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연대기

[술 연대기] 1501년 ~ 1550년

Bar10The 2019. 5. 10. 20:32

교동법주
(이미지 출처.http://kyodongbeobju.com/_system/include/image.view.php?id=shop&uid=119)

1. 16세기 전반(1501년~1550년)

포크는 16세기 무렵 이탈리아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16세기가 되어 대항해 시대를 맞으면서 동서 양쪽이 해상교역로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러자 육로인 실크로드는 빠르게 쇠퇴합니다.

중국의 마카오까지 식민지로 선점한 포르투갈은 16세기 전반 막대한 부를 움켜쥐었습니다. 16세기 전반 포르투갈은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후추와 비단 등의 동방 무역을 독점해서 거대한 부를 얻었습니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배경으로 인도양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인도양의 지배권을 두고 포르투갈과 맘루크 왕조가 격돌했고, 디우 해전에서 포르투갈이 가진 대포의 위력 앞에 맘루크 왕조는 패배했습니다.

16세기에 본격화된 노예무역은 300여 년간 유지되었고, 그간 아메리카로 실려 간 아프리카인은 1,500~2,0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잡고 있던 향신료 교역의 패권은 16세기말에 영국과 네덜란드 연합군에 넘어갔습니다. 16세기말부터 영국과 네덜란드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동인도 항로를 차지했습니다.

16세기 이후 필연적으로 만주에 물품과 돈, 사람이 모여들면서 경제가 활황을 띠었습니다.

리소토(risotto) : 16세기경 밀라노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고추(Chili pepper). 콜럼버스가 유럽에 전한 고추는 16세기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텐푸라(tempura) : 16세기에 한 선교사가 일본에 소개한 기독교 용어로 고기를 먹지 않는 기간을 가리키던 말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템파라르 기간에 야채를 튀겨 먹는 선교사들을 흉내 내어 여러 튀김 요리를 만들면서 동양과 서양이 이어진 셈입니다.

코르셋(corset) : 16세기 중반에는 영국 여성들도 코르셋을 즐겨 착용했습니다.

비스킷(biscuit) : 16세기말 에스파냐 선원들은 하루 1파운드의 비스킷과 1갤런의 맥주를 수당으로 받았습니다.

쌀(Rice) : 아메리카 대륙으로는 16세기 초에 처음 브라질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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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Coca) : 16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이 남미에 도착했을 당시에도 현지인들은 여전히 코카를 상용하고 있었습니다.

홉(Hops) : 16세기에는 영국에도 홉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석류(Pomegranate) : 석류로 만든 시럽인 그레나딘은 석류를 나타내는 옛 프랑스 단어 '그르나드(grenade)'에서 따온 것입니다. 16세기에 발명된 수류탄을 뜻하는 영어 단어도 이와 같은 그르나드인데, 아마 서로 크기가 비슷한 데다 종류는 전혀 다를지언정 둘 다 터질 듯한 물질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같은 이름이 붙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탕무(Sugar Beet) : 16세기 후반의 식물학자들은 이 사탕무를 끓여서 달콤한 시럽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개발했지만, 교배를 통해 당분 함량이 더욱 높은 품종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사탕무 시럽이 감미료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16세기~17세기. 보리(Barley) : 우리나라에서 이모작이 시작되었습니다.

맥주(Beer) : 16세기까지 싹이 튼 곡물 맥아로 만든 술은 모두 맥주라고 불렀습니다. 쌉쌀한 맥주는 16세기 이후 '홉'을 넣기 시작하면서 깊은 맛으로 거듭났습니다.

맥주 : 독일의 바이에른 대공인 빌헬름 4세는 맥주 양조법을 장악하고, 궁정 양조장인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auhaus)를 개설했으며, 바이에른 맥주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맥주의 원료는 보리 홉, 그리고 물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맥주 순수령'을 내렸습니다.

맥주 : 16세기말부터 영국에 홉으로 만든 맥주가 들어오면서 홉을 넣지 않은 맥주를 에일, 홉을 넣으면 비어(Bier)라고 했습니다. 16세기 영국 가정에선 하루에 1인당 3리터의 맥주를 마셨습니다. 당시에는 소금에 절인 음식을 많이 먹어서 갈증이 심했습니다.

맥주 : 16세기말 프랑스에선 홉을 넣은 맥주가 에일을 밀어냈습니다.

와인(Wine) : 16세기 이후에는 신대륙을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과 호주, 칠레 등지에서도 많은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다.

