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생산지

[조지아] 조지아 와인 개괄

까브드맹 2018. 8. 8. 08:00

조지아의 와인 생산지 지도
(이미지 출처 : https://wineonsix.com/files/2017/01/georgia-wine-regions.jpg)

1. 조지아의 지리와 역사

예전에는 그루지아로 불렀던 조지아(Georgia)는 소비에트 연방(Soviet Union)에 속했던 공화국입니다. 지금은 물론 독립했죠. 소련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의 고향이 이곳이어서 적대자들은 그를 '그루지아의 백정', 또는 '그루지아의 돼지 새끼'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스탈린이 정말 조지아 출신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조지아 옆에 있는 오세티아의 접경 지역이나 오세티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탈린의 출신지가 최소한 조지아 근방인 것과 스탈린이 조지아 와인을 즐겨 마셨다는 사실입니다. 스탈린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Pushkin)도 부르고뉴 와인보다 조지아 와인을 더 좋아했다고 하니 당시 조지아 와인의 명성이 뛰어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국내에선 2008년에 SBS 드라마 온에어에서 이범수와 김하늘이 조지아 와인인 "오카디 레드 드라이 2005"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서 조지아 와인이 잠깐 인기를 끌었다가 수입한 와인이 대부분 달아서 금세 인기가 꺼졌죠. 그러다가 2016년에 원래 보드카를 취급하던 (주)러스코라는 수입사가 본격적으로 조지아 와인을 들여오면서 국내 와인 애호가들에게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조지아가 세계 최초로 와인을 만들어서 마신 지역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합니다. 유적에서 나온 포도 씨앗은 최소 5,000년 이상 되었고, 이때 이미 꺾꽂이로 포도나무를 번식했을 거로 짐작되는 흔적이 보인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입증하듯 조지아에는 대략 500여 종 이상의 양조용 포도 품종이 있습니다. 한 지역에서 이렇게 다양한 품종이 있는 것은 그만큼 포도를 재배한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얘기가 되죠. 조지아 정부는 이 중에서 38종을 공식 양조용 포도로 지정했습니다.

조지아의 위치
(조지아의 위치. 이미지 출처 : https://www.familysearch.org/wiki/en/images/7/72/Georgia_%28Country%29counties.png)

다만 중동과 러시아를 오가는 길목에 있다 보니 수많은 민족과 국가의 침입을 받았고, 근대 이후엔 러시아와 소련의 영향으로 와인 양조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온 방법으로 와인을 만드는 일이 많죠. 

2. 조지아의 와인 양조

크베브리의 모습
(크베브리의 모습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b/Georgian_Kvevri.jpg/1024px-Georgian_Kvevri.jpg)

조지아의 전통 와인 양조법은 크베브리(Kwevri)라는 큰 항아리를 입구만 내놓은 채 땅에 파묻은 다음 포도를 넣고 자연적으로 발효하기를 기다리는 겁니다. 이때 포도 줄기와 잎이 들어가기도 하죠. 포도는 항아리 속에서 발효해서 와인이 되고, 사람들은 중요한 행사나 축제가 있을 때 꺼내 마십니다. 이게 제대로 될까 싶지만, 조지아에서는 BC 6,000년 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어 마셨습니다.

크베브리에서 만든 와인은 탄닌이 많이 들어간 낯선 맛이지만, 제대로 되면 더없이 훌륭한 와인이 탄생합니다. 다만 결과야 어떻든 이런 방식은 일정한 품질로 대량 생산해야 하는 현대 와인 산업에 적합하지 않죠. 그래서 앞으로 더 유지될지 아니면 소규모 와인 생산자를 제외하고 큰 와인 회사에서는 사라질지 알 수 없습니다.

3. 조지아의 포도 품종

조지아 와인에 사용하는 포도는 다양하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흑포도인 사페라비(Saperavi), 청포도인 르카치텔리(Rkatsiteli)와 무츠반(Mtsvane)입니다.

사페라비는 조지아를 대표하는 포도로 진한 색에 서양 자두 향이 나며 풍부한 탄닌과 생생한 산미가 있어서 장기 숙성력도 뛰어납니다. 그래서 충분히 국제 품종이 될 수 있는 품종이죠. 과거 조지아 와인이 러시아와 소련에서 특별한 인기를 누렸을 때, 모스크바 시민은 사페라비 와인을 소련의 레드 와인 중에서 최고로 쳤다고 합니다.

