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칠레] 떼루아 사냥꾼의 놀라운 비밀 - Undurraga Terroir Hunter Cabernet Sauvignon 2008

까브드맹 2010. 6. 17. 19:52

운두라가 떼루아 헌터 까베르네 소비뇽 2008

1. 떼루아 헌터

칠레의 운두라가 와이너리가 센트럴 밸리 리젼(Central Valley Region)의 마이포 밸리(Maipo Valley)에서 기른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100%로 만든 '떼루아 헌터 까베르네 소비뇽'은 와인을 만들게 된 배경이 그대로 이름이 된 와인입니다. 떼루아 헌터는 글자 그대로 '떼루아(를 찾는) 사냥꾼'이란 뜻이죠. 수입사의 설명으로는 양조자가 삽 한 자루 달랑 들고 칠레 전역을 탐사하면서 까베르네 소비뇽 재배에 가장 적합한 땅과 기후를 찾았고, 그곳에 포도나무를 심고 가꾼 후 포도를 수확해서 만든 와인이라고 합니다. 자매 와인으로 떼루아 헌터 시라(Terroir Hunter Syrah)가 이미 수입되어 있는데, 이 와인 역시 시라에 가장 알맞은 지역을 찾아서 그곳에서 수확한 시라 포도로 만든 것이랍니다.

그런데 운이 좋으면 넓은 땅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까베르네 소비뇽 재배에 최적의 땅이라고 발견한 곳은 매우 협소한 곳이었나 봅니다. 레이블에 적힌 2.67헥타르라는 글씨는 찾은 땅의 면적이 겨우 2.67헥타르란 뜻입니다. 2.67헥타르를 평(平)으로 환산하면 8,077평이 되는데, 대략 축구장 4, 5개 정도의 넓이입니다. 큰 것 같지만 포도밭 넓이로는 아주 작은 크기이죠. 게다가 포도나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뽑고 다시 심어야 하므로 2.67헥타르의 땅을 모두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생산량이 연간 32,400병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작은 포도밭에 까베르네 소비뇽을 심고 정성 들여 가꿔 좋은 포도만 골라서 와인을 만들었는데,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와인을 양조할 때 오크통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요즘 대부분의 와이너리는 레드 와인을 만들 때 온도 조절이 되는 스테인리스 스틸통에서 발효하지만, 숙성은 당연히 오크통에서 하고 고급 와인일수록 오크 숙성 기간을 더 길게 합니다. 그런데 이 와인은 그런 상식을 뒤엎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생산자는 "포도 고유의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린 와인을 만든다."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한 것이라 하지만, 오크에서 숙성하지 않으면 레드 와인의 중요한 향인 나무 향, 송진 향, 바닐라 향, 초콜릿 향을 포기하게 되므로 상당히 모험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러면 모험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일단 저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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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맛과 향

오크를 전혀 쓰지 않은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시음했습니다. 잔에서 레드 체리와 블랙 체리를 걸쭉하게 만든 즙에서 나올 법한 향이 흐릅니다. 과일 향이 매우 강하게 느껴지죠. 한 모금 맛을 보면 칠레 와인치곤 산도가 강한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역시 단맛이 조금 느껴지고, 탄닌은 부드럽게 다듬어져 매우 매끄럽습니다. 여운은 입안을 강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꽤 길게 이어집니다. 풋풋한 허브 향도 느껴지는데, 칠레 와인의 허브 향이 대체로 좀 비릿하지만, 이 와인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첫맛이 꽤 좋게 느껴지며 후반으로 가면 동물적인 향도 조금 나옵니다.

전체적으로 원숙한 과일의 기운이 있는 와인으로 균형이 상당히 잘 잡혔습니다. 초보자는 부담 없이 애호가는 색다른 느낌으로 마실 수 있는 와인입니다.

약하게 양념한 연한 소고기 요리, 숙성이 많이 된 치즈 등과 함께 마시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