와인 : 프랑스의 쇠낭부르 지역은 16세기부터 북유럽 지방에 널리 알려졌으며, 이곳의 와인은 프랑스에서 가장 귀족적인 와인으로 선정될 정도였습니다. 16세기에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면서부터 우연히 발포성 와인이 생겨났습니다. 메독(Médoc)에선 16세기 들어 포도밭주인들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생산된 와인을 유럽 전역으로 무역하는 중개상들이 등장했고 실질적인 와인 생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와인 : 샤토 보-세쥬르 베코(Château Beau-Sejour Becot)는 16세기부터 와인의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와인 : 샤토 드 뫼르쏘(Château de Meursault)의 카브는 16세기에 이미 만들어졌습니다.

와인 : 도프(Dopff) 가문과 이리옹(Irion) 가문은 16세기부터 와인 사업을 함께 해왔고, 자신들이 소유한 샤토 드 뤼크위르(Chateau de Riquewihr)의 포도밭 이외에 주변의 소규모 농장들로부터 와인을 사들여 중개상 역할도 함께 했습니다.

와인 : 16세기에 지어졌다는 알자스의 위겔 & 피스(Hugel & Fils)에 있는 카브에는 100년 이상 된 오크통들이 있는 걸로 보아 이 가문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스카치위스키(Scotch Whisky) :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위스키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글렌모렌지(Glenmorangie) 증류소의 앞바다는 16세기에 난파된 스페인 갈레온선의 전설을 품고 있습니다. 스페인 무적함대가 스코틀랜드 연안 주변에서 영국 해군으로부터 도망치던 때 보물들을 잔뜩 실은 많은 배 중 하나를 잃었다고 합니다.

브랜디(Brandy) : 깔바도스(Calvados) 지방에서는 16세기부터 증류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브랜디 : 16세기에 이르러서 영국과 네덜란드의 상인들은 방대한 포도밭에서 얻은 질 낮은 와인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증류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16세기 후반에 일어난 종교 전쟁으로 포도밭이 황폐해져 품질 좋은 와인이 나오지 않게 되었고, 당시 와인을 사러 왔던 네덜란드 상인들이 증류하는 방법을 권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태운 와인'이란 뜻으로 '뱅 브뤼레(Vin Brule)'라 했고, 네덜란드 상인들이 이 말을 직역하여 '브란데베인(Brande-wijn)'으로 불렀으며, 수입국인 영국에선 '브랜디(Brandy)'가 되었다고 합니다. 코냑(Cognac) 지방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포도의 주산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16세기말부터 이 지방에서 생산된 포도주를 '코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진(Gin) : 16세기에 네덜란드 화학자가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일부는 중세시대 벨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아쿠아비트(Aquavit) : 16세기부터 곡물을 원료로 사용하였습니다.

풀케(Pulque) : 16세기 스페인의 역사학자 프란시스코 로페스 데 고마라(Francisco Lopez de Gomara)는 이런 글을 남겼다. "죽은 개, 심지어 폭탄도 풀케의 냄새만큼 거리의 모든 사람을 도망가게 만들 수는 없다."

메즈칼(Mezcal) : 메즈칼의 생산은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리큐르(Liqueur) : 퀴멜(Kummel)은 역사가 16세기 네덜란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달콤한 곡물 베이스 리큐어로 보통 저녁식사 후 얼음을 띄워서 마십니다.

1502년 : 이탈리아의 지도 제작자 겸 탐험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502년 남미 탐험 이후 남미는 인도가 아닌 신대륙이라 믿었습니다.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군비를 갖춰 캘리컷을 점령하면서 인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초콜릿(Chocolate)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네 번째 항해 중에 온두라스에서 카카오를 발견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전설에 따르면 주라(Jura) 섬에선 이때부터 증류를 하기 시작했고, 주민 1000여 명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1504년 : 연산군 대에 폐비 윤 씨 사건으로 인해 갑자사화가 발생했습니다.

1505년 : 포르투갈은 이 해에 인도 고아에 총독을 두고 이곳을 중심으로 식민지 개척 전략을 펴나갔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에든버러의 이발사 길드는 초기 위스키 생산과 유통의 독점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1506년. 전통주(청주∙약주. 경주 교동법주) : 법식대로 빚은 술인 교동 법주의 유래를 찾자면 조선 중종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 당시는 반상의 신분 구분이 심했답니다. 그래서 법주와 같은 고급술은 아무나 마실 수가 없었지요. 궁중에서는 문무백관과 외국 사신들만이 마실 수 있는, 이른바 '특별주'라는 것을 만들기에 이르렀는데, 이 특별주가 바로 교동법주입니다. 저희 9대조이신 최국선 공께서 조선조 숙종 때 사옹원 참봉으로 계셨습니다. 그때 법주 빚는 법을 사가에 전수하신 것으로 대대로 종부에게만 전수되어 온 경주 최 씨 가문의 비주입니다."

