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아르헨티나] 진하고 부드러우며 달콤하고 퇴폐적인 - Bodega Benegas Don Tiburcio 2005

까브드맹 2010. 8. 9. 15:20

보데가 보데가스 돈 티부르치오 2005

1. 돈 티부르치오

보데가 베네가스에서 만드는 돈 티부르치오의 와인 생산자는 페데리코 베네가스 린치(Federico Benegas Lynch)이며, 와인 컨설턴트는 저 유명한 미쉘 롤랑(Michel Rolland)입니다. 멘도사(Mendoza)에서 기른 말벡(Malbec) 23%,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16%, 메를로(Merlot) 16%,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12%,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33%라는 독특한 비율로 혼합된 이 와인은 대표적인 주류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이 12%, 메를로가 16%밖에 안 되는 데 비해 보르도 와인에서는 많아 봐야 15% 정도밖에 안 넣는 쁘띠 베르도가 무려 33%나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 미쉘 롤랑은 이곳에서 자란 쁘띠 베르도 포도에서 상당한 가능성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와인을 따고 잔에 따르면 딸기나 머루 같은 붉은 과일의 달콤한 향을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에 14%의 높은 알코올 도수 때문에 향이 살짝 코를 찌르는 느낌도 받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구수한 향과 밀크 캐러멜에서 맡을 수 있는 달콤한 크림 향이 은은히 퍼져나오는 것도 맡을 수 있습니다. 맛을 보면 신맛과 단맛에 사이에 살짝 쓴맛이 섞여 있습니다. 입안에 닿는 질감은 처음엔 부드럽지만, 와인을 마신 후엔 혀와 입천장에 떫은맛이 살짝 깔리는 게 느껴지죠. 입에서 시고, 달고, 쓰고, 떫은맛이 차례로 느껴지고 와인을 삼킨 후에는 스파이시한 풍미가 마치 후추처럼 매운맛으로 입안 전체를 자극합니다. 한 잔으로 다섯 개까지 맛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재미있는 와인이네요.

장작으로 구운 소고기 등심이나 내장구이, 소고기나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하면 좋습니다.

반응형

 

2. 와인 블렌딩

그런데 복잡한 블렌딩으로 다양한 향과 맛을 내긴 하지만, 유럽 와인과 달리 조금 잡다한 느낌입니다. 복합적이지만 프랑스 보르도 와인보다 좀 더 진한 맛에 포도가 탁하게 섞인 느낌입니다. 비슷한 가격의 보르도 와인이 시골에서 자연의 기운을 받으며 건강하게 잘 자란 처녀라면, 돈 티부르치오는 대도시 유흥가에서 술을 팔며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글래머 아가씨랄까요? 흥겹지만 때때로 늘어지기도 하는 남미 음악이 흐르는 바에서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갈색 머리에 하고, 몸에는 문신을 그려 넣은 나시 티셔츠를 입은 글래머 아가씨가 한 병의 술을 앞에 두고 사람들과 쾌활하게 이야기하면서 눈웃음 짓는 듯한 이미지네요. 진하고 부드러우며 달콤하고 퇴폐적인 느낌의 맛과 향이 그런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개봉 후에 30분 정도 지나면 산미가 더 살아나면서 와인 맛도 더욱더 풍성해집니다. 맑고 깨끗한 느낌은 아니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진하고 탁한 느낌이죠. 예를 들면 냉면이나 곰탕의 맑은 국물이 아니라 설렁탕이나 라멘의 진하고 뽀얀 국물 같은 느낌. 아마 다섯 종이나 되는 포도를 한데 섞어서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