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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디] 토속적인 향취를 내보이던 - Eau-de-Vie de Marc de Bourgogne Domaine Georges Lignier et Fils

까브드맹 2010. 4. 26. 17:43

증류주는 발효주를 증류하여 추출한 술입니다. 중동 지역에서 최초로 발명된 알코올 증류법은 세계 각지로 퍼져 무수한 증류주를 탄생시켰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탁주와 청주를 증류하여 소주가, 중국에서는 고량주가 만들어졌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용설란을 이용해 만든 주정을 증류하여 데낄라를 만들어 냈고, 카리브해 일대에서는 사탕수수의 폐당을 이용하여 럼이 만들어졌지요. 유럽에서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보리를 이용해 만든 주정을 증류하여 위스키를 뽑아냈고, 프랑스에선 포도주를 증류하여 대표적인 브랜디인 꼬냑과 아르마냑을, 사과술을 증류하여 칼바도스를 만들어냅니다. 러시아에서도 곡물과 알뿌리를 이용한 주정을 증류하여 보드카가 만들어졌으며, 네덜란드에서는 싸구려며 최악의 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진이 탄생하게 됩니다. 요즘은 영국의 드라이 진이 더 유명하긴 하지만요. 이처럼 알코올 증류법을 사용할 수 있을 만한 화학 기술을 지녔던 나라들에서는 어김없이 증류주를 만들어졌습니다. 사케의 나라인 일본도 고구마를 이용한 고구마 소주가 만들어졌으니 가히 증류주가 없는 나라는 없다고 봐야겠지요.

와인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와인을 이용한 다양한 증류주가 있는데, 널리 알려진 것으로 브랜디로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꼬냑과 아르마냑이 있습니다. 꼬냑은 프랑스 꼬냑 지방에서 화이트 와인을 증류하여 만드는 브랜디, 아르마냑은 아르마냑 지방에서 역시 화이트 와인을 증류하여 만드는 브랜디인데, 화이트 와인을 증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갈색이 도는 것은 증류 과정에서 술이 타서 안쪽을 그을린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과정 중에 색소가 배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색상을 예쁘게 하려고 캐러멜을 첨가하기 때문이지요. ^^ (요건 위스키도 마찬가지) 

그런데 꼬냑은 보르도시에서 지롱드(Gironde)강 건너 북쪽의 샤랑뜨(Charentes) 지방에 위치해 있고, 아르마냑은 보르도시에서 가론느(Garonne)강을 따라 남쪽에 있어 모두 보르도 일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르도와 함께 프랑스 와인의 대표 지역이랄 수 있는 부르고뉴 지역에는 와인을 이용한 훌륭한 증류주가 없을까요? 부르고뉴 지역은 매우 뛰어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역이며, 이 와인들의 품질이 워낙 명성이 높기에 증류주의 생산에는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르고뉴에도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이용한 증류주가 있으니 이를 '오드 비 드 마르 드 부르고뉴(Eau-de-Vie de Marc de Bourgogne)'라고 합니다.


'오드 비(Eau-de-Vie)는 '생명의 물'이란 뜻인데, 재미있는 것은 위스키와 보드카도 그 어원은 '생명의 물'이란 뜻이랍니다. 와인을 만들 때는 포도 껍질 같은 찌꺼기(marcs)가 생기는데, 부르고뉴에서 젠(gennes)이라고 부릅니다. 이 찌꺼기들은 와인의 압착 과정에서 주스(와인)를 빼내고 남은 것들인데, 바로 증류를 하면 풍미가 별로일 뿐만 아니라 알코올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레드건 화이트건 찌꺼기를 한데 모아서 양조통에 담은 후에 마르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한 후 겨울까지 잘 보관해둡니다. 찌꺼기들은 통 속에서 추가 발효를 일으켜 풍미도 좋아지고 알코올도 증가하게 되는데, 겨울이 되면 증류기로 찌꺼기를 끓여 증류주를 뽑아냅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술을 '오드 비 드 마르 드 부르고뉴'라고 하며 '마르 드 부르고뉴(Marc de Bourgogne)'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합니다. 증류된 마르는 71도를 넘지 못하며 오크통 속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숙성시켜 맛과 향을 증진합니다. 오크통에서 숙성된 마르 드 부르고뉴는 시음 공식 위원회의 검사를 받고 합격한 후에 유통되는데 이때 알코올 도수가 40도 이하로 내려가면 안 된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마르 드 부르고뉴의 생산, 저장과 수요는 최근에 많이 감소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증류주에 대한 세금이 증가하자 반 알코올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정된 알코올 할당량을 제외하면 매우 적은 양만을 만들어지고 있어, 포도 재배업자들과 소수의 외국 고객들만 그 맛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네요.

제가 마신 마르 드 부르고뉴는 모레 생드니(Morey-St-Denis)에 있는 도멘 죠르쥬 리니에르 에 피스(Domaine Georges Lignier et Fils)의 와인 부산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향은 소나무 혹은 오크 향 같은 나무의 향이 났으며, 은근히 두엄 같은 구수한 향도 느껴졌습니다. 맛은 위스키보다 조금 더 단 맛이 났는데, 깊은 맛은 떨어지더군요. 달고, 쓰고, 신맛이 조금씩 들어 있으며 입안을 부드럽게 자극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오래 숙성시킨 위스키나 X.O급 이상의 브랜디에는 결코 미치지 못하는 맛과 향이지만, 어쩐지 시골의 가을날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하루의 일을 마치고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잔한다면 아주 멋질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탈리아에서도 와인을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을 이용하여 증류주를 만드는데 '그라빠(grappa)'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투명한 색깔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르고뉴에서도 꼬냑처럼 와인을 이용하여 만드는 증류주가 있는데, '오드 비 드 뱅 드 부르고뉴(Eau-de-Vie de Vin de Bourgogne)' 또는 '라 핀 부르고뉴(La Fine Bourgogne)'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