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2011년 내가 마신 가장 맛있는 와인 : 종류 불문 가격 불문 베스트 와인 10선

까브드맹 2012. 1. 7. 06:00


지난 2011년 한 해 동안 제가 마신 와인의 숫자는 아마 500여종 이상이었을 겁니다. 그중에 점수로 평가를 내린 와인은 총 229종이었습니다. 상반기에 153종의 와인에 대해 평가를 했고, 후반기에는 76종이었습니다. 음… 더 열심히 마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2011년 한 해의 와인 라이프를 돌아봤을 때 느꼈던 변화는 3가지였습니다.

첫째,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와인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2만원대 이하의 와인 중에도 상당한 품질을 지닌 것들이 꽤 많아졌더군요.

가격은 9,000원이지만 품질은 2만원 짜리인 오-리바쥬 꼬뜨 드 뒤라

 
둘째, 신대륙 와인들의 품질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또한 유럽의 중저가 와인들 중에 신대륙 와인 스타일을 따라가는 와인들이 많아졌고, 레이블 디자인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와인들이 더욱 늘어났습니다. 

기존의 와인하고는 확연히 틀린 디자인을 보여준 보가 스파클링 와인. 이태리 와인입니다.

 
셋째, FTA다 뭐다 하지만 비싸고 좋은 와인들의 가격은 올라가면 올라갔지 떨어지진 않았더군요. 하지만 잘 알려진 와인들 중에서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도 일부 있었습니다.

이제는 마트에서 6~7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샤또 딸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만원이 넘었죠.

 
업계에 계신 분들은 더욱 많은 변화를 겪었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제가 느낀 것은 위의 세 가지 변화가 가장 인상적이더군요.

한 해 동안 제가 마셨던 와인들 중에서 좋았던 것들을 추려보았습니다. 가격 불문 종류 불문하고 최고의 와인 10개, 그리고 가격별로 최고 와인인 각각 5개,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 로제 와인, 강화 와인, 그리고 국산 청주(^^)로 나눠서 1~5개의 와인을 선별해봤습니다. 선별 기준은 순전히 제가 마시고 매긴 점수입니다. 예전에도 한 번 말씀 드렸습니다만, 사람마다 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제 평가가 100% 맞을 수는 없습니다. 또 선호하는 와인이 저와 다른 분들은 동의할 수 없는 내용도 많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마트나 와인샵에서 와인을 구매하는 분들에게 약간의 도움이나 참고자료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하나의 포스트에 모든 내용을 다 올리려다가 너무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 세 개의 포스트로 나누었습니다.


각 와인별로 사진과 간략한 시음 내용을 올렸고, 자세한 시음기를 링크로 달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후반에 시음한 와인 중에 아직 시음기를 정리하지 못한 것도 있는데, 이 와인들에 대한 상세한 시음기는 조만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2011년 베스트 와인 10선

1. 펜폴즈 빈 95 그랜지_Penfolds Bin 95 Grange 1996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와인. 다만 시중에서는 이제 구입할 수 없을 것이고, 구할 수 있다고 해도 가격이 너무 세다는 것이 결정적인 단점이죠. 이걸 드시려면 개인적으로 소장중인 분을 찾으셔야 할 겁니다. 블랙 체리, 블랙 커런트 같은 검은 과일향, 삼나무를 비롯한 훌륭한 나무향이 이어지는 기품있고 고귀하며 세련된 맛을 지녀 호주 와인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세련되고 탄탄한 탄닌이 입안에서 보여주는 맛은 다른 와인과 비교를 불허합니다. 


2. 본 로마네 프르미에 크뤼 레 쉬쇼 프리어 로크_Vosne Romanee 1er Cru Les Suchots Prieure Roch 2001


매우 독특하고 특이한 와인으로 부르고뉴 와인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졸이거나 말린 과일의 단 내음, 오렌지, 사과, 배 향기, 향긋한 나무 수지 냄새와 육계피 같은 스파이스 향이 뒤섞이며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향에서는 오래도록 숙성된 느낌이 난다면 맛에서는 아직 건장한 느낌이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상큼하지만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운 산미의 오묘한 맛을 볼 수 있죠. 밸런스도 아주 좋습니다.
3. 끌로 드 부죠 그랑 크뤼 도멘 프랑소와 라마르끄_Clos de Vougeot Grand Cru Domaine Francois Lamarche 2005


잘 익은 검은 과일들의 농후하고 달콤한 내음이 가득합니다. 여기에 부드럽고 풍부한 오크향이 조화를 이루죠. 또한 동물의 노린내와 달고 매콤한 향신료의 향기도 겹쳐집니다. 시간이 갈수록 향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죠. 드라이한 맛에 입안 가득 상큼하고 부드러운 산미가 느껴지면서 침이 샘솟고, 계속 손이 당겨지는 매력을 지닌 와인입니다. 마치 액체로 된 검은 체리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끌로 드 부죠 그랑 크뤼 도멘 프랑소와 라마르끄 2005 시음기 

