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책 이야기

[문화] 신화, 전설, 문학 속의 와인 이야기 1 - 길가메시 서사시의 홍수 설화

까브드맹 2010. 9. 25. 08:38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시팀을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길가메시 서사시의 11번째 점토판)

"나는 일꾼들을 위해 매일 소를 잡고 양을 잡았다.

목수들에게는 실컷 마실 수 있도록 독주, 붉은 술과 기름, 흰 술을 내주었다."

우트나피시팀(Utnapishtim)은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문학작품이라고 인정받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홍수 설화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이름의 뜻은 "생명을 본 사람"이죠.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홍수 설화에 따르면 인간들이 점점 번성해서 세상에 가득하여지자 "마치 거대한 들소처럼" 소란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거룩한 신들은 편히 쉬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우두머리인 엔릴을 중심으로 인류를 심판하기로 합니다. 이때 인간을 창조한 신 중의 한 명이며 잔잔한 파도와 지혜의 신인 에아(Ea, 수메르 신화에서는 엔키(Enki))는 이 사실을 우트나피시팀에게 알려줍니다. 에아는 우트나피시팀의 꿈속에서 신들의 계획을 알려주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바라투투의 아들, 슈르루팍의 사람아, 네 집을 부수고 배를 만들어라. 모든 소유물을 포기하고 살길을 찾아라. 세상의 재물을 버리고 네 영혼을 구해라. 거듭 이른다. 네 집을 부수고 배를 만들어라. 이제 지시하는 대로 만들어라. 폭과 길이를 같게 만들고, 갑판은 깊은 구덩이를 덮는 둥근 천장처럼 만들어 덮고, 그런 후에 배에다 모든 생물의 종자를 실어라."

우트나피시팀은 에아의 지시대로 배를 제작합니다. 크기는 마룻바닥 넓이가 1에이커이고 갑판의 사방 길이는 1백 20큐빗으로 네모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배의 갑판은 모두 일곱 개로 갑판마다 9등분으로 나눠서 사이사이에 칸막이를 세웠습니다. 또 필요한 곳마다 쐐기를 박은 다음 삿대를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고 읽어본 내용 같지 않습니까? 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전설과 흡사하죠. 학자들은 노아의 방주 얘기가 우트나피시팀의 홍수 설화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것으로 추정합니다.

방주 제작에 관한 내용 다음에 나오는 부분이 위의 술에 관한 언급입니다. 여기서 붉은 술과 흰 술은 아마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영문판으로 봤다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을 텐데, 번역본이라 '술'을 뜻하는 단어가 'Wine'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길가메시 서사시의 다른 부분에 포도로 술을 만드는 "시두리(Siduri, 젊은 여인이라는 뜻)"라는 여인이 등장하는 거로 봐서 당시에 이미 와인을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위의 글은 오래전부터 와인을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으로 나눠서 만들고 있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원전 21~18세기경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13~10세기경에 신-레케-운니니(Sin-leqe-unnini)라는 시인이 그때까지 전해지던 전설을 하나의 서사시로 모아서 아카드어로 편집했으며, 오늘날엔 이 판본을 표준판으로 인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