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인의 단점이라면 코르크를 땄을 때 즉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겁니다. 특히 보르도 와인이 그렇죠. 저렴한 보르도 와인이라도 최소 30분에서 1시간가량 지나야 제 모습을 슬슬 보여주거든요. 그래서 보르도 와인을 마실 때에는 미리 따놓거나 시간을 충분히 갖고 아주 천천히 마시는 게 좋습니다.
샤토 몽로즈는 로버트 파커가 "1989년 이래 가장 믿을 만한 쌩-떼스테프 그랑 크뤼"이며 "1855 등급을 새롭게 분류한다면 1등급을 차지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격찬한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입니다. 숙성 잠재력이 엄청나고 구조가 탄탄하며, 검은 과일 향을 비롯한 각종 향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와인이죠. 저도 기회가 되어서 몇 차례 마신 적이 있었는데 늘 좋은 평가를 내리곤 했습니다. 다만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이 문제죠.
이럴 때에는 샤토 몽로즈의 세컨드 와인인 라 담 드 몽로즈(La Dame de Montrose)를 추천합니다. 샤토의 오너인 장 루이 샤르물뤼(J. L. Charmolue)의 어머니이자 1944년부터 1960년까지 샤토 몽로즈를 운영했던 샤르물뤼 여사를 기념하여 1986년부터 생산한 라 담 드 몽로즈는 샤토 몽로즈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와인입니다. 탄탄한 구조와 숙성 잠재력, 과일과 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향과 풍미를 보여주는 모습이 샤토의 그랑 뱅인 샤토 몽로즈와 많이 닮았죠. 오픈 후에 맛과 향이 천천히 열리는 것까지 닮았기에 적어도 한 시간 전에 개봉하고, 딴 후에도 가급적 천천히 마시길 권합니다. 제 경우엔 마개를 딴 후 2시간 반이 넘었을 때부터 최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3년 10월 23일 작성되어 와인비전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