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연대기

[술 연대기] 1001년 ~ 1200년

Bar10The 2019. 5. 3. 19:45

북산주경(北山酒經)
(이미지 출처 : https://www.baike.com/wikiid/3254199027895103781?baike_source=innerlink)

1. 11세기(1001년~1100년)

프랑스에 자신들의 땅을 가지고 있던 영국은 프랑스와 오랫동안 싸움이 잦았습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11세기 후반에 시작해서 근 200년 간 진행된 십자군 원정 덕분에 세계 향료 시장에서 제왕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11세기 이후 유라시아대륙은 호경기로 들끓었습니다.

파스타(pasta) : 파스타는 11세기 아랍인들이 시칠리아를 점령하면서 시칠리아와 제노바를 왕래하던 무역상들에 의해 이탈리아에 전파되었습니다.

커피(Coffee) : 이슬람 사원에서만 마시던 커피가 11세기가 되자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퍼졌습니다.

설탕(sugar)(>~13세기) : 십자군 전쟁은 설탕 전파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증류(Distillation)(~12세기) :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가 증류에 관한 화학적인 연구를 기록했음에도 유럽에는 11~12세기가 되어서야 증류기술이 전파되었습니다.

11세기 초에는 이븐 시나가 정유를 정제하려고 수증기 증류법이란 증류기술을 사용하는 등 이슬람 세계에서 증류법은 날로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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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Gin) : 11세기에 이탈리아의 수도사들은 주니퍼 베리로 풍미를 더한 조잡한 증류주를 만들었습니다.

1010년 : 거란이 2차 침입을 하여 개경이 함락되었습니다. 양규가 선전했습니다.

현종 원년에 사원의 양조업과 주류 판매를 금하는 금령이 내려졌습니다.

와인(Wine) : 프랑스의 보르도 와인이 잉글랜드로 수출되기 시작했습니다.

1018년 : 거란이 3차 침입을 했으나 강감찬이 귀주대첩에서 승리했습니다. 고려는 천리장성을 축조했습니다.

거란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공격해 왔습니다. 고려 왕 현종 때 홍화진에서 첫 싸움이 벌어졌고, 귀주에서 두 번째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1021년 : 현종 12년. 사원의 양조업과 주류 판매를 금하는 금령이 내려졌습니다.

1027년 : 현종 18년. 거듭된 금령에도 불구하고 밀주에 소요된 미곡이 360여 석이었다고 합니다.

1031년 : 인종 9년. 사원의 양조업과 주류 판매를 금하는 금령이 내려졌습니다.

1036년~1101년 : 송나라의 소식은 사천성 사람으로 술이나 요리에 관한 논문이나 기록을 수 많이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술에 관한 대표적인 저작이 《동파주경(東坡酒經)》입니다.

1040년. 맥주(Beer) : 독일 바이에른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인 바이헨슈테판이 세워졌습니다.

 

 

1055년. : 이탈리아 살레르노의 의학자들이 주니퍼의 약효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1060년. 전통주(증류식 소주, 담양 추성주) : 고려 문종 14년 때의 사람으로 참지정사란 벼슬을 지냈던 이영간이 어렸을 때 금성산성에 있는 연동사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스님들이 금성산성 일대의 자생약초와 불자들이 가져다준 보리쌀을 원료로 술을 빚어 곡차로 즐겨 왔습니다. 연동사의 스님이 빚은 술은 신통한 효험이 있어서 늙은 살쾡이가 그 술을 마시고 사람이 되었다는 전설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여 이후 스님이 빚었던 제조법 그대로 금성산성 인근 산속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열매를 주재료로 술을 빚었습니다. 이 술이 지금의 추성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1066년 : 북해 도버 해협에는 현지인과 노르만인의 복잡한 싸움을 거쳐 노르만 왕국이 세워지고 이는 영국의 모태가 됩니다.

사이다(Cider) : 노르만 족이 영국을 침략하면서 사이다 음용이 촉진되었습니다. 영국에 새로운 품종의 사과가 도입되고 사이다용 사과를 특별히 재배하는 과수원이 생겨 났으며, 사이다에 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했습니다.

1078년 : 문종 32년. 송나라에서 고려에 행인자법주(약용자주류)가 유입되었습니다.

1084년. 리큐르(Liqueur) : 샤르트뢰즈(Chartreuse)의 유래는 성 브루노(Saint Bruno)가 카르투지오 교단을 창립하고 알프스 산속에 있는 그르노블 근처의 샤르트뢰즈에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이 수도원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명주 샤르트뢰즈는 이 수도원에서 탄생되었습니다.

1095년 : 고려 숙종 때 남만으로부터 화주(과실주류)가 유입되었습니다.

1097년 : 고려 숙종 2년에 주막이 등장했다는 설이 있긴 하나 정확히 고증할 수 없습니다.

1098년. 와인 : 크리스마스에 부르고뉴 대공이었던 에드 1세가 최초로 시토 성(Chateau de Cateaux)에 포도밭을 하사했습니다.

