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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호박색 생명수 - 위스키의 어원과 역사

까브드맹 2010. 11. 1. 11:28

위스키는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술입니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로 나뉘는데 이중에 스코틀랜드 지역이 스카치 위스키를 생산하는 지역이며,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매매하는 위스키의 60%가 스카치 위스키이죠. 위스키의 어원은 고대 게일(Gaeilge, Gaelic)어의 "Uisge-Beatha(스코틀랜드 게일어, 아일랜드 게일어로는 Uisce-Beathadh)"라는 단어에서 나왔다고 하며 뜻은 "생명의 물"입니다. 이 단어가 변해서 "위스게바하(Usquebaugh)"가 되고, 위스게바하는 이후 "어스퀴보(Usquebaugh)" , "우슈코(Uisqe)"를 거쳐서 "위스퀴보(Wiskybae)"가 됩니다. 그 뒤에 어미가 생략되면서 "위스키(Wisky)"가 되었죠. 

아일랜드 전설에 따르면 위스키를 제일 먼저 만든 곳은 아일랜드라고 합니다. 기독교의 전도사인 생 페트릭(St.Patrick 387~461)이 아일랜드인에게 가르쳐준 증류 기술로 술을 만든 것이 위스키의 시작이라는데, 이때 만든 증류주가 정말 위스키와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중동과 이집트에서 원시적인 증류기술이 발명되었으므로 증류주를 만들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위스키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술인지 알 수 없고, 실제로 만들어 마셨는지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어차피 전설이니까요. (전설대로라면 순창에서 고추장을 드신 분은 세종대왕이므로 우리나라에서 고추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조선 초기가 됩니다)

위스키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2세기경이 되어야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72년 잉글랜드의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침입했을 때 주민들이 보리를 발효한 다음 증류해서 만든 술을 즐겨 마셨고 이것을 “생명의 물(Usque-baugh"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위스키가 영국에 전해진 것은 12세기, 또는 그 이전이라고 추정됩니다. 잉글랜드와 접경한 스코틀랜드에서도 거의 동시에 위스키 제조가 시작된 거로 보입니다. 스코틀랜드 재무부의 1494년 기록에 "아쿠아 비테(Aqua vitae. 생명의 물)"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때 위스키 제조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위스키도 15세기경까지는 다른 술처럼 수도원에서 성직자들이 주로 만들었습니다. 중세까지만 해도 먹고 남은 곡물로 증류주를 만들 만큼 높은 경제력과 뛰어난 화학 기술을 가진 곳은 수도원뿐이었기 때문이죠. 이것은 유럽 대륙에서 와인을 생산해서 판매한 곳이 주로 수도원이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고려 때까지만 해도 술을 만들어 판매했던 곳은 주로 사찰이었죠. 1534년에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로 영국의 가톨릭 교회가 폐쇄되고 수도원의 증류 기술자들이 민간으로 흩어지면서 이제 위스키는 민간에서 만들게 됩니다. 

18세기 초반에 위스키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1707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병해 대영제국이 탄생하면서 잉글랜드에서만 시행하던 몰트세를 1713년부터 스코틀랜드에도 부과하게 된 겁니다. 불만을 품은 스코틀랜드의 증류업자들은 폭동을 일으키면서 일부는 산속에서 밀조하고, 또 일부는 몰트세를 줄이려고 다른 곡물을 섞어서 위스키를 만들게 되죠. 산속에서 밀조하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특색이 없었던 위스키의 향과 색에 지금과 같은 특징이 생겨납니다.

원래 몰트는 햇빛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말렸지만, 산속에서 밀조하면서 숲 때문에 자연 건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걸 해결하려고 증류업자들은 피트(Peat, 초탄, 이탄)를 태워 그 열기로 몰트를 말렸고, 이 과정에서 피트향이 자연스럽게 몰트에 배게 되었죠. 피트는 히더(Heather)라는 관목이 죽은 후 오랜 세월에 걸쳐 탄화한 토탄의 일종으로 스코틀랜드 땅에 많이 널려 있습니다. 증류업자들은 흔히 구할 수 있는 피트를 사용해서 몰트를 말린 겁니다. 또한, 단식 증류기(Pot Still)를 사용해서 술에 농후한 맛과 향기가 들어가도록 했죠. 

허가 없이 몰래 만들었기에 증류업자들은 위스키를 시장에 내놓고 팔 수가 없었습니다. 판매가 빨리 이뤄지지 않으므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저렴한 용기가 필요했던 증류업자들은 이런저런 용기를 찾다가 스페인에서 셰리 와인(Sherry Wine)을 수입할 때 사용한 오크통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위스키를 셰리 와인을 다 마시고 남은 빈 오크통에 저장했고, 오크통에서 장기 숙성되면서 오늘날처럼 호박색을 띤 위스키가 탄생하게 되었죠. 이것이 독특한 풍미가 있는 “스카치 위스키(Scotch Whisky)"를 만들게 된 배경입니다.

밀조가 성행하자 이를 양성화하려고 하일랜드의 지주이자 상원의원인 알렉산더 고든이 1823년에 소규모 증류업소에서 저렴한 세금으로 위스키를 만들 수 있도록 새로운 조세법을 제안했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어 새 위스키 법이 공표되면서 많은 밀조업체가 면허를 취득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려고 하죠. 이때 최초로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 더 글랜 리벳(The Glenlivet)의 조지 스미스입니다.

1826년에 영국의 로버트 스타인(Robert Stein)이 발효액을 넣기 위해 증류를 멈출 필요 없는 연속식 증류기를 발명했지만 실용화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1831년에 아일랜드의 아니아스 코페이(Aeneas Coffey)가 로버트 스터인의 연속식 증류기를 개량한 새로운 연속식 증류기를 발명하고 특허를 내면서 연속식 증류기가 널리 퍼지죠. 현재 연속식 증류기는 그래인 위스키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합니다.

1880년경에 유럽의 포도밭이 필록세라의 공격으로 황폐해지자 와인과 브랜디 생산이 급감합니다. 당시 영국의 상류층이 즐겨 마시던 술은 프랑스에서 수입한 와인과 브랜디였는데, 생산량이 급격하게 줄면서 런던에서 와인과 브랜디가 바닥나게 되죠. 대체재로 급부상한 것이 위스키였고, 이후 위스키는 영국을 상징하는 술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