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주 와인의 시작
호주 와인의 역사는 유럽인이 호주 대륙에 상륙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788년 영국의 아서 필립 선장이 최초로 와인용 포도 묘목을 호주에 심으려고 시도했지만, 토질이 맞지 않아 실패했죠. 그 후 "호주 포도 재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 버스비(James Busby)가 유럽에서 678종의 다양한 포도 묘목을 가져와 심었고, 호주 주민에게 와인 양조법을 전파했습니다.
초창기의 호주 와인은 양조법이 조악했고 품질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후 품질이 조금씩 좋아지기는 했지만, 경제 대공황을 전후로 소비자들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선호하면서 70~80년대까지 주로 강화 와인을 생산했죠. 일반 와인도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긴 했지만, 품질이 좋아지지 못해서 몇몇 와인을 빼고 호주 와인은 전 세계 와인 시장에서 이렇다 할 명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1980~90년대에 이르러 레드 와인의 색과 향, 맛이 개선되면서 레드 와인 소비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수출도 많이 증가해서 오늘날 호주 와인은 칠레와 미국과 함께 신세계 와인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습니다.
2. 국내 와인 시장에서 호주 와인의 위치
국내에서 와인을 많이 안 마셔본 소비자들에게 호주 와인은 잘 모르는 와인이며 인기도 없습니다. 신세계 와인 중에서 미국과 칠레 와인은 누구나 그 나라에서 와인을 만든다는 걸 알고, 한두 번 이상 마셔본 일도 있다고 얘기하죠. 하지만 호주에서 와인이 나오는 줄 모르는 사람은 의외로 많고 마셔보지 않은 사람도 꽤 되더군요. 심지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옐로우 테일(Yellow Tail)을 사서 마셨어도 정작 그게 호주 와인인줄 모르고 칠레나 미국 와인으로 잘못 알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애초에 호주에서 와인을 생산한다는 걸 모르기에 호주 와인을 마시고도 정작 와인으로 유명한 칠레나 미국 와인으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때 웰러스(Welus)나 가십(Gossips)처럼 저렴하고 단맛 나는 호주 와인이 많이 수입되었을 때는 호주 와인은 그런 스타일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는 등 우리나라 소비자의 호주 와인에 대한 인식은 한 마디로 "별 볼 일 없다"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와인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와인은 프랑스 와인이요, 가격 대비 품질은 칠레 와인이며, 미국과 이탈리아 와인은 들어 본 와인이고, 나머지 나라의 와인은 듣보잡 와인으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아래의 표는 2007년 당시에 수입 물량 규모로 본 국내 와인 시장의 국가별 시장 점유율입니다.
국가별 국내 와인 시장 점유율 | |
스페인 | 22.38% |
미국 | 18.71% |
칠레 | 17.47% |
이탈리아 | 15.27% |
프랑스 | 11.33% |
듣보잡 | 14.86% |
물량으로는 스페인의 점유율이 가장 높지만, 금액 면에서는 고가 와인이 많은 프랑스가 단연 부동의 1위입니다. 칠레는 2007년에 총 63만 7,556kg의 와인을 국내로 수출했지만, 프랑스의 수출 물량은 59만 5,661kg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수출액은 오히려 프랑스가 칠레보다 2.29배 많았죠. 2008년 역시 65만 7,469kg을 수출한 칠레보다 29.11% 적게 수출한 프랑스가 금액 면에서는 1.44배 많아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2009년에도 프랑스는 물량 면에서 이탈리아에 이어 5위를 차지했지만, 액수 면에서는 역시 단연 1위였습니다. 수출량은 24만 4,222kg으로 스페인의 절반 수준(50.61%, 48만 2,550kg)이지만, 수출 액수는 오히려 늘어나서 스페인의 6배(5.45배)에 달하는 실정이죠.
애석하게도 호주 와인은 맨 아래 듣보잡에 속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오랫동안 국내 와인 시장을 두드려온 호주 와인으로선 억울하겠지만, 아직 듣보잡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봐야겠죠. 그래도 투 핸즈의 성공으로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선 호주 와인의 매력적인 면이 꽤 알려졌습니다.
3. 국내 와인 시장에서 호주 와인의 성장 가능성
국내에선 인기가 없지만, 양조용 포도 재배에 적합한 자연조건을 배경으로 호주에서 훌륭한 와인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100대 와인'에서 당당히 1번에 자리매김한 "펜폴즈 빈 60A 쿠나와라 까베르네 소비뇽 칼림나 쉬라즈(Penfolds Bin 60A Coonawarra Cabernet Sauvignon Kalimna Shiraz)1962"를 비롯해 과일 폭탄이라 불리는 펜폴즈 그랜지,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의 정수하고 할 수 있는 Bin 707 등등의 걸작 와인이 모두 호주에서 생산하는 와인이죠.
호주에선 고급 와인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신세계 와인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제이콥스 크릭(Jacob's Creek)과 미국에서 선풍을 일으키며 블루 오션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 옐로우 테일처럼 대중성 있고 매력적인 맛을 가진 중저가 와인도 생산합니다. 제가 향과 맛에 매혹되었던 첫 번째 와인인 울프블라스 프레지던트 셀렉션 까베르네 소비뇽 역시 호주 와인입니다.
이렇게 호주에서는 고가는 고가대로, 저가는 저가대로 뛰어나고 매력적인 와인이 많이 생산됩니다. 그동안 미국과 칠레 와인에 밀려 시장에서 많이 팔리진 못했지만, 앞으로 많은 소비자가 우수한 호주 와인을 찾게 될 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