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청주] 동급 최저 가격으로 심심한 맛과 향이 개성인 - 경주법주천수(慶州法酒天壽)

까브드맹 2011. 2. 14. 09:16

● 생산 지역 : 한국 > 경상북도 > 경주

● 재료 : 쌀, 주정

● 어울리는 음식 : 생선전, 육전 같은 한식 요리, 생선회, 해산물, 어묵탕 등.

경주법주천수(慶州法酒天壽)는 경주법주주식회사에서 만드는 청주중에서 제일 값싼 제품입니다. 경주법주주식회사를 대표하는 술은 역시 경주법주이지만, 제례주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롯데주류의 백화수복과 비교해보면 1.7배가량 비싸서 아무래도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죠. 요즘 사람들이 제사와 차례를 지낼 땐 으레 정종이라 부르는 청주를 써야 한다길래 사는 것이지 누가 맛을 보고 골라서 사겠습니까? 그러니 가격이 더 저렴한 백화수복을 사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래서 백화수복과 비슷한 품질에 좀 더 낮은 가격으로 나온 청주가 경주법주천수입니다.

(경주법주주식회사에서 생산합니다. 분류는 청주이므로 밀로 만든 누룩은 쓸 수 없죠)

경주법주 홈페이지에는 경주법주천수를 "국산 일반미를 30% 도정하여 맑고 깨끗한 맛이 일품인 새로운 타입의 고품격 청주"라고 적혀있지만, 정말 고품격이라면 값이 쌀 리가 없겠죠? 경주법주천수는 일본 사케의 "후쓰슈(普通酒)" 방식으로 만듭니다. 후츠슈는 '특정명칭주에 해당하지 않는 청주'로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달리 부르는 말은 '삼배주(三倍酒)'로 '삼배증주(三倍增酒)'의 줄임말이죠. 그래서 '삼증주(三增酒)'라고도 합니다.

후쓰슈는 삼배주라는 다른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쌀로 양조주를 만든 후에 물과 식용 에탄올인 주정을 섞어서 양을 3배로 늘린 것입니다. 주정을 넣어서 부족해진 맛은 화학조미료로 보완하기도 하죠. 당연히 알코올 냄새가 많이 나고 맛도 없습니다. 이런 제조법은 일본에서 태평양 전쟁 때 전쟁 물자로 부족해진 쌀을 갖고 가능한 한 많은 술을 만들려고 개발한 겁니다. 알코올 냄새가 많이 나고 잡스러운 맛도 많아서 사케나 청주를 먹을 때 피해야 할 술이지만, 원가가 저렴해서 판매 가격도 싸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지금도 많이 만듭니다. 그리고 이런 악습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서 희석식 소주 같은 저렴한 술을 만들 때 많이 사용되죠. 

(정말로 신라시대 전통 제조법으로 만들었다면 밀 누룩을 썼을 것이고, 그렇다면 현행 주세법상 약주(藥酒)로 구분되야겠죠. 그러므로 이 문구는 거짓입니다. 원료는 일본식이지만 기법만 전통인걸까요?)

우리나라 청주든 일본 사케든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술과 삼증주 방식으로 만든 술을 비교해보면 가장 차이가 큰 부분은 '향'입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면 달콤하고 구수하며 기분 좋은 누룩 향과 함께 과일과 꽃 향이 어우러져서 와인 못지않은 향긋한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삼배주 방식으로 만들면 향긋한 냄새는 전혀 없고 심한 것은 알코올 냄새만 가득할 뿐입니다. 물론 맛도 차이가 심하고요.

이런 술 같지도 않은 화학적인 알코올음료가 판을 친다는 게 우습지만, "싼값"이라는 장점은 소비자에게 매우 큰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술에 관해 잘 모르고 값싼 술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품질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끌려 술을 고르는 일이 많죠. 그래서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전통 방식으로 제대로 만든 술은 시장에서 많이 도태된 상황입니다. 그나마도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전통주인 사케의 장점과 시장성에 눈을 떠서 사케에 관한 연구와 개발이 많이 이뤄졌지만, 일본도 1970년대까지는 대기업의 가격 공세에 밀려서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던 많은 술도가가 문을 닫고 사라진 암울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가 더 심합니다. 그래도 최근엔 국순당이나 배상면주가 같은 주류 회사에서 전통 방식으로 빚은 청주를 생산하며, 지방의 작은 양조장에서도 점차 전통적인 방법으로 술을 만들고 있으니 앞으로 발전을 기대해볼 만합니다.

(색이 상당히 옅습니다. 사진 보다 더 옅어요)

색은 매우 옅은 미색입니다. 경주법주나 화랑이 옅은 볏짚 색을 띠는 데 비해 천수는 거의 물처럼 묽은 색을 띱니다. 향은 미약합니다. 백화수복이나 청하 같은 동급 청주에서 맡을 수 있는 정도의 향이 풍깁니다. 알코올 냄새가 조금 나오고 약한 누룩 향을 맡을 수 있죠.

질감은 깨끗하고 깔끔합니다. 다만 물이 아니라 곡식으로 만든 술인 걸 느끼게 해줄 정도의 약한 무게감은 있죠. 가볍고 평범한 맛으로 약한 산미와 곡물에서 우러나오는 단맛이 약간 납니다. 특별한 개성은 찾아볼 수 없으며 13%의 알코올로 인해 입안에 약간 화끈한 느낌이 있을 뿐입니다. 심심한 맛과 향이 개성이라면 개성일까요? 여운도 얕으며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향과 질감, 맛, 여운 중에서 어느 하나가 튀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지만,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빼어난 맛과 향은 없습니다. 차게 마시는 것보다 데워서 마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700mL 용량에 4천 원 초반의 가격으로 동급 청주중에선 제일 저렴합니다. 품질에 맞는 적당한 값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E+로 맛과 향이 보잘것없는 청주입니다. 2011년 2월 13일 시음했습니다.

○ 국산 청주 시음기 글 목록

1.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 백화수복(白花壽福)

2. 오랫동안 국가 공인 대표 청주 - 경주법주(慶州法酒)

3. 우리 음식에 잘 어울리는 뛰어난 맛과 향을 갖춘 - 화랑(花郞)

4. 종묘제례에 쓰이는 본격 국산 전통 청주 - 국순당 예담(禮談)

5. 천년을 이어온 전통 양조법인 백하주법으로 만든 - 배상면주가 차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