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회&강좌

이탈리아 수퍼 투스칸 와인 시음회

까브드맹 2016. 3. 20. 06:00

지난 2월 26일 금요일 저녁 7시에 논현동에 있는 이태리 음식점 22FEB에서 “수퍼 투스칸(Super Tuscan)” 와인 시음회가 열렸습니다.

수퍼 투스칸은 이태리 와인법을 따르진 않지만, 이태리 토스카나_Toscana 지방에서 생산되는 매우 뛰어난_Super 품질의 와인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최초의 수퍼 투스칸 와인으로는 테누타 산 귀도_Tenuta San Guido의 ‘마르케시 인시자 델라 로체타_Marchesi Incisa della Rocchetta 후작’이 만든 사시까이아_Sassicaia를 들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유럽 사교계에서 고급 프랑스 와인을 마셔왔던 후작은 이태리에서도 프랑스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다가 볼게리의 상속지에 포도밭을 가꾸고, 자신이 마실 와인을 생산하게 되죠. 자갈이 많은 볼게리의 떼루아가 보르도 메독의 그라브_Grave 지역과 비슷했기에 후작은 보르도 뽀이약_Pauillac의 샤토 라피트 로칠드_Chateau Lafite-Rothschild에서 까베르네 쇼비뇽과 까베르네 프랑 묘목을 얻어와 심습니다.

1964년에 나온 첫 빈티지의 평가는 썩 좋지 못했지만, 와인이 점차 숙성되고 양조법을 개선하면서 사시까이아의 평가는 점점 올라가게 됩니다. 마침내 1968년에 사시까이아 1967 빈티지가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면서 와인업계에서는 이 독특한 이태리 와인을 주목하게 되죠. 그리고 1971년에 안티노리에서 티냐넬로_Tignanello가 나오고, 1980년대에 오르넬라이아_Ornellaia에서 마세토_Masseto가 나오면서, 이태리 와인법으로 보면 이단아라 할 수 있는 수퍼 투스칸 와인이 전 세계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주최자의 설명을 들어보니 수퍼 투스칸은 아래와 같은 흐름으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1. 사시까이아로 대변되는 보르도 와인 스타일

2. 마세토로 대변되는 단일 품종 와인 스타일

3. 글로벌 품종에 이태리 고유 포도 품종을 블렌딩한 와인 스타일

4. 이태리 와인법에 벗어난 온갖 와인 스타일(잡탕 스타일…?)

수퍼 투스칸 시음회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진행되었습니다.

1. 말리아노 IGT 카부르니오_Magliano IGT Caburnio 2010

까베르네 쇼비뇽에 메를로, 그리고 그르나슈를 넣은 매우 독특한 블렌딩입니다. 블랙베리 같은 검은 과일향에 섞여 레드 커런트 같은 붉은 과일 내음이 슬몃슬몃 나타납니다. 허브와 기분 좋은 풀잎 향 속에 흰 후추 같은 스파이시한 내음도 살짝 있고요. 처음엔 미디엄 바디인 듯 느껴지다가 점차 묵직한 느낌이 강해집니다. 품종은 프랑스 것이래도 이태리 와인답게 산미가 풍부하고, 질 좋은 탄닌이 입안을 기분좋게 조여줍니다. 과일 풍미에 약간의 나무향이 이어지는 여운도 좋습니다. 밸런스 굿! 

2. 피안 디 노바 일 보로_Pian di Nova Il Borro 2012

시원한 느낌의 붉은 과일향이 나고, 그윽한 스모크 내음은 마치 향처럼 느껴집니다. 풍부하기 보단 선이 가늘고 섬세한 와인이네요. 레드 커런트나 붉은 체리 같은 과일 풍미 속에 허브와 후추 풍미가 숨어있습니다. 바디는 미디엄 정도이지만 매우 탄탄합니다. 시라가 75%라는데, 일반적인 시라 와인과 매우 다른 캐릭터를 지닌 와인입니다.

3. 샤토 끌레르 밀롱_Chateau Clerc Milon 2007

이어질 꼴라찌와 비교해보기 위해서 주최자가 도네이션한 와인입니다. 보르도 1855 그랑 크뤼 5등급으로 샤토 무통 로칠드를 소유한 바롱 필립 드 로칠드_Baron Philippe de Rothschild SA에서 만들었죠. 블렌딩 비율은 까베르네 소비뇽 48%, 메를로 34%, 까베르네 프랑 14%, 쁘띠 베르도 3%, 그리고 보르도 와인으로는 매우 드물게 까르메네르를 1% 넣었습니다. 

