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니스트 말보로 피노 누아(Finest Marlborough Pinot Noir) 2009는 뉴질랜드 남섬의 말보로(Marlborough)에서 수확한 피노 누아(Pinot Noir) 포도로 만드는 레드 와인입니다.
1. 심플리 & 파이니스트
영국의 체슌트(Cheshunt)에 본사를 둔 국제적인 식료품&잡화 소매유통업체인 테스코(Tesco)는 세계 각지의 와인 생산지에서 찾아낸 맛있고 합리적인 가격의 와인이나 현지 와이너리와 함께 개발한 와인에 "Selected by Tesco"라는 문구를 넣어서 수입, 판매해 왔습니다.
오랫동안 와인 판매를 하며 테스코는 자체적으로 소비자의 구매 습관을 조사했고, 그 결과 두 가지 와인 브랜드를 출시했죠. 하나는 와인을 술의 한 종류로 생각할 뿐이지 와인의 세부 생산지와 포도 품종에는 관심 없고, 주로 와인의 맛이나 가격에 관심 많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심플리 와인(Simply Wine)"이란 브랜드입니다.
심플리 와인은 이름 그대로 소비자가 와인에 최대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수많은 와인 중에서 인기 있는 것만 고른 후 맛과 향처럼 소비자가 바로 느낄 수 있는 정보를 레이블에 표시해 판매하죠. 또 소비자가 어떤 와인을 고를지 가격 때문에 망설이지 않도록 모두 같은 가격을 붙였습니다. 따기 편하도록 마개도 스크루 캡을 쓰는 것이 많죠. 심플리 와인은 24종 이상이며, 국내에선 홈플러스에서 11종을 팔았었습니다.
또 하나는 심플리 와인보다 먼저 나온 "파이니스트(Finest)"라는 브랜드입니다. 파이니스트는 와인에 관심이 많고, 구매할 때 와인 생산지와 포도 품종, 맛과 향에 신경 쓰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와인 레이블에는 와인의 세부 생산지와 품종, 등급 등등 각국의 와인법에 규정된 내용 외엔 기록하지 않았지만, 폭넓은 지역에서 들여온 다양한 와인으로 구성되었죠. 현재 파이니스트 브랜드는 전 세계 각지에서 생산한 100여 종의 와인을 취급하며, 가격도 병당 5파운드부터 22파운드까지 다양하게 책정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여러 종류의 파이니스트 와인을 팔았는데, 가격은 수입 비용과 관세, 주세 등이 붙어서 영국보다 많이 비쌌습니다. 그래도 가격 대비 품질은 뛰어났죠.
아쉽게도 심플리 와인도 파이니스트도 테스코가 홈플러스에서 철수하면서 수입이 중단되었습니다. 아마 홈플러스에 남은 재고가 모두 팔린다면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질 겁니다.
2. 뉴질랜드 피노 누아 와인
뉴질랜드 와인은 소비뇽 블랑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제일 유명하지만, 그 외에 다양한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 나옵니다. 특히 피노 누아로 만든 레드 와인은 상당히 평가가 높아서 국제 와인 시장에서 프랑스 부르고뉴나 미국 오레곤(Oregon) 주의 피노 누아 와인과 비견될 정도이죠. 뉴질랜드 피노 누아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파이니스트 말보로 피노 누아(Finest Marlborough Pinot Noir) 2009는 뉴질랜드 북섬의 헉스 베이(Hawkes Bay)에 본사가 있는 세이크리드 힐(Sacred Hill) 와이너리에서 만들었습니다. 세이크리드 힐 와이너리는 남섬의 말보로와 센트럴 오타고에 포도밭이 있으며, 각 포도밭에서 수확한 피노 누아로 파이니스트 말보로 피노 누아와 파이니스트 센트럴 오타고 피노 누아를 생산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 곳에서 생산한 같은 등급의 피노 누아 와인을 테스코에서 모두 판매하지만, 와인 가격은 조금 다르다는 겁니다. 영국에서 말보로 피노 누아는 10.18£에, 센트롤 오타고 피노 누아는 10.99£에 판매하죠. 아마 지역에 따른 품질 차이를 반영한 것 같습니다.
파이니스트 말보로 피노 누아 2009는 양조 과정에서 달걀흰자 같은 동물성 물질을 일절 사용하지 않아서 채식주의자도 걱정 없이 마실 수 있습니다. 마개는 코르크가 아니라 스크루 캡으로 되어 있어서 따기 편하죠.
3. 와인의 맛과 향
옅고 다소 어두운 루비색이지만 맑고 투명합니다. 라즈베리와 레드 체리, 약한 서양 자두 향과 함께 향긋한 풀잎 내음과 비린 풀내음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오크향도 연하게 나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볶은 견과류의 고소한 향도 약간씩 나타나고, 정향처럼 맵싸하면서 단 냄새가 나오는 향신료 향도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나중엔 약간 기름진(?) 향도 올라옵니다.
피노 누아 와인답게 깔끔하고 깨끗합니다. 구조감이 짱짱한 것은 아니지만,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을 만한 힘은 있습니다. 탄닌은 부드러우며 떫은맛은 거의 없습니다. 달지 않고 드라이합니다. 신맛은 부드럽지만, 그렇게 강하진 않군요. 개인적으로는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붉은 과일의 풍미를 주로 맛볼 수 있으며, 식물 줄기의 씁쓸한 맛도 살짝 나옵니다. 전반적으로 균형 잡힌 부드럽고 마시기 편한 와인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거나 개성적인 맛은 아니군요. 알코올이 13.5%이지만 기운은 별로 강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맛과 향이 약간 더 좋아지니 천천히 마시거나 마시기 전에 30분 정도 일찍 따두는 것이 좋습니다. 여운의 길이가 다소 짧지만, 느낌은 순하고 좋습니다.
제법 도수가 높지만 거부감 없는 알코올, 부드럽고 순한 산미, 좋은 구조를 만들어주지만 떫지 않은 탄닌 등이 과일과 나무 풍미와 함께 적당히 어울려 균형을 이룹니다. 다만 거기에 그칠 뿐 확실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을 주진 못하네요. 비슷한 가격의 피노 누아 와인 중에선 꽤 나은 맛과 향을 보여줍니다.
양고기 요리, 차돌박이처럼 부드러운 부위의 쇠고기, 맵지 않게 양념한 닭요리, 고추 잡채처럼 쇠고기가 들어간 중국 요리 등과 잘 어울립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C로 맛과 향이 좋은 와인입니다. 2012년 7월 28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