스카치위스키 :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가 에든버러의 외과의 겸 이발사 길드에 에든버러 내의 위스키 증류 독점권을 주었습니다.

1507년. 전통주(약용주. 인삼주) : 《본초강목》은 명나라의 이시진의 저서로 이미 16세기에 인삼주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1509년 : 포르투갈은 디우 해전에서 맘루크 왕조의 함대를 격파하고 인도양 전역을 재패했습니다.

1510년 : 11대 중종 때 부산포, 내야포, 염포에서 거주하고 있던 왜인들이 대마도의 지원을 받아 삼포왜변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비변사가 최초로 설치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이 인도의 고아(Goa)를 점령했고, 20세기에 이를 때까지 아시아 경영의 본거지로 삼았습니다.

1510년~1961년 : 코코넛 또는 캐슈애플 주스로 만드는 리큐르인 페니(Fenny 또는 Fenni)는 포르투갈의 통치하에 있었던 고아라는 인도의 작은 주에서 만들어졌고, 아직까지 생산됩니다.

리큐르 : 베네딕틴(Benedictine)은 노르망디의 어항 페캉(Fecamp)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승 동 베르나르도 뱅셀리(Dom Bernardo Vincelli)가 만든 것입니다.

 

 

1511년 : 포르투갈은 인도에서 더욱 동쪽으로 진격해 실론과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도 정복하고 남지나해로 진출합니다.

1512년. 증류(Distillation) : 이 해에 출판된 《증류 기술》은 증류법만 독자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으로 이후에 여러 판본으로 번역되어 유럽 전체에 증류법을 알렸습니다.

1513년 : 스페인 탐험가인 발보아가 파나마 지협을 발견했습니다.

1514년 :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가 이란의 사파비 왕조를 정복했습니다.

1515년 : 페르시아 만 어귀의 항구인 호르무즈를 점령하면서 포르투갈의 동아시아 시대는 활짝 만개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은 호르무즈 항구를 선점함으로써 동인도 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습니다.

1516년. 맥주 : 독일의 바이에른에서 일명 라인하이츠거보트(Reinheitsgebot)라는 맥주 순수령이 도입되었습니다. 도입 초반에는 맥주의 원료가 보리, 홉, 물만으로 제한되고 효모가 빠졌는데, 당시에는 효모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맥주 관련 법령이자 세계 최초의 식품안전법인 청정법률(Reinheitsgebot)을 봐도 맥주의 성분을 보리와 물, 홉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1517년 : 포르투갈은 중국에 진출하여 마카오를 차지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를 정복하며 이슬람의 패권을 쥐게 됩니다.

루터가 《95개 조항》이라는 로마 교회에 대한 질문서를 발표했습니다.

1518년 : 멕시코 고원의 아스테카 제국(Azteca Empire)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는 그곳의 술인 이스타크 옥틀리(Iztac Octli, 흰 술)를 맛보게 됩니다. 이 술을 풀케(Pulque)라고 합니다.

1519년 : 중종 때 조광조의 건의에 따라 관리등용 추천 제도인 현량과를 실시했습니다. 훈구파가 조광조 등의 신진 사류(사림)를 숙청하기 위해 기묘사화를 일으킵니다.

스페인을 출발한 마젤란은 대서양을 건너 지금의 브라질과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해안을 따라서 내려갔습니다.

초콜릿 : 본격적으로 카카오를 유럽에 알린 사람은 에르난 코르테스입니다. 그가 멕시코 해안에 상륙하자 아즈텍 사람들은 그를 케찰코아틀(고대 중남미의 신. 깃털을 가진 뱀의 형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로 생각해 카카오 음료를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는 최초의 카카오 농장을 만들어 에스파냐로 수출했습니다.

 

 

1520년 : 쇼콜라틀은 '쓴'이라는 뜻의 쇼코크(xococ)와 '물'이라는 뜻의 아틀(atl)을 합쳐 만든 말입니다. 이 말이 에스파냐어로 들어가 초콜라테(chocolate)가 되었고, 똑같은 형태로 영어로 들어가 초콜릿(chocolate)이 되었습니다.

1521년 : 당시의 신성로마 교황인 칼 5세는 루터의 행위를 반역이라고 간주하고 제국회의에 루터를 증인으로 소환하여 비판했습니다.

