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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칠레 피노 누아가 별 볼 일 없을 거란 편견을 버려! - William Cole Vineyards Columbine Special Reserve Pinot Noir 2011

까브드맹 2021. 1. 28. 15:41

William Cole Vineyards Columbine Special Reserve Pinot Noir 2011

윌리암 콜레 빈야즈(William Cole Vineyards)의 콜럼바인 스페셜 리저브 피노 누아(Columbine Special Reserve Pinot Noir) 2011은 칠레 북부의 아콩카구아 리젼(Aconcagua Region)에 있는 까사블랑카 밸리(Casablanca Valley)에서 재배한 피노 누아 포도로 만든 레드 와인입니다.

1. 와인과 편견

와인을 마시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편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 지역은 아직 ◯◯ 품종 와인이 부족해."라는 생각이죠. 이런 편견은 그냥 생기지 않고 수많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와인을 접하게 되면, 과거의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와인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고정관념을 깨뜨린 최근의 쇼킹한 사건으로는 2019년 11월 13일의 앨런 스캇 피노 누아 2017 시음을 들 수 있죠.

그전까지 뉴질랜드의 중저가 피노 누아 와인이라면 "붉은 과일 향은 좋지만, 피망 같은 식물 향이 너무 강하고 알코올의 힘은 부족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그러나 앨런 스캇 피노 누아는 맛과 향이 굉장히 복합적이면서 기운도 강렬했습니다. 탄닌과 산도, 알코올의 균형이 뛰어나고 다채로운 풍미의 조화도 훌륭했고요. 뉴질랜드 피노 누아 와인에 관한 저의 부족한 생각을 단 번에 바꿔버린 와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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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났네요. 이번엔 칠레산 중저가 피노 누아 와인이었습니다.

칠레에는 코노 수르(Cono Sur)의 오씨오 피노 누아(Ocio Pinot Noir)처럼 훌륭한 피노 누아 와인이 있지만, 이런 와인들은 대부분 10만 원이 넘는 고가입니다. 5만 원 이하의 중저가 피노 누아 와인은 아직 "거칠거나 묽고, 과일이든 식물이든 한쪽으로 향이 치우치는" 와인이란 생각이 여전히 강했죠. 중저가 칠레산 피노 누아 와인의 갈 길은 아직 멀다!라고만 생각했죠.

그러나 이번에 시음한 윌리암 콜레 빈야즈의 콜럼바인 스페셜 리저브 피노 누아 2011은 그런 잘못된 생각이 '네가 아직 칠레산 피노 누아를 덜 마셔봐서 그래'라는 걸 알려줬습니다.

 

 

2. 와인 양조

윌리암 콜레 빈야즈의 콜럼바인 스페셜 리저브 피노 누아 2011은 칠레의 까사블랑카 밸리에서 재배한 피노 누아로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기후가 서늘해서 피노 누아 같은 포도가 충분한 산미를 갖도록 해주죠.

손으로 수확한 포도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넣고 14일간 색소와 탄닌을 추출하면서 발효한 다음 오크통에서 숙성했습니다. 숙성 기간은 백 레이블에는 12개월, 수입사 자료에는 6개월로 나왔네요.

초기에는 베리 종류의 과일 향이 주로 나왔겠지만, 거의 10년간 숙성되면서 굉장히 풍부하고 복합적인 맛과 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William Cole Vineyards Columbine Special Reserve Pinot Noir 2011의 색

조금 어두우면서 테두리는 살짝 가넷 빛을 띠는 루비색입니다. 오래된 와인이란 걸 보여주듯 말린 검은 과일 향이 강합니다. 무르익은 블랙베리에 말린 대추가 섞인 듯한 과일 향이군요. 우아한 나무와 구수한 흙 향도 약하게 섞여있습니다. 칠레산 중저가 피노 누아 와인에서 종종 나오는 비릿한 풀과 거친 나무, 지나치게 태운 향 같은 건 없네요. 점차 사향 같은 동물 향과 간장, 흑연. 가죽, 향신료 향 등이 올라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오는 말린 복분자와 마른나무 향은 늦은 가을의 오후 같은 청명하고 맑은 느낌을 줍니다.

부드럽고 제법 탄탄합니다. 잘 숙성한 탄닌은 여전히 힘이 있지만 떫은맛은 없습니다. 구조도 허술함 없이 탄탄하군요.

드라이하지만 말린 과일 풍미가 조금 달게 느껴집니다. 말린 대추와 블랙베리, 프룬(prune)의 산미와 풍미가 가득하고 탄탄한 나무 풍미와 은근한 흙 느낌이 재밌는 맛을 만들어냅니다. 사향과 낙엽 같은 숙성 풍미도 은근히 입에 남는군요.

신세계의 중저가 피노 누아 와인이라 그런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제법 올빈의 맛과 향을 풍깁니다. 아직도 힘찬 알코올은 와인에 활력을 불어넣네요. 시간이 지나면서 과일 풍미는 줄어들고 나무와 숙성 풍미가 두드러집니다. 여운에선 말린 대추와 구기자, 마른나무, 부엽토 등의 숙성 풍미가 남습니다.

 

 

검은 과일들의 진하고 묵직한 산미와 부드럽고 탄탄한 탄닌, 13%이지만 그 이상의 힘이 느껴지는 알코올이 세월과 함께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냈습니다. 뛰어난 균형미와 올빈처럼 그윽하게 무르익은 맛과 향이 중저가 칠레 피노 와인에 대한 모자란 생각을 바꿔버립니다.

과일과 나무뿐만 아니라 숙성을 통해 나오는 부케(bouquet, 2차 아로마)가 가득한 피노 누아 와인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적극 추천합니다. 코르크를 딴 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1시간~1시간 30분가량 천천히 마신다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아름다운 맛과 향에 놀라게 될 겁니다.

이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은 소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 갈비찜과 뵈프 부르기뇽, 미트 스튜, 라구 소스 파스타, 동파육, 버섯요리, 숙성 치즈 등입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21년 1월 26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