1100년~1500년. 와인 : 프랑스 와인의 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시기입니다. 기독교를 등에 업은 세력이 자기 소유의 포도밭에서 보다 질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토양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품질 좋은 와인들은 무역을 통해 유럽 각지로 팔려 나가기 시작했고, 이 무렵부터 보르도가 와인 무역의 중심지가 됩니다.

 

 

2. 12세기(1101년~1200년)

12세기의 고려 귀족들은 왕실과 결혼을 하거나 자신을 따르는 세력들을 주요 자리에 앉혀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해운 비즈니스를 독점한 노르만인은 해안의 항만도시를 정비했고, 12세기의 유럽 경제가 도약하는 발판을 형성했습니다.

중세의 번영 시기인 12세기에는 십자군이 파견되면서 유럽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격렬한 전쟁을 치렀습니다.

십자군이 파견되던 시대에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 향하는 십자군의 안전을 해상에서 확보하려고 로마 교황은 노르만인을 지중해로 초청해 이탈리아 남부에 양 시칠리아 왕국을 건설하게 했습니다.

십자군에 의해 동방 지역과 접촉한 유럽은 12세기에 지중해를 무대로 동방 지역과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호경기를 누렸습니다. 십자군 원정 이후 레반트 무역(동방 무역)이라고 불리는 이집트∙중동 지역과의 교역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면서 12세기의 유럽과 지중해 세계에 유례없는 호경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12세기의 호황기에 힘입어 유럽의 남북을 잇는 간선 아웃렛(유통 판로)이 구축됩니다. 남북으로 연결된 간선 루트는 12세기의 호경기를 이룬 토대가 되었고, 이 루트를 따라 유럽의 도시 경제가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은 남북을 연결해 주는 간선 루트에서 벗어났기에 12세기의 호경기 덕을 거의 보지 못하고 경제가 정체되었습니다.

12세기에는 강력한 세력을 과시한 독일 북부의 도시동맹인 한자동맹(항만도시인 뤼베크 등)이 결성되었습니다.

12세기에 유럽 경제가 급격히 성장할 때 중국에서도 송나라가 경제성장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셀주크 왕조(이슬람)는 내부 분열로 붕괴되었습니다.

 

 

패션(fashion) : 팍시오넴은 12세기 고대 프랑스어로 파송, 파숑 등 다양한 형태를 띠면서 얼굴, 외양, 패턴, 디자인, 아름다움 등을 지칭했습니다.

블랙 커런트(Black Currant) : 성 힐데가르트(St. Hildegard)는 12세기 문헌에서 카시스의 잎사귀를 관절염 치료제로 추천했습니다.

증류 : 무슬림 의사였던 알부카시스(Albucasis)의 기록에 의하면 증류기술을 곡물 외에도 비니거(Vinegar, 서양 식초의 일종)와 와인에도 적용했다고 합니다. 이슬람 화학자들이 개선한 증류법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유럽인들을 통해 12세기경에 중세 유럽으로 전파됩니다.

12~13세기. 맥주 : 이 무렵에 홉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최초로 홉을 첨가해서 맥주를 만든 사람은 12세기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의 힐데가르트 원장입니다.

와인 : 12세기 들어 십자군과 수도원의 활발한 활동으로 포도주 산업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와인 : 프랑스 샤토 도작(Chateau Dauzac)의 포도밭이 역사 기록에 등장합니다.

와인 : 12세기에 프랑스의 수도사들은 그들의 자산으로서 시토성(Chateau de Cateaux)을 운영했습니다.

브랜디(Brandy) : 아랍 문화의 하나였던 증류법이 서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브랜디의 시초를 이루었습니다. 십자군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된 증류법이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를 낳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브랜디 : 이태리에서는 12세기경부터 와인을 증류하여 약품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보드카(Vodka) : 러시아에서 태어난 보드카는 원료에 구애되지 않고 보리 같은 곡물부터 감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원료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 이외에 동유럽을 중심으로 비슷한 증류주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12세기 무렵에 러시아와 폴란드일대에서 보드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1105년 : 고려 예종 때 거란과 여진으로부터 양주(유주류)가 유입되었습니다.

1107년 : 윤관이 별무반을 조직하여 여진을 토벌하고 동북 9성을 축조했습니다.

1113년. 와인 : 포르투갈(Portugal)에서 개인적으로 와인의 원산지 통제를 실시했습니다.

1115년 : 여진이 금을 건국하고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했습니다. 이자겸이 금의 요구를 수용하며 사대 외교를 펼쳤습니다.

1116년 : 북송 말엽에 가까운 정화 6년에 구종석(寇宗奭)이 지은 《본초연의(本草衍義)》에선 당시의 술을 남북의 두 계통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북주는 밀가루 누룩으로 만든 술이고, 남주는 찹쌀가루에 여러 가지 약초를 섞은 누룩으로 만든 것입니다.

