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회&강좌

이탈리아 남부 와인 시음회 2015. 12. 22 22 FEB

까브드맹 2015. 12. 24. 09:01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Southern_Italy

고대 그리스인들이 외노트리아_Oenotria, 즉 와인의 땅이라 불렀던 이탈리아는 오늘날에도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와인 강국입니다. 남북으로 긴 국토의 가운데를 따라 해발 2,000m의 아펜니노 산맥이 펼쳐져 있어 매우 다양한 기후대가 존재하고, 이에 따라 900여 종이 넘는 지역 포도 품종이 자라고 있어 엄청나게 다양한 와인들을 만들고 있죠. 어떤 책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알려진 이탈리아 와인의 종류만 2만 종이 넘으며,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보석 같은 와인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와인 중 국내에 잘 알려진 것들은 주로 북부와 중부 지역의 것들입니다. 삐에몬테의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모스까토 다스티, 돌체토 달바, 바르베라 달바, 토스카나의 끼안티,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쪼, 베네토 지방의 발폴리첼라, 발폴리첼라 리파쏘, 아마로네, 레치오토, 소아베 등등이 국내에 잘 알려진 이탈리아 와인들이죠.

반면에 남부의 와인들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죠.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와인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은 것은 필록세라의 난 이후로 유럽의 와인 보급소 역할을 하고,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군인들이 마셔야 할 와인 공장 노릇을 하느라 품질은 따지지 않고 생산에만 치중했던 점과 종전 이후 세계 와인 시장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기존의 와인 산업 형태에서 탈피하지 못한 점이 큰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 지역의 변화는 괄목할 만 합니다. 까베르네 쇼비뇽 같은 글로벌 품종보다는 지역 품종을 발굴하고 개발해서 매우 멋진 와인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뛰어난 품질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죠. 아직 우리에게 낯설지만 이탈리아 남부 와인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할 수 있을 겁니다.

12월 22일 저녁 7시 30분, 선정릉 역과 강남구청 역 사이에 있는 캐쥬얼한 파스타집인 22FEB에서 이탈리아 남부 와인을 주제로 하는 와인 시음회가 열렸습니다. 주최자가 엄선한 와인들은 각 품종의 개성들을 잘 드러냈고, 참석한 분에게 이탈리아 와인의 모습을 잘 전달하기 위한 준비와 노력은 대단한 것이었죠. 시음회 약 4시간 동안 정말 재미있었고, 마신 와인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맛있는 파스타는 덤.

이날 시음한 와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로 이탈리아 남부의 와인 생산지는 캄파니아_Campania, 바실리카타_Basilicata, 풀리아_Puglia, 시칠리아_Sicilia입니다.

1. 타사리 까타라토_Tasari Catarratto 2012 : 시칠리아

아주 진한, 매혹적인 황금빛 색상을 지녔습니다. 

사과와 익은 배 향기가 나지만 시트러스 계열 향은 약합니다. 단내가 슬쩍 나고, 짚 내음이 느껴집니다. 후반부로 가면 농익은 사과 향도 보여줍니다. 

진하고 잔잔하면서 인상적인 산도를 지녔고, 풀 바디에 오일리한 질감을 지녔습니다. 도수가 그다지 높지 않은데도 알코올 느낌이 약간 나더군요. 토속적인 풍미를 지닌 와인으로 슈냉 블랑하고 비슷한 느낌이라 한 분도 계셨지만, 저는 비오니에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봤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맛과 향을 보여줬지만, 다양한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와인이었습니다.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함께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2. 테레도라 알리아니꼬_Terredora Aglianico 2008 : 캄파니아

향을 맡으면 나무나 식물성 계열의 스파이시한 향이 코를 찌릅니다. 삼나무와 젖은 나무의 매운 내음이 나고, 살짝 후추 기운도 있습니다. 또 기분 좋은 흙 내음과 고수 같은 허브향도 느껴집니다. 

색을 보면 탄닌이 그리 강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막상 마셔보면 매우 뻑뻑한 탄닌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나무를 갈아넣은 듯한 그런 감촉. 무게감은 미디엄 플러스 정도. 나무 풍미와 함께 아주 잘 익은 붉은 과실의 풍미를 맛볼 수 있는 와인이었습니다.

