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명가 마이어 내켈(Meyer-Nakel)이 만드는 그라우바크 슈패트부르군더(Grauwacke Spätburgunder) 2016는 독일 아르(Ahr)에서 재배한 슈패트부르군더 포도로 만드는 QbA(Qualitätswein bestimmter Anbaugebiete) 등급의 와인입니다.
1. 아르(Ahr)
라인강의 지류인 아르강의 주변 지역인 아르는 독일에서 가장 작은 와인 생산지입니다. 로마시대부터 와인을 생산해 왔고, 포도재배 북방 한계선인 북위 50도에 위치해서 독일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와인 생산지역이기도 합니다.
아르에선 슈패트부르군더와 포르투기저(Portugieser)로 레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전체 재배량에서 두 포도가 차지하는 비율도 각각 62%와 10%나 되죠. 화이트 와인도 만들기 어려운 지역에서 레드 와인을 양조할 수 있는 것은 아르 계곡의 독특한 지형과 미세기후 덕분입니다. 불과 550헥타르 밖에 안 되는 아르의 포도밭은 굽이치는 아르 강을 따라 놓인 계곡의 급경사에 위치해서 태양의 고도가 낮아도 햇볕에 거의 직각으로 노출됩니다. 마치 원형극장처럼 파인 계곡은 햇볕에 달궈진 공기를 계곡에 가두어 놓죠. 그래서 레드 와인용 포도 재배가 가능합니다.
2. 마이어 내켈(Meyer-Nakel)
아르에는 슈패트부르군더 와인의 주요 생산자가 두 곳 있습니다. 마이어 내켈과 쟌 스토덴(Jean Stodden) 입니다.
마이어 내켈이라는 와이너리 이름은 1950년에 결혼한 파울라 마이어(Paula Meyer)와 빌리발트 내켈(Willibald Nakel) 부부의 성에서 따온 것입니다. 초창기부터 부부의 드라이 레드 와인은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82년에 아들인 베르너(Werner)가 와이너리를 물려받았습니다.
고등학교의 물리와 수학 선생이었던 베르너는 독학으로 양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수확량을 반으로 줄이는 등 품질에 대한 타협 없는 열정과 독보적인 와인 스타일로 1980년대 말에 이미 수많은 상을 받으면서 독일 와인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떠오릅니다.
그 후 플라잉 와인메이커로 활동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자인 닐 엘리스(Neil Ellis)와 함께 스틸렌보쉬(Stellenbosch)에 즈왈루(Zwalu) 와이너리를 세웠고, 팔츠(Pfalz)에 있는 쾰러-후프레히트(Koehler-Ruprecht)의 베른트 필리피(Bernd Philippi)와 라인가우(Rheingau) 탑 생산자인 게오르그 브로이어(Georg Breuer)의 베른하르트 브로이어(Bernhard Breuer)와 함께 도오루(Douro)에 퀸타 다 까발로즈(Quinta da Carvalhosa)를 설립했습니다.
설립 당시엔 1.5헥타르에 불과했던 마이어 내겔의 포도밭은 현재 23헥타르나 되며 아르 지역 100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베르너의 두 딸인 메이케(Meike)와 도르트(Dorte)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와인학교인 가이젠하임(Geisenheim)을 졸업한 후 와이너리에 합류해 아버지와 함께 마이어 내켈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어두운 기운이 도는 연한 루비, 또는 연한 밤색입니다.
나무와 나무 새순 향 속에 잘 익은 산딸기와 체리 향이 섞여 있습니다. 시원한 허브와 삼나무, 부드러운 견과류, 팔각 같은 향신료도 나옵니다.
탱탱하고 매끈하며 마신 후엔 자잘한 탄닌이 입에 남습니다. 미디엄 바디의 잘 짜인 구조는 허술한 부분이 하나도 없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탄닌은 실키(silky)한 느낌을 더해갑니다.
드라이하고 부드럽습니다. 검붉은 과일의 진하고 우아한 산미가 훌륭하네요. 조금 마른 검붉은 과일에 향긋한 나무와 향신료 풍미가 나오고, 편안하면서 힘을 주는 탄닌과 알코올의 조화가 매우 훌륭합니다.
마신 후에 은은하고 길게 이어지는 검붉은 과일과 향신료, 삼나무 느낌이 세련되면서 매력적입니다. 강하진 않아도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부드럽고 탄력적인 탄닌과 검붉은 과일의 맛있는 산미, 꽤 자연스러운 13.5%의 알코올이 만드는 균형과 조화가 훌륭합니다. 매혹적인 향과 뛰어난 맛으로 마시는 내내 즐거운 기억을 남기네요. 편안하고 거슬리지 않아서 그냥 쭉쭉 마시다가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와인입니다. 지구력은 좀 아쉽군요. 아름다운 가을밤, 아리따운 실루엣을 보여주는 아가씨 같은 느낌의 와인입니다. 마실 땐 30분가량 열어둬야 좋습니다.
함께 먹을 음식으로는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비프스튜, 뵈프 부르기뇽(boeuf a la burguignonne), 채소 구이, 소 갈빗살과 등심구이, 라자냐를 선택하겠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22년 2월 8일 시음했습니다.
아르의 또 다른 와인 생산자인 잔 스토덴의 와인 시음기는 아래의 글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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