조지아가 원산지인 르카치텔리는 가장 오래된 포도 중 하나입니다. BC 3,000년 경의 항아리에서 르카치텔리의 씨앗이 발견되었을 정도죠. 소련에서 르카치텔리 와인은 인기 높았고, 전체 소련 와인 생산량의 18% 이상을 차지한 적도 있습니다. 르카치텔리는 일반 와인부터 셰리 같은 드라이한 강화 와인까지 모든 형태로 생산되곤 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와인이 소련의 정신을 좀먹는다면서 와이너리의 1/3가량을 폐쇄하기 전만 해도 르카치텔리의 재배 면적이 세계에서 가장 넓었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지아에서는 르카치텔리를 사용한 스위트 와인도 생산합니다.

무츠반은 주로 르카치텔리에 과일 향과 풍미를 보태려고 사용합니다. 무츠반은 새로운, 젊은, 녹색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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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지아의 와인 생산지와 와인 종류

조지아의 유명한 와인 산지는 다섯 곳입니다. 수도인 트빌리시(Tbilisi) 주변의 카르틀리(Kartli), 서쪽의 이메레티(Imereti), 북서쪽의 라차 레크쿠미(Racha-Lechkhumi)와 크베모 스바네티(Kvemo Svaneti), 자치 공화국인 아자라(Adjara), 마지막으로 카프카즈(Kavkaz) 산맥 동쪽 기슭의 카헤티(Kakheti)입니다.

다양한 와인이 있지만, 국내에 많이 알려진 것은 아래의 다섯 종류입니다.

1) 사페라비

카헤티 지역에서 사페라비 포도로 만드는 와인입니다. 포도 추출물이 많아서 탄닌이 강하고, 개성적인 향과 조화로운 맛이 납니다. 

2) 무쿠자니(Mukuzani)

카헤티의 무쿠자니 지역에서 수확한 사페라비 포도로 만드는 드라이 레드 와인입니다. 무쿠자니는 지역 명칭으로 통제(AOC)하는 지역이죠. 크베브리가 아니라 온도 조절이 되는 발효조에서 선별한 효모를 넣어서 만드므로 품질이 매우 뛰어납니다. 사페라비로 만드는 최고의 와인으로 평가받으며 국제 와인 대회에서 수상도 많이 했습니다.

3) 치난달리(Tsinandali)

카헤티의 소지역인 텔라비(Telavi)와 크바렐리(Kvareli)에서 수확한 르카치텔리와 무츠반 포도로 만드는 드라이 화이트 와인입니다. 무쿠자니와 마찬가지로 지역 명칭으로 통제합니다.

4) 알라자니(Alazani)

알라자니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듭니다. 화이트 와인은 르카치텔리 100%로 만드는 세미 스위트 와인이고, 레드 와인은 사페라비와 르카치텔리를 6:4로 섞어서 만드는 가벼운 세미 스위트 와인입니다. 화이트 와인은 국제 와인대회에서 3개의 금메달과 3개의 은메달을 받았을 만큼 평가가 좋습니다.

5) 알라베르디(Alaverdi)

알라베르디 지역에서 재배한 사페라비 포도로 만듭니다. 화이트 와인도 생산합니다.

5. 기타

조지아인은 유별나게 와인을 사랑하며 주량도 엄청납니다. 지난 1975년에 140세로 세상을 떠난 20세기 최장수 여인인 장드브나 할머니에게 기자들이 장수 비결을 물었더니 "40세부터 100년간 손수 만든 와인을 매일 5잔씩 마셨는데 이것이 장수의 비결"이라며 기자들에게도 "당신도 매일 와인 한 병을 마시면 나보다 더 장수할 수 있다."라고 권했답니다. 정말 와인 덕분에 오래 사셨는지는 모르지만, 와인을 엄청나게 많이 마신 것은 사실이겠죠.

비단 장드브나 할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조지아인도 와인을 엄청나게 마십니다. 그런데도 조지아가 세계적인 장수국가인 비결은 아무래도 사페라비 포도와 뭔가 영양학적인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영국의 저명한 와인 평론가 젠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도 그녀의 저서인 <와인 아틀라스(Wine Atlas)>에서 

“조지아인들의 와인 사랑은 유별나며 주량은 차라리 겁이 날 정도이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장수국가인데, 아마도 사페라비 포도와 무언가 영양학적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휴 존슨, 서울 : 세종서적(주), 2009, 280p)

라고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