뽀이약 와인의 특징인 검은 과일향이 풍부하네요. 블랙베리에 블랙 커런트 향이 나죠. 풍성하고 부드러우며 묵직한 질감, 적당한 산도, 잘 숙성되어 입안을 채우는 탄닌의 느낌이 좋습니다. 검은 과일향과 함께 그윽한 나무 풍미, 부엽토 향, 구수한 느낌이 이어집니다. 다만 여운은 길게 이어지는 속에 여유롭지 못하고 살짝 피곤한 느낌입니다. 바롤로님 이야기로는 보관 상태가 약간 메롱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뽀이약 와인의 모습은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4. 꼴라찌 토스카나 I.G.T 꼴라찌_Collazzi Toscana I.G.T. Collazzi 2010

그윽하며 섬세한 나무 느낌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윽한 나무 수지의 향 속에 슬쩍 블랙베리 같은 검은 과일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태리 와인치곤 산미가 두드러지지 않으며 단맛이 느껴집니다. 녹진한 검은 과일 풍미 속에 부드러운 탄닌은 후반부에 조금 떫은 느낌을 줍니다. 상쾌한 허브 풍미와 함께 스위트 스파이스 풍미도 조금 있습니다.

5. 레 마끼올레 팔레오_Le Macchiole Bolgheri Paleo 2007

까베르네 프랑 100%의 매우 독특한 와인. 이 날의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블랙베리 같은 검은 과일 향에 그윽한 나무 향, 스모키한 향이 합쳐져 에스프레소 같은 향이 느껴졌습니다. 조금 지나면 향긋한 검은 체리에 시원한 허브 향도 풍깁니다. 다만 맛을 보면 까베르네 쇼비뇽 와인보다 좀 더 메마른 나무 느낌이 강하네요. 밀키한 스위트 스파이스 풍미가 느껴지고, 과일 풍미는 단맛 속에 조금 씁쓸한 느낌이 납니다. 가늘지만 단단한 근육을 지닌 남자 같은 와인.  

6. 파토리아 뽀지오 피아노 토스카나 I.G.T 로쏘 디 세라_Fattoria Pogio Piano Toscana I.G.T. Rosso di Serra 2009

시원한 허브와 푸릇푸릇한 식물성 향 속에 삼나무의 상쾌하고 향긋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체리와 블랙베리의 향 속에 슬며시 블랙 커런트 향이 나타나고 점차 강해지죠. 맛을 보면 신선한 산미 속에 홍차의 씁쓸한 풍미가 느껴지는 것이 ‘난 이태리야, 토스카나야, 산지오베제야.’하고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섬세하고 우아하지만, 먼가 아련한 느낌을 주는 와인이어서 가을날, 바람 부는 시원한 숲에서 저물어가는 노을이 떠오릅니다. 

6가지 와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5번 팔레오, 누구랑 함께 마신다면 6번 로쏘 디 세라를 고르고 싶습니다.


시음회가 끝난 후에 와인 두 병을 더 마셨는데요, 하나는 마르께스 데 발레스타 레세르바_Marques de Ballestar Reserva 2010. 스페인 와인입니다. 또 하나는 토카이 아쑤 디즈노코_Tokaji Aszu Disznoko 2002. 헝가리 와인입니다.

7. 마르께스 데 발레스타 레세르바_Marques de Ballestar Reserva 2010 

마르지 않은 생나무에서 풍기는 신선한 식물성 향에 상쾌한 붉은 과일향이 섞여 있습니다. 마실 때까지 충분히 향이 올라오지 않았고, 이미 알딸딸한 상태라 풍미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돼지고기 수육을 곁들여 먹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 

8. 토카이 아쑤 디즈노코_Tokaji Aszu Disznoko 2002

처음엔 달달한 분향이 나나가 바로 꿀 향으로 이어집니다. 말린 무화과나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향도 풍기네요. 미끄럽고 매끈한 질감 속에 부드럽고 진한 단맛이 납니다. 그외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맛과 풍미를 느낄 수 있죠. 마치 단풍나무 시럽 같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