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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보를 도통 찾을 수 없는 이 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 Chateau Malausanne Demazel 2009

까브드맹 2011. 9. 7. 06:00

샤토 말루잔 드마젤 2009

 

마트에서 1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드마젤(Demazel)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레드 와인입니다. 인터넷에서 와인에 관한 정보를 찾아봐도 별다른 내용을 찾을 수가 없죠. 메를로(Merlot)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으로 만드는 보르도 AOC 등급의 레드 와인이라는 것만 확실합니다.

1. 드마젤의 정체

국내에서 와인 품목에 관한 데이터베이스가 가장 많은 웹사이트 중 하나인 와인21닷컴에서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정보만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 생산국 : 프랑스(France)

• 생산지역 : 보르도(Bordeaux)

• 생산자 : 샤토 라 로마린(Chateau La Romarine)

• 포도품종 : Cabernet Sauvignon, Merlot

• 알코올 : 13.5 %

• 당도 분류 : Dry

• 참고사항 : Bordeaux AOC

• 어울리는 음식 : 붉은 육류, 파스타, 피자, 치즈 등과 잘 어울린다.

이외의 내용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와인 생산자인 "샤토 라 로마린"은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샤토 꾸떼로 라 로마린 그랑 뱅 보르도(Chateau Coutelor La Romarine Grand Vin de Bordeaux)"라는 항목 외에는 관련 정보가 나오지 않습니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쌩뜨-푸아 보르도(Sainte-Foy Bordeaux)"라는 와인만 나올 뿐 드마젤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죠. 그러면 드마젤은 어떤 와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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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앙 모젤(Majuang Mosel)은 독일의 모젤강 부근의 포도밭에서 재배하고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서 병에 담는 것까지 독일에서 이뤄지는 화이트 와인입니다. 우리나라의 손길이 미친 부분은 "마주앙"이란 레이블뿐이죠. 어쩌면 레이블 인쇄까지 독일에서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국내에선 한국 회사의 제품으로 취급하지만, 사실은 독일 와인인 거죠. 마치 중국에서 만들지만, 일본 맥주회사의 브랜드로 판매하는 아사히 캔 생맥주나 국내에서 생산하지만, 벨기에 맥주로 취급하는 호가든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주문하는 사람이 요구하는 상표명으로 물건이나 부품을 만드는 것을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이라고 하죠. 산업계에선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방식으로 용어가 익숙한 분도 많을 겁니다. 와인도 OEM 방식으로 만드는 일이 많습니다. 마주앙처럼 국산 제품인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반대로 국내 회사의 요구에 따라 만들면서 생산지를 떠올리도록 이름을 붙이는 것도 있습니다.

 

 

드마젤도 수입사가 프랑스의 몇몇 샤토에 생산을 의뢰하고 국내로 들여와서 판매하는 와인입니다. 안내문엔 관련 내용이 나와 있지 않지만, 레이블을 자세히 살펴보면 파악할 수 있죠. 아래의 링크들은 드마젤을 시음한 후에 평가를 올린 블로거들의 포스트입니다. 레이블 사진도 함께 올렸는데 이걸 보면 재미난 사실이 있죠. 사진만 퍼오는 것은 저작권 문제가 있어 링크로 대신합니다.

● 행복한 우리집^^,  Demazel / FRANCE : 인어공주님의 포스트  

● a taster, 드마젤 2008 Demazel Chateau Les Rosiers 2008 : nobody님의 포스트  

● BLaaack, DEMAZEL (드 마젤) : 블래액님의 포스트

우선, 제가 마신 2009 빈티지의 레이블에는 빈티지 바로 아래에 적힌 샤토 이름이 "샤토 말루잔(Chateau Malausanne)"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인어공주님의 포스트에 나온 것은 2006 빈티지는 "샤토 다르나싼(Chateau d'Arnaussan)"으로 샤토 이름이 다릅니다. nobody님의 포스트에 나온 2008 빈티지는 "샤토 레 로시에르(Chateau Les Rosiers)이죠. 심지어 블래액님의 포스트에 나온 드마젤은 저처럼 2009 빈티지인데도 "샤토 라 로마린(Chateau La Romarine)"으로 샤토가 다릅니다.

 

 

이렇게 해마다 샤토가 바뀌고 심지어 2009 빈티지는 생산하는 샤토가 두 곳입니다. 이걸로 봐서 이 와인은 하나의 샤토에서 세컨드나 써드 와인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유통사가 샤토에 의뢰해서 만든 와인으로 추측됩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해마다 샤토를 바꿔서 와인을 주문했고 2009년에는 두 군데 이상의 샤토에 의뢰해서 와인을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유통량이 늘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샤토 말루잔 드마젤 2009에 사용한 품종은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인데 혼합 비율은 정확한 정보가 없습니다. 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13% 정도로 보르도 저가 와인으로는 높은 편이고, 반대로 힘은 좀 약한 거로 봐서 메를로의 비율이 더 높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보르도에선 메를로 재배량이 더 많고 그만큼 가격도 싸서 값싼 와인을 만들 때 더 많이 쓰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2011년에 드마젤을 두 달 간격으로 한 병씩 마셨는데 맛과 확실히 달랐습니다. 처음 마신 것은 좀 달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마신 것은 확실히 드라이하더군요. 처음엔 와인 상태가 달라서 맛이 다른 건가 하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차이가 나나? 하고 의아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서로 다른 샤토에서 만든 것이었나 봅니다. 참고로 드마젤은 프랑스에서 여자에게 많이 붙이는 이름이랍니다.

 

 

2. 와인의 맛과 향

와인의 테두리 빛은 짧은 숙성 기간을 뜻하는 퍼플 색이며 농도는 다른 보르도 와인보다 옅습니다. 사용한 포도의 품질이 뛰어나지 않고 메를로의 비율이 높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죠. 그래도 보르도 와인답게 향이 풍부하며 주로 검은 과일 향이 나옵니다. 구체적으로는 블랙커런트와 블랙베리, 프룬(prune) 향을 많이 풍기며 블루베리 같은 달콤한 과일 향도 조금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과일 향이 상당히 강하지만, 오크와 정향, 가죽 향도 있습니다. 

무게감은 별로 없으며 밀도도 높지 않습니다. 탄닌의 떫은맛은 있지만,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저가 와인치고는 향이 꽤 뚜렷하고 괜찮지만, 맛은 개성이 없고 평범합니다. 그래서 같은 저가 와인이래도 맛이 강한 신세계 와인을 좋아하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

맛은 드라이하고 산도는 높지 않습니다. 13%의 알코올은 입에 화끈한 느낌을 주지만, 일시적일 뿐 이어지는 기운은 약합니다. 과일 향이 강하지만, 맛에선 과일보다 나무 풍미가 강합니다. 여운이 있어도 특별한 느낌이 없습니다. 매우 짧고 단조로우며 밋밋하죠.

다른 요소는 평범한데 향만 도드라집니다. 그래서 향을 맡고 기대를 했다가 맛을 보면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달게 양념한 불고기와 양념 갈비, 미트소스를 얹은 피자와 파스타 등과 함께 마시면 좋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D-로 맛과 향이 좋은 와인입니다. 2011년 7월 29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