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에서 부와 번영을 누리던 카르타고와 이집트는 로마의 침공으로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와인 산업까지 함께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나라는 망해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고 여전히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더욱이 카르타고가 있던 곳은 지중해 무역의 요충지였기에 아우구스투스는 그 자리에 다시 도시를 세웠고, 이집트도 로마 황제의 직할지로 번영을 누립니다. 발달한 관개 농업과 나일강의 혜택으로 농업은 예전과 같이 활발했고, 그 안에는 포도 농사와 와인 생산도 포함되었죠. 두 지역은 이후에도 줄곧 와인 생산과 수출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고, 로마 제국의 중요한 세수원(稅收原)이었습니다.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서로마 제국이 망하고, 게르만의 일파인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로 쳐들어왔을 때조차 북아프리카 와인 산업은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심지어 로마 시대보다 더한 번영을 누렸다고 합니다. 훗날 페르시아에 아시아 영토를 많이 빼앗긴 동로마 제국의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수도를 카르타고로 옮기려 했고, 페르시아에 대반격을 할 때 카르타고에서 많은 재원을 충당할 정도로 번영은 계속되었죠. 그런 가운데 와인 산업도 쇠락하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와인 산업이 망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698년 이슬람 세력의 침략이었습니다. 관개시설을 이용해서 발달했던 북아프리카의 농업은 오랜 전쟁과 혼란으로 수리시설을 돌볼 여력이 없어서 점차 황폐해졌습니다. 게다가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족 출신의 이슬람 정복자들은 농업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토착민이 가졌던 농업 기술은 후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죠.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는 밭과 과수원들이 유지되지 못하고 황폐해져 버린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술을 금기시하는 이슬람교의 교리 역시 북아프리카의 와인 산업이 붕괴하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기독교도나 외국인은 와인을 만들거나 마실 수 있었지만, 모슬렘이 지배하는 국가에서 와인 산업에 신경 쓸리는 없었겠죠. 긴 세월이 흘러 1830년에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고 포도밭을 개간하기 전까지 북아프리카의 와인 산업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참고 자료>
1. 로도 필립스 지음, 이은선 옮김,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서울 : 시공사, 2002
2. 영문 위키피디아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