3. 테누타 델레 떼레 네레 에트나 로쏘_Tenuta delle Terre Nere Etna Rosso 2011 : 시칠리아

색상을 보면 피노 누아와 비슷한 루비빛입니다. 

레드 체리나 야생 딸기의 달착지근한 향과 소나무나 삼나무에서 맡을 수 있는 나무 계열의 스파이시한 향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또 버섯 향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질감은 부드럽고 바디는 미디엄 플러스 정도로 진한데, 후반부에 강한 탄닌이 몸을 드러냅니다. 나무와 야생 딸기, 식물성 허브 풍미가 느껴지는 맛으로 피노 누아와 매우 비슷한데 좀더 야생적이라고나 할까요? 시간이 갈수록 피노 누아와 더욱 흡사해집니다. 주최자가 이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 할 때 피노 누아라고 장난친 적이 많다고 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와인이었습니다.


4. 카스텔 부오노 사그란티노 디 몬테팔코_Castel Buono Sagrantino di Montefalco 2006 : 움브리아 (여기는 중부지역입니다.)

삼나무와 산딸기 향이 났고, 이어서 자두와 먼지 향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허브와 블루베리의 단 향기가 나더군요. 우아하고 섬세한 향은 보르도 우안의 쌩-떼밀리옹이나 고전적인 뽀므롤 스타일의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향과 유사했습니다.

미디엄 플러스 바디에 매끈 탄탄한 떫은 탄닌을 지녔고 기분 좋은 드라이한 맛과 향긋하고 달달한 검붉은 과일 풍미를 지닌 와인으로 고귀한 아가씨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더군요. 에트나 로쏘가 부르고뉴와 유사하다면 이 와인은 보르도와 유사했습니다.

5. 파소피시아로 프란케티_Passopisciaro Franchetti : 시칠리아

이탈리아 와인 메이커 중에서 1995년 이래 가장 화제에 올랐던 괴짜 와인 생산자인 안드레아 프란케띠_Andrea Franchetti가 시칠리아 에트나 화산 지역에 일군 와이너리에서 수확한 쁘띠 베르도_Petit Verdot와 체사네세 다퓌레_Cesanese d’Affile로 만든 와인입니다. 쁘띠 베르도는 보르도 품종이고, 체사네세는 이탈리아 중부 라찌오 일대에서 많이 재배하는 포도죠.

먼저 삼나무와 향나무, 오크 같은 나무 계열 향과 스파이시한 향기가 났습니다. 블랙베리와 검은 산딸기 같은 검은 과일향이 나는데, 검은 산딸기의 우아하고 복합적인 내음이 좀더 강하더군요. 

부드럽고 풍성하며 우아한 산미를 지닌, 진하고 묵직한 풀바디 와인으로 서양 자두 같은 과일의 향긋한 풍미와 당밀의 진한 풍미가 느껴졌습니다. 보르도 가라쥬 와인 같은 느낌이 나는 것이 조금은 모던 스타일이더군요. 나중에는 신선한 쇠고기 기름을 철판에 두를 때 나는 고소한 기름 내음도 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6. 콘테 디 캄피아노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_Conte di Campiano Primitivo di Manduria 2013 : 풀리아

요즘 와인 밴드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 와인입니다. 처음에는 젖은 생나무의 식물성 향과 함께 블랙베리나 블루베리 같은 검은 과일의 단내음이 납니다. 또 부드럽고 단 스위트 스파이스 향도 맡을 수 있죠. 

묵직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 풀바디 와인으로 향만 단게 아니라 맛도 약간 답니다. 묵직하고 부드러운 탄닌을 지녔고, 프룬 같은 말린 과일의 단 풍미는 차차 당밀, 잼, 초콜릿 순서로 변해갔습니다. 나중에는 설탕 커피의 맛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파스타보다는 후식으로 나온 티라미수 케익과 더 어울리는 맛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총 6종의 와인을 시음했습니다. 하나같이 개성있고, 맛있는 와인이더군요. 이탈리아 와인이 아직 낯선 분들은 이런 시음회를 통해 이탈리아 와인에 좀더 친숙해지는 기회를 가지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