4. 샴페인 동 페리뇽_Champagne Dom Perignon 1996


농익은 사과의 단 내음과 흰 꽃 향기가 나면서 토스트 같은 구수한 향이 섞여 나오며, 고소하고 달콤한 구운 견과류 향도 납니다. 향은 전체적으로 복합적이며 묵직합니다. 드라이한 맛과 함께 그 맛을 충실히 뒷받침 해주는 산미를 지녔고, 묵직하고 풍부한 맛이 납니다. 다른 샴페인이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상당히 남성적인 느낌을 줍니다.
5. 샤또 라 꽁세이앙뜨_Chateau La Conseillante 2007


신선한 서양자두와 블루베리, 블랙베리 같은 과일향에 고급 시가의 향긋한 향과 토피_Toffee의 달콤한 내음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향의 어울림이 상당히 그윽하고 고혹적이죠. 드라이하며 적당한 산도를 지녔고 아주 부드럽고 장중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와인입니다. 그 깨끗하며 깊이 있는 느낌 때문에 고귀하고 정숙한 귀부인이 연상됩니다.

샤또 라 꽁세이앙뜨 2007 시음기



6. 샤또 몽로즈_Chateau Montrose 2004


보르도 1855 그랑 크뤼 2등급의 와인에 어울리는 수준의 맛과 향을 보여줬지만, 2004년의 포도 작황이 별로 좋지 않았는지 과일향이 조금 부족하더군요. 그래도 맛과 향이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새콤한 자두, 체리, 블랙 커런트의 과일향과 바닐라, 스위트 스파이스, 정향 등의 다양한 향이 납니다. 얇으면서 탱탱한 유리 같은 느낌, 빨간색의 투명한 유리로 만든 장미 같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7. 꼭똥 샤를마뉴 그랑 크뤼 보노 뒤 마르트레_Corton-Charlemagne Grand Cru Bonneau du Martray 2005


초반에는 견과류와 오크, 신선한 버터향, 중반에는 시나몬 같은 향신료, 흰 꽃, 고소한 코코넛 밀크, 바닐라향, 그리고 후반에는 배, 오렌지 오일향과 함께 은근한 커피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오크, 신선한 버터, 달고 고소한 바닐라, 오렌지 오일향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맛에서는 레몬, 사과 같은 산미가 강한 과일 풍미가 나지만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아울러 살짝 배와 시나몬 같은 향신료의 풍미도 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힌 와인으로 우아하고 섬세한 맛이 참 좋습니다.

꼭똥 샤를마뉴 그랑 크뤼 보노 뒤 마르트레 2005 시음기 

8. 샴페인 아르망 드 브리냑_Champagne Armand de Brignac NV


향의 선이 굉장히 가는 샴페인으로 이스트 향 속에서 그린 후르츠 정도의 과일향과 린덴꽃의 향이 나옵니다. 굉장히 정제된 향이 계속 천천히 이어집니다. 후반부에는 껍질을 벗긴 붉은 과일향과 블랙 커런트 향이 살짝 모습을 보이며, 은근한 계피향도 맡을 수 있죠. 맛은 굉장히 드라이하며 산미가 강한데, 깔끔하고 차갑다는 느낌이 듭니다. 섬세한 이스트의 풍미가 마지막까지 계속 나타나며, 끝에 가면 밑바닥에서 살짝 우러나오는 미세한 단맛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치 고귀하고 도도하며 가는 선을 지닌, 그러나 강철같은 의지를 지닌 미녀가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9. 샤또 몽로즈_Chateau Montrose 1999


블랙베리, 블랙커런트, 말린 서양자두로 이어지는 검은 과일향이 아주 진하게 풍깁니다. 허브와 그윽한 오크향, 꿀 같은 달콤한 향도 있고, 그 가운데 지린내 같은 동물성 향도 스며있습니다. 아울러 상쾌하고 매콤한 향신료의 내음도 나옵니다. 드라이한 맛과 여기에 어울리는 적절한 산도가 있고, 쌉쌀한 맛이 느껴지는 가운데 은근한 강도가 있습니다. 또한 실크처럼 매끄러운 느낌이 참 좋고, 바닥에 탄탄한 탄닌의 맛이 깔려 있어 와인 전체에 잘 짜여진 구조감을  줍니다. 

샤또 몽로즈 1999 시음기 

10. 모레 생 드니 프르미에 크뤼 레 루프 도멘 데 랑브레_Morey-Saint-Denis 1er Cru les Loups Domaine Des Lambrays 2004


검은 과일을 말릴 때 나오는 것과 같은 아주 진하고 농축된 단 향기가 인상적입니다. 건포도, 블랙커런트, 말린 자두의 향기가 도드라지며, 졸인 배나 꿀에서 나오는 달콤한 향이 잔뜩 나옵니다. 그리고 생나무에서 맡을 수 있는 신선한 내음이 강합니다. 또한 먼지와 낙엽, 부엽토 같은 퀴퀴한 냄새도 느낄 수 있죠. 마지막으로 살짝 스모키_Smoky한 내음이 스며나옵니다. 부르고뉴 고급 와인이 가진 복합적인 향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와인입니다. 부드럽지만 날카롭지 않은 산미가 인상적인데, 힘이 느껴지는 탄탄한 구조감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빈틈없다는 인상을 줍니다. 

모레 생 드니 프르미에 크뤼 레 루프 도멘 데 랑브레 2004 시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