1117년 : 고려 예종 12년에 송나라로부터 계향어주(약용자주류)가 유입되었습니다.

정화 7년에는 주익중의 《북산주경(北山酒經)》이 나왔습니다. 주익중은 진사였으나 달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등 관운을 얻지 못하고 항주에 퇴거하여 조주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1124년 : 고려 인종 2년.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술에 관하여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서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고 설명합니다. 고려 시대에는 미곡주를 빚었음이 확실하며, 또한 청주를 걸러 썼는데 그 술빚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126년 : 이자겸이 왕위 찬탈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문벌귀족사회가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1130년~1160년. 증류 : 어느 시점에서 살러누스(Salernus)라는 의사가 의료에 쓸 목적으로 증류기를 이용하여 알코올을 얻었다고 언급됩니다.

1134년 : 4월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울퉁불퉁한 얼음덩어리가 쏟아졌는데 눈과 달리 크기는 달걀만 했고 돌처럼 단단했습니다. 얼음덩어리는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천도파는 "서경에 가야만 고려가 바로 서게 됩니다"라고 했지만 인종은 도읍을 옮기는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1135년 : 풍수지리설을 바탕으로 묘청이 서경 천도 운동을 벌입니다. 묘청은 금과의 군신 관계를 비판했고, 자주적 전통사상(서경파)과 사대적 유교 정치사상(보수세력)이 충돌하게 됩니다.

1142년 : 남송이 금나라와 화평 조약을 맺었습니다.

1145년 :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저술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입니다. 《삼국사기》에 술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술이 매우 다채로웠을 것으로 짐작되며, 청주와 탁주의 구별이 시작되었다고 믿어집니다. 《삼국사기》의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11년(28조)에 지주란 말이 나옵니다. 지주는 맛 좋은 술을 뜻하며, 맛 좋은 술이 있었으면 맛이 나쁜 술도 있었을 겁니다. 발효식품의 나라 고구려이니 누룩을 써서 만드는 여러 가지 술들이 중국 못지않게 만들어졌겠지만 아무런 문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삼국 및 통일신라 시대의 술에 관하여 미온, 지주, 요례 등의 말이 나옵니다. 미온과 지주는 좋은 술이고, 요례는 막걸리나 예주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술의 원료나 제법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1150년~1160년. 맥주 : 힐데가르트 폰빙엔(Hildegard von Bingen)이 양조와 관련해 홉을 언급하면서 맥주가 건강에 유익하다는 글을 썼습니다.

1152년. 와인 :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은 이 땅을 상속받은 엘레노어 왕녀가 나중에 잉글랜드 국왕인 헨리 2세와 결혼하면서 300년 동안 잉글랜드령이었습니다.

1169년 : 이슬람 상인들이 살라딘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면서 살라딘의 군사가 증강되었고, 상인들의 바람대로 살라딘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일하여 아이유부 왕조를 세웁니다.

1170년 : 무신에 대한 차별 대우로 무신정변이 발발했습니다. 무신들은 당시 임금이었던 의종을 몰아내고 명종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후 100년 동안 무신들이 권력을 장악합니다.

아이리쉬 위스키(Irish Whiskey) : 헨리 2세의 군대가 불청객으로 아일랜드에 쳐들어 갔다가 아일랜드인의 증류주 문화를 접하게 됩니다.

1171년. 아이리쉬 위스키 : 잉글랜드 군대가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 주민들이 ‘아스키보’라는 증류주를 마시고 있었고, 이것이 바로 위스키의 시초로 분석됩니다.

1172년. 아이리쉬 위스키 : 영국 왕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정복했을 때 아일랜드 사람들은 증류한 술을 ‘아쿠아 비테(Aqua Vitae)’ 라며 마시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일랜드 주민들은 보리를 발효한 다음 증류해서 만든 술을 즐겨 마셨고 이것을 “생명의 물(Usque-baugh)"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1180년대. 칵테일(Cocktail) : 이슬람교도들 사이에 묽게 한 알코올에 꽃이나 식물을 섞어서 마시는 것이 고안되어 있었습니다.

1198년 : 무신 집권기에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이 주도하여 일어난 만적의 난은 신분 해방 운동이었습니다.

1200년대. 증류 : 와인과 허브에서 얻은 다양한 증류액을 의료에 사용했습니다. 이런 계열의 술이 샤르트뢰즈와 베네딕틴입니다.

숙성(Aging) : 증류는 사실상 1200년대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아일랜드 수도사들이 처음으로 나무통에 보관하는 시도를 했을 겁니다. 판매를 기다리는 동안 술을 나무통 안에 둔 것입니다.

1200년. 증류 : 암흑시대의 거물 연금술사 가운데 철학자이자 사제이며 마술사인 알베르투스 마그너스(Albertus Magnus)는 이 해에 출간한 책 《여인의 비밀(De secretis mulierum)》에 마실 수 있는 증류액 처방 두 가지를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