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도 남자 몰라요!"
라고 말하는 남녀탐구생활처럼 확실히 남녀는 서로를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남자를 살펴봐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고, 여자가 여자를 관찰해봐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사귀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동성의 평가를 들어봐야 한다고도 합니다.
저도 누나, 동생, 친구 등 아는 여자들로부터 어떤 남자를 골라야 하는지 질문을 받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요, 뭐...이것 저것 얘기 해주긴 합니다만,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서로의 상성에 따라 좋고 나쁜 점이 달리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말하기가 참 어려운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의 고사에 나와있는 남자와 같은 사람이라면 주저말고 선택하라고 얘기하고 싶군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조강지처'에 관한 얘기입니다.
糟:술재강 조. 糠:겨 강. 之:갈 지(…의). 妻:아내 처.
[원말] 조강지처 불하당_糟糠之妻不下堂.
술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란 뜻이다.
이미지 출처 : http://military.china.com/zh_cn/history2/06/11027560/20071217/14555377.html
전한_前漢을 찬탈한 왕망_王莽을 멸하고 유씨_劉氏 천하를 다시 일으킨 후한_後漢 광무제_光武帝 때의 일입니다. 건원_建元 2년(26), 당시 감찰_監察을 맡아보던 대사공_大司空(御史大夫) 송홍_宋弘은 성격이 온후한 사람이었으나, 옳고 그름에 있어서는 황제에게 두려움 없이 직언_直言을 간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광무제에게는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있었는데, 몇 해전 남편을 여의고 미망인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홀로 지내고 있는 누나를 늘 측은하게 여기고 있던 광무제는 누나를 재가시키려고 마음 먹고는 호양공주를 불러 신하 중에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지요.
"누님, 혹시 제 신하 중에 누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지요?"
"폐하, 지금 대사공으로 있는 송홍이야말로 인품이나 풍채나 남자 중의 남자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광무제는 호양 공주가 송홍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곧 작전에 들어갑니다.
어느 날 광무제는 송홍을 부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소에 쳐놓은 병풍 뒤에 호양공주를 앉혀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이런 질문을 하지요.
"흔히들 고귀해지면 (천할 때의)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가난할 때의) 아내를 버린다고 하던데, 이는 인지상정_人之常情 아니겠소?"
그러자 송홍은 곧바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폐하, 황공하오나 신은 '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는 잊지 말아야 하며[貧賤之交 不可忘], 술재강과 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糟糠之妻 不下堂]'고 들었사온데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되나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jeonlado.com/v2/ch07.html?&number=5483
이 말을 들은 광무제와 호양 공주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송홍에게는 이미 조강지처_糟糠之妻가 있었는데, 광무제는 송홍의 신분이 지금의 처와 결혼했던 때보다 높아졌으니 처를 버리고 더 고귀한 신분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은근슬쩍 송홍의 마음을 떠보았지만, 송홍은 이를 단칼에 거절한 것입니다. 광무제가 비록 황제긴 하지만 송홍의 마음이 이처럼 굳은데 억지로 조강지처를 내쫓고서 누나의 희망을 채워 줄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그 이유도 여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신분이 상승했다는 이유로 다른 한 쪽을 버린다는 것은 가장 저열하고 천박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주변을 보면 이런 일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닌 듯 싶습니다. 남자의 고시 공부를 뒷바라지 하던 여자가 남자가 사법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버림받는 얘기가 드라마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종종 일어나곤 했었지요. 또 뚱뚱한 여자친구를 몇 개월 간에 걸쳐 다이어트 시켜서 어지간한 모델 뺨치도록 늘씬하게 만들어줬더니, 여자가 더 조건이 좋은(?) 남자를 만나면서 자기를 차버리고 갔다는 사연도 인터넷 게시판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모두 자신의 상황이 좋아지자 안좋았던 때의 기억과 자취를 지워버리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고 평생토록 함께 할 사람이라면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끝까지 함께 하려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고른다면 앞으로의 삶이 힘들더라도 얼마든지 함께 이겨나갈 수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