풀케 : 스페인의 정복자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Bernal Diaz del Castillo)가 피누코에서 풀케를 마시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봤습니다. 마신다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원주민은 가는 나무줄기를 이용해서 풀케를 빨아먹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1523년. 보드카(Vodka) : 스테판 팔라미시(Stefan Falimirz)는 이 해에 저술한 의학서 《약초와 그 효능(On Herbs and Their Powers)》에서 '작은 물방울'이라는 뜻의 폴란드어인 보트키(wodki)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감자로 보드카를 만들기 훨씬 전의 일이었습니다.

1525년. 리큐르 : 이탈리아 사론노의 어느 술집 젊은 여주인이 그 지역 화가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아몬드 리큐르인 디사론노 마아레또(Disaronno Amaretto) 한 병을 줬습니다.

1526년 : 티무르의 후예인 바부르는 파니파트 전투를 통해 인도로 진출하여 무굴 제국을 세웠습니다.

연지벌레(Dactylopius coccus) :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오비에도는 이 해에 남긴 기록에서 선인장 열매를 먹자 소변이 선홍색으로 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1528년 : 처음으로 잉카 제국을 접한 스페인 사람들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에 놀라음을 금치 못했습니다.

1529년 : 셀림 1세의 아들인 술레이만 1세 시대에 오스만 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헝가리 정복에 이어 유럽 내륙까지 침략했고, 이 해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신성로마 제국 본거지인 빈을 포위했습니다.

1530년경 : 카샤사(Cachaca)가 처음 양조되었다는 사실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1530년. 니코틴(nicotine) : 니코틴을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의 문헌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장 니코(Jean Nicot)입니다. 장 니코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인 님에서 태어났습니다.

데킬라(Tequila) : 멕시코의 도시 산티아고 데 데킬라가 세워졌습니다. 혹은 이 도시를 발견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름을 붙였습니다.

 

 

1531년. 아쿠아비트 : 에스케 빌레(Eske Bille)라는 덴마크 영주가 노르웨이 로마 가톨릭교의 마지막 대교주인 올라브 엥엘브레크트손(Olav Engelbktsson)에게 아쿠아비트 한 병을 보내 주며 동봉한 서신에 "온갖 내장병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라며 기록상 최초로 아쿠아비테(생명의 물)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1532년. 메즈칼(Mezcal) : 스페인 정복자들은 용설란 수액으로 만든 알코올성 음료인 풀케에서 원하는 맛이 나지 않자 구운 용설란의 당분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마시던 브랜디만큼 독한 증류주를 만들었습니다. 메즈칼이 탄생한 것입니다.

1534년 : 튜더 왕조의 헨리 8세는 수장령으로 영국 국교회를 창설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로 영국의 가톨릭 교회가 폐쇄되었고, 수도원의 증류 기술자들이 민간으로 흩어지면서 민간에서 위스키를 만들게 됩니다.

보드카 : 폴란드의 약종상 스테판 팔리미시(Stefan Falimirz)가 치료 안내서를 쓰면서 'wodka(보드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리큐르 : 베네딕틴은 프랑수아 1세의 궁전에서 애용될 정도로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1540년대. 고추(Chili pepper) : 중남미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고추는 포르투갈 무역선에 실려 1540년대 마카오와 중국 무역항에 도착했습니다.

전통주(약주. 오정주) : 오정주는 1540년대 《수운잡방》에 제조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병을 다스리고 허한 것을 보하며, 오래 살게 하고 백발도 검게 되며, 빠진 이도 다시 난다.'라고 전해지는 전통 약주입니다.

 

 

1541년. 전통주 : 《조선왕조실록》 중종 36년 기사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도성의 각 시장에는 누룩을 파는 데가 7~8곳 있는데 그곳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양이 7~8 문이며, 그것으로 술을 빚는 쌀은 천여 석에 이를 것이다.'

데킬라 : 프레이 안토니오 토리비오 데베나벤테 모톨리니아(Fray Antonio Toribio de Benavente Motolinia)가 용설란의 활용과 굽는 과정에 대해 기록을 남겼습니다.

1543년. 고추 : 고추가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일본 규슈까지 전해졌습니다.

1545년 : 13대 명종 때 윤원형의 일파인 소윤이 윤임의 일파인 대윤을 숙청하면서 사림이 크게 화를 입은 을사사화가 일어났습니다.

1546년. 보드카 : 폴란드의 도시 크라쿠프, 그단스크, 포즈난이 증류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포즈난은 오늘날까지도 그 위상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1550년대. 카샤사 : 50년대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브라질에서는 맥주 다음으로 소비량이 많고, 세계적으로 보드카, 소주 다음으로 많은 양을 생산합니다.

1550년. 사이다(Cider) : 바스크 지역 출신의 개척자 기욤 뒤르쉬(Guillaume Dursus) 덕분에 노르망디에서 사이다 양조법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