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청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 백화수복(白花壽福)

까브드맹 2011. 2. 11. 06:35

● 생산 지역 : 한국 > 전라북도 > 군산

● 재료 : 쌀과 주정(쌀 발효 알코올과 주정 비율 1: 1.4)

● 어울리는 음식 : 각종 회, 어묵, 초밥 같은 일식, 생선전과 나물 요리 같은 한식 등.

해마다 명절이 되면 판매량이 급성장하는 주류가 있습니다. 주부들 사이에선 흔히 '정종(政宗)'으로 부르며 차례상에 올리는 청주(淸酒)이죠. 유교적인 제례 의식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위로는 사대부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까지 제사를 지냈던 조선 말기에 제사상에 올렸던 술은 각 집안에서 만들던 가양주(家釀酒)였습니다. 가양주는 지역마다 가문마다 맛과 향이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탁주가 아닌 청주였고 최고의 원료를 사용해서 정성을 다해 빚은 술이었죠. 그래서 현재 전해지는 고급 전통주 중에는 본래 가양주인 것이 많습니다. 경주 교동법주(慶州校洞法酒)는 경주 최 부자 집의 가양주이며, 호산춘(湖山春)은 황희 정승 집안의 가양주이고, 추성주(秋成酒) 역시 담양의 양대수 씨 가문에 전승되어오던 가양주였죠. 이외에도 수많은 가양주가 만들어져서 집안에서 제사를 지낼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사용되었고, 더러 외부에 팔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가 끝나면서 가양주 문화는 사라지고 맙니다. 일본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술에 세금을 매기고 허가 없이 함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했습니다. 해방 후 군사 독재 시대에는 식량 수급을 원활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양곡관리법을 만들어서 쌀로 술을 만들지 못하게 했죠. 이렇게 되자 쌀로 만드는 가양주는 빠르게 사라졌고, 막걸리도 쌀 대신 구호물자인 밀가루로 만들게 됩니다. 

가양주를 빚지 못하게 되었지만, 제사상에 올리기 위한 좋은 술은 여전히 필요했습니다. 조상을 공경하려고 지내는 제사상에 일할 때 마시는 막걸리나 공장에서 생산하는 싸구려 희석식 소주를 쓸 수는 없으니까요. 당연히 제사상에 올릴 술로는 쌀로 만든 고급술인 청주가 필요했으므로 정부에서는 특정 회사에서만 쌀로 청주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일본강점기에 군산에 지은 술 공장을 인수해서 1945년에 설립된 '대한양조'였습니다. 대한양조는 1963년에 당시로선 특급 청주인 백화수복(白花壽福)을 생산했고, 백화수복은 제례용 고급술로 인기리에 팔려나갔습니다. 백화수복의 인기가 너무 좋아지자 대한양조는 1967년에 '백화양조'로 회사 이름을 바꿀 정도였죠.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소주가 인기를 끌고, 고급 주류 시장에선 위스키 같은 양주를 선호하면서 청주 소비는 점차 줄어듭니다. 한때 국내 주류회사 중에서 가장 컸던 백화양조는 청주 수요가 줄면서 경영이 어려워졌고, 위스키 시장에선 '베리나인 골드 킹(Valley 9 Gold King)의 실패로 인해 결국 1985년에 두산그룹으로 넘어갑니다. 백화양조의 흥망사와 이 회사에서 일어났던 괴사건에 관한 얘기는 까날님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이후 백화수복은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두산주류에서 관리하며 만들게 됩니다. 그러다가 두산 그룹이 중공업 위주로 그룹 조직을 개편하면서 OB맥주와 산소주 같은 다른 제품과 함께 백화수복을 롯데로 넘겨버리죠. 롯데에서는 2011년 신묘년을 맞아 새롭게 디자인을 바꾼 백화수복을 시장에 내놓습니다. 레이블과 병뚜껑, 포장 용기를 기존의 하얀색에서 은은한 금색으로 바꾸고 병뚜껑을 감싸는 비닐 포장재인 캡씰도 금색으로 만들어 전체적으로 고급스럽게 했죠. 그래서 이전의 백화수복과 모양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내용물까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백화수복은 쌀과 누룩으로 만드는 전통 청주가 아닙니다. 30% 정도 깎은 쌀과 입국(粒麴)을 쓰고 알코올 95%로 된 주정(酒精)을 섞어서 만드는 일본식 청주이죠. 주정을 넣는 것은 양을 늘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알코올에는 약간의 단맛이 있어서 술에 감미를 더하기 위한 겁니다. 현행 주세법에는 쌀을 발효해서 생긴 알코올양의 두 배까지 주정을 넣을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넣으면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면서 술맛이 강해지므로 백화수복은 쌀 발효 알코올과 주정을 1 : 1.4의 비율로 혼합합니다.

백화수복의 이름을 달고 나온 이후 47년간 생산하면서 한때 국내 청주 시장의 90%를 점유하는 등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백화수복이지만, 요즘은 여러 회사에서 나오는 새로운 청주의 공격을 받으면서 점차 점유율이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명절에는 제례용 술의 대표 주자로 여전히 인기 있습니다.

(사진의 색보다 좀 더 옅은 빛입니다)

색은 투명하면서 아주 옅은 미색을 띱니다. 전체적으로 향이 풍부하며 풋사과 같은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 향이 납니다. 약간 단 향도 나고요.

깨끗하고 깔끔하며 무게감은 가볍습니다. 미끌미끌한 기운도 별로 강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마셔서 익숙해서 그런지 신맛과 단맛이 적당하게 어울리며 끝부분에 살짝 쌉쌀한 맛이 기분 좋습니다. 최고급 청주나 사케와 비교할 바는 아닐지라도 어지간한 청주엔 밀리지 않으며 가격을 고려해보면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죠. 한동안 우리나라의 대표 청주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품질이 받쳐줬으므로 4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생산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더 안정되고 부드러운 풍미를 보여줍니다. 여운은 그리 강하지 않고 순하면서 길이도 짧습니다. 어린 처녀 같은 순수함이 느껴지네요. 산도와 당도의 균형이 좋고, 질감도 적당합니다. 향도 동급의 청주중에선 빼어난 편이죠.

품질과 비교해서 4천 원 중반대의 가격은 꽤 좋습니다. 새로운 국산 청주가 계속 나오지만, 가격 대비 품질에서 당분간 백화수복의 아성은 계속될 것 같군요.

개인적인 평가는 D로 맛과 향이 부족한 청주입니다. 2011년 2월 10일 시음했습니다.

○ 국산 청주 시음기 글 목록

1. 오랫동안 국가 공인 대표 청주 - 경주법주(慶州法酒)

2. 우리 음식에 잘 어울리는 뛰어난 맛과 향을 갖춘 - 화랑(花郞)

3. 동급 최저 가격으로 심심한 맛과 향이 개성인 - 경주법주천수(慶州法酒天壽)

4. 종묘제례에 쓰이는 본격 국산 전통 청주 - 국순당 예담(禮談)

5. 천년을 이어온 전통 양조법인 백하주법으로 만든 - 배상면주가 차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