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기 1세기
후추(Pepper) : 1세기 유럽에 수입되는 물품의 반 이상은 향신료였고 대부분은 인도에서 들여온 후추였습니다.
증류(Distillation) : 1세기경에 고대 그리스로 증류기술이 전달되었습니다.
맥주(Beer) : 게르만족은 1세기경부터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와인(Wine) : 프랑스 동남부에서 로마 퇴역군인들이 와인을 가장 많이 생산하던 시기로 이들은 와인을 제국 전역으로 수출했습니다.
서기 1세기경부터 포도밭으로 뒤덮였던 랑그독 지역은 전통적으로 수작업에 의한 농부들의 정성이 담긴 포도 재배로 개성 있는 와인의 생산이 이루어지던 곳입니다.
1) 서기 1년(원년)
와인 : 예수가 한 결혼식에서 물을 와인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2) 서기 27년(~66년)
숙성(Aging) : 이 무렵 살았던 심판관 페트로니우스(Petronius the Arbiter)는 운문소설 《사티리콘(Satyricon)》에서 저녁 만찬을 묘사했는데, 꿀이 들어있는 와인이 먼저 나왔고 다음으로 100년 묵은 오피미안(Opimian) 팔레르노가 나왔다고 썼습니다.
3) 서기 28년
술에 관한 우리나라 문헌으로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11년조에 ‘지주’ 라고 하여 ‘ 맛 좋은 술’이라는 뜻의 술 이름과, 《삼국유사》에 ‘미온’ 이란 술 이름이 등장합니다.
4) 서기 42년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가야연맹이 성립되었습니다.
5) 서기 43년
사이다(Cider) : 로마인이 영국을 침략했을 때 켈트족은 배와 사과로 만든 사이다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조방식의 체계는 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6) 서기 53년
고구려의 태조왕이 즉위하여 옥저를 복속하는 등 정복 전쟁을 활발하게 펼쳤습니다.
7) 서기 71년
와인 :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가 오늘날의 보르도 지역 소재 포도원을 언급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는 알려진 것으로는 포도원에 대한 최초의 언급입니다.
8) 서기 73년
이스라엘의 마사다는 유대교 광신자들이 로마의 통치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며 집단 자살을 했던 곳입니다.
대추야자(Date Palm) : 마사다 발굴지에서 발견된 씨앗은 고고학자들이 발아시키기로 결정할 때까지 얌전히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최신식 온실의 플라스틱 화분에 넣고 잠적관수로 관리를 하자 씨앗은 거의 2000년에 걸친 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9) 서기 77년경
호밀(Rye) :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가 펴낸 《박물지(Natural History)》에는 호밀이 "매우 열등한 곡물이며, 기근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10) 서기 79년
증류 : 이 해에 사망한 플리니우스가 증류기로 보이는 장치를 설명하는 글을 남겨 로마 시대에 증류기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이다 : 로마의 백과사전 《박물지》를 쓴 플리니우스가 '인조 술'에 대해 다룬 전문 서적에서 최초로 사이다와 폐리를 언급했습니다.
와인 :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폼페이에 비축되어 있던 많은 와인이 소실되었습니다.
2. 서기 2세기
1) 서기 179년(~197년)
고구려의 고국천왕이 진대법을 실시했습니다. 3월부터 7월까지 곡식을 대여했다가 10월에 이르러 갚도록 한 제도입니다.
2) 서기 184년
한의 마지막 시기에 크고 작은 항쟁이 이어지면서 황건의 난이라는 대규모 반란이 발생했습니다. 이때부터 중국은 난세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황건의 난이 가져온 혼란에 편승하여 조조가 등장했습니다.
3) 서기 200년경
풀케(Pulque) : 멕시코 촐롤라의 피라미드 벽화에는 풀케를 마시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축제를 벌이며 용설란 수액, 즉 멕시코 술 풀케(pulque)를 마셨습니다.
진(Gin) : 그리스의 내과 의사 갈렌(Galen)이 주니퍼에 간과 신장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효능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주니퍼를 알코올과 섞음으로써 ‘건강론’을 퇴색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