니다. 보르도 와인 중에선 탄닌과 산미의 함량이 제일 적은 편이라 맛도 가장 부드럽죠. 뽀므롤에선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을 부샤(Bouchet)라고 부르며, 재배 면적이 메를로에 이어서 두 번째로 넓습니다. 보통 뽀므롤 와인에 짙고 깊은 색을 보태주는 역할을 하죠. 뽀므롤 와인은 탄닌의 양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서 보통 다른 보르도 와인보다 훨씬 빨리 마시기 좋은 상태가 됩니다. 와인에 대한 별다른 등급은 없고, 생산자들도 와인 등급 제도를 만들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샤토 페트루스(Château Pétrus)는 보르도의 다른 1등급 와인들과 함께 분류되곤 합니다.
2) 쌩-테밀리옹
쌩-테밀리옹의 와인 생산지는 같은 이름의 행정구역 중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쌩-테밀리옹 지역을 둘러싸고 몽따뉘-쌩-테밀리옹(Montagne-Saint-Émilion)이나 쌩-조르쥬-쌩-테밀리옹(St-Georges-Saint-Émilion) 같은 마을이 몇 개 있고, 모두 생산하는 와인의 레이블에 쌩-테밀리옹 지역 명칭을 함께 쓸 수 있죠.
이곳은 서쪽으로 뽀므롤과 붙어있고, 메를로를 가장 많이 재배합니다. 두 번째로 많이 재배하는 포도는 까베르네 프랑이죠. 기후와 습도, 차가운 토양이 까베르네 소비뇽을 기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까베르네 소비뇽의 수확량은 레프트 뱅크보다 훨씬 적죠. 쌩-테밀리옹 와인은 가장 좋은 상태로 숙성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뽀므롤 와인보다 조금 더 길지만, 다른 보르도 와인보다는 짧은 편입니다. 작황이 좋은 해의 와인은 훌륭한 숙성 잠재력을 갖고 있죠.
1955년 쌩-테밀리옹 와인을 대상으로 처음 등급제가 실시되었고, 그 후 5차례에 걸쳐 갱신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등급 리스트는 2012년의 것입니다. 여기엔 샤토 오송(Château Ausone)과 샤토 슈발 블랑(Château Cheval Blanc)이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쎄(Premiers Grands Crus Classés) A로 선정되었고, 샤토 엉즐루스(Château Angélus)와 샤토 피쟉(Château Figeac)을 포함한 13개 샤토가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쎄(Premiers Grands Crus Classés) B 등급으로 뽑혔죠. 그밖에 55개 샤토가 그랑 크뤼 클라쎄(Grands Crus Classés)로 분류되었습니다. 쌩-테밀리옹에 관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하단에 있는 글을 참조하세요.
3) 까농 프롱삭
까농 프롱삭은 리부른 근처의 프롱삭(Fronsac) 시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언덕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작은 지역입니다. 이곳의 와인은 18~19세기까지는 인기가 높았지만, 지금은 메독(Médoc)과 쌩-테밀리옹 와인의 명성에 가려져 일부 와인 애호가 사이에서나 이름이 알려져 있을 뿐이죠.
고지대라서 평지인 메독과 달리 언덕이 많고, 포도밭도 언덕의 경사면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토양은 다양한 흙으로 이루어졌고, 진흙보다 사암과 석회암이 많습니다.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 포도밭에선 까베르네 소비뇽과 까베르네 프랑을, 상대적으로 햇빛을 적게 받는 북쪽 포도밭에선 메를로를 재배합니다. 포도 품종에 따라 잘 자라는 토양과 온도가 다르기 때문이죠. 큰 샤토나 와인 회사가 많은 메독과 달리 까농-프롱삭은 가족이 경영하는 작은 와이너리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소박하고 개성 있는 와인을 만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2. 샤토 까사뉴 오-까농(Chateau Cassagne Haut-Canon)
샤토 까사뉴 오-까농은 18세기에 리슐리외(Richelieu) 공작이 별장으로 지은 건물에서 시작한 샤토입니다. 지금은 장 자크 뒤부아(Jean-Jacques Dubois)와 지타(Zita) 부부가 샤토를 경영하죠. 샤토의 건물은 언덕 위에 있고, 언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총 13헥타르의 포도밭이 있습니다. 방위에 따라 포도밭에 영향을 미치는 미세기후(micro climate)가 달라서 재배하는 포도도 각기 다릅니다. 주로 메를로, 까베르네 소비뇽, 까베르네 프랑, 말벡 등을 재배합니다. 토양은 점토와 석회암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2003년 로저 보스(Roger Voss)는 디캔터(Decanter)지에 기고한 글에서 샤토 까사뉴 오-까농을 ‘보르도 우안 지역의 떠오르는 샤토’로 소개했습니다.
샤토 까사뉴 오-까농에선 레드 와인 두 종류를 생산합니다. 하나는 선별한 포도로 만든 고급 와인인 샤토 까사뉴 오-까농 라 트루피에(Chateau Cassagne Haut-Canon La Truffière)이고, 다른 하나는 샤토 까사뉴 오-까농이죠. 샤토 까사뉴 오-까농은 메를로(Merlot) 60%,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20%,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20%를 섞어서 만듭니다. 선별한 포도를 온도 조절이 되는 탱크에서 발효한 후 숙성하며, 새 오크통의 사용 비율은 30~40% 정도입니다. 까농 프롱삭 와인은 보르도에서 가격 대비 만족도가 가장 좋은 와인 중 하나이며 이 와인도 그러합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제법 진하고 어두운 루비색입니다. 잘 익은 검은 과일 향이 가득합니다. 서양 자두와 블랙베리, 블랙체리 향이 주로 나오고 블랙커런트 향도 약간 있습니다. 우아한 나무 향은 향 전체를 받쳐주네요. 결명자 향이 조금 올라오고, 여러 가지 향신료 향도 풍깁니다. 시간이 지나면 볶은 견과류와 시원한 허브 향이 퍼집니다.
아직은 거친 맛이 날 2009 빈티지인데도 부드럽고 탄력적인 질감이 인상적입니다. 구조가 웅장하거나 단단하진 않지만, 잘 짜인 직조물처럼 빈틈없는 걸 느낄 수 있죠. 떫은맛은 많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향후 3년까지 최고의 질감을 느끼게 해 줄 겁니다.
드라이한 맛에 풍성하고 진한 과일 풍미와 이를 받치는 산도의 조화가 좋습니다. 말쑥하고 빼어나며 찬찬한 맛이 나오고, 과일과 나무 풍미가 알맞게 어우러져서 너무 메마르지도 너무 진득하지도 않습니다. 블랙베리와 서양 자두 풍미에 매끄럽고 향기로운 나무 풍미가 어울리며 좋은 맛을 만드네요. 나무 풍미는 향보다 맛에서 더 두드러집니다. 다만 시간이 좀 지나면 과일 풍미가 지나치게 올라오고 알코올 느낌도 강해집니다. 여운은 제법 길게 이어지고 나무 풍미가 주로 남습니다.
과일로도 나무로도 치우치지 않는 풍미, 잘 익은 탄닌이 주는 탄탄한 구조와 부드러운 느낌, 와인의 활력을 잘 유지시키는 좋은 품질의 산미, 14%의 알코올이 균형을 이루어 꽤 훌륭한 맛을 보여줍니다.
잘 구운 쇠고기와 양고기, 바게트처럼 달지 않은 빵, 알리오 올리오, 치즈 피자, 숙성 치즈 등과 함께 마시면 좋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13년 9월 6일 시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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