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순(麴醇)의 자(字)는 자후(子厚)[각주:1이다. 그 조상은 농서(隴西)[각주:2 사람이다. 90대조(九十代祖)인 모(牟)[각주:3가 후직(后稷)[각주:4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다. '시경(詩經)'에,"내게 밀과 보리를 주다."[각주:5] 한 것이 그것이다. 모가 처음 숨어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먹으리라."하여, 밭에서 살았다. 임금이 그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詔書)를 내려 안거(安車)로 부를 때, 군(郡)과 현(縣)에 명하여 곳마다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신하를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杵臼) 사이에서 교분을 정하였다[각주:6]. 화광동진(和光同塵)[각주:7]하게 되니, 훈훈하게 찌는 기운이 점점 스며들어서[각주: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