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옛날 이야기

과연 럭키세븐이란 말이 또 다시 증명될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까브드맹 2010. 1. 3. 09:46

(이미지 출처 : http://www.allposters.com/-sp/Lucky-Seven-Posters_i2110311_.htm)

우리가 종종 쓰는 럭키세븐이란 말의 어원에 대한 글입니다. 

1922년 10월, 미국 월드시리즈는 양대 리그의 뉴욕팀 즉 양키스와 자이언츠의 대결이었다. 「뉴욕 트리뷴」지의 스포츠 칼럼니스트였던 라이스는  제 3번 승부 7회초 자이언츠의 공격을 앞두고 중계방송에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것이 <럭키 세븐>이란 말의 효시였다.[각주:1]  

야구에는 행운의 7회라는 의미의 <럭키 세븐>이란 말이 있다. 7회 쯤이면 곧잘 경쾌한 득점이 이루어진다. 그것을 <행운>이란 말로 꾸며 놓은 것은 이제껏 득점을 못하다가도 7회에 와서야 득점을 올렸으니 행운이 따랐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논리인데 그런 논리는 일종의 게당켄 슈필(개념의 유희)에 불과하다. 7회에 득점이 잘 이루어진다는 얘기는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다.

어떤 스포츠 종목에서나 선수들은 경기 초반에는 몇 분간 몸이 굳어 있기 마련이다. 스포츠 운동역학에서는 이 순간까지를 데드 포인트_Dead Point,즉 사점_死點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 뛰어 땀이 날 정도가 되면 육체적 기능은 최고의 컨디션까지 상승하게 되는데 이때부터를 세컨드 윈드_Second Wind,즉 2차 이완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속칭 <몸이 풀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일수록 사점의 통과시간은 짧다. 수구_水球나 아이스 하키, 테니스, 복싱같은 경기의 선수는 경기 초반 수분만에 사점을 통과하며 몸의 유연성이 최대한도로 발휘되어아 하는 농구나 배구경기의 선수들은 사점통과가 약간 늦기 때문에 게임의 리듬이 응결되는 수가 많은 것이다. 프로 복싱 선수는 링에 오르기 직전에 2라운드 정도의 스파링을 하여 충분히 땀을 흘리고 본게임에 임해야 한다는 중요한 원리도 바로 이 <세컨드 윈드>의 원칙에 입각한 전략적 개념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야구만은 전원이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 상태이고 한 사람만이 타석에 나가 공격을 하는 것이며 수비선수 역시 공이 오지 않으면 별로 움직이지 않는게 상례여서 사점통과의 시간이 매우 길다고 봐야할 것이다. 야구처럼 보디 체크가 없는 운동에서는 선수 개개인이 자신의 플레이를 게임의 분위기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인데 바로 그처럼 게임의 리듬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눈이 틔게 되는 순간이 사점을 통과하는 시간인 셈이다. 그것은 7회가 바로 타이밍이다. 7회 쯤 되면 수비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공격선수들도 대개는 그때까지 서너번은 타석에 들고 있기 때문에 상대투수의 구질_球質도 파악했을 것이고 또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게임의 분위기에 완전히 젖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7회쯤 되면 지금껏 이끌리던 팀이 파란의 역전극을 펼치기도 하고 또는 팽팽하던 게임에서는 우열이 판가름 나는 수가 많은 것이다.

통계적으로 보아도 안타를 가장 많이 때리는 이닝은 1회와 7회인데 1회에는 상대방 투수의 사점을 추궁한 결과이고 7회에는 공격측이 사점을 통과하여 게임의 분위기를 읽어냈기 때문이리라.


7회가, 행운에 의한 결과로 부각되는 이닝이 아니라는 전혀 합리적인 근거가 또 있다. 그것은 상대방 투수가 막강하여 1회부터 6회까지 매 이닝 멍석말이로 삼자범퇴를 기록하였다 하더라도 7회 공격시에는 1번타자부터 공격에 임할 수 있다는 어드밴티지가 찾아든다는 것이다. 한층 고조된 기분으로 전원 원기백배 1번타자부터 정돈된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는 7회의 공격은 우연을 미화시킨 행운이라는 지적보다는 필연을 대입시킨 당위_當爲라는 해석이 더욱 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1922년 10월 7일 뉴욕에서 벌어진 제20회 월드 시리즈는 전년에 이어 또 다시 뉴욕팀끼리의 대결이었다. 아메리칸 리그의 양키스팀과 내셔널 리그의 자이언츠팀이 각각 리그 페넌트 레이스에서 또다시 우승. 천하의 패자를 가리는 결승 일곱판 승부를 가리게 된 것이다. 바로 이해부터는 또 7번 승부 4선승제가 되었고 1921년엔 9번승부 5선승제였다. 뉴욕팀끼리의 대결이라서 당시 뉴욕시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폴로 그라운드 스탠드는 작년에도 그랬지만 내려앉을 것 같았고 운동장 외곽 벽은 터져버릴 것만 같은 엄청난 대관중이 몰려들었다. 3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폴로구장이 이 정도였으니 야구팬들의 열기가 어느 정도라는 것이 실감이 날 것이다. 실상 1919년의 <블랙 삭스 스캔달>(화이트 삭스팀이 돈을 받교 승부를 조작한 사건. 화이트 삭스란 흰 양말이란 뜻인데 흰 양말이 더러워졌다하여 블랙 삭스 스캔달로 명명함) 이후로 미국의 프로야구는 사멸되지 않을까 우려되었을 정도로 후유증이 심각했었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야구부흥의 활력소가 돌연 혜성처럼 나타났으니 그는 바로 전 미국역사를 통하여 어느 위인도 더 그가 한것 만큼 미국인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것으로 공인되는 홈런 왕 베이브 루스였다. 루스를 보려고 그가 소속된 뉴욕 양키스팀의 경기가 벌어지는 야구장은 항상 만원이었다. 1921년 월드 시리즈가 폴로구장에서 벌어져 공전의 대성황을 이루자 양키스팀의 구단주 루퍼트는 1922년 봄에 6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구장 건설을 시작했으니 이것이 <루스가 지은 집>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양키 스타디움>이었다.

1922년 10월, 제20회 월드 시리즈가 개막되었을 당시 양키 스타디움은 한창 공사가 무르익고 있었다. 다음 해 가을에는 완공된 양키 스타디움의 개장경기는 또다시 양키스와 자이안츠의 3년째 월드 시리즈 대결이었는데 제 1전에서 베이브 루스를 보러 모여든 관중은 7만 4천 2백 17명이었고 그날 루스는 양키 스타디움 최초의 홈런을 날렸던 것이다.

폴로구장은 자이언츠팀의 본거지였다. 22년 10월 7일 폴로구장에서의 첫 번 승부는 지난해의 소란을 감안한 웨스팅하우스 전기회사 소속의 WJZ방송국이 최초의 야구중계를 기획하였는데 무리는 아니었다. 라디오 산업방송은 아직 초창기여서 그해 8월 28일 뉴욕 WEAF방송국에서 미국 최초의 CM이 방송되었는데 요금은 1분당 10달러였다. 이런 시대에 야구중계가 시작되었으니 정말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였고 <소란은 필요의 형님>이었다.


WJZ에 의한 최초의 야구중계 방송은 「뉴욕 트리분」에 스포츠칼럼을 기고하던 전설적인 스포츠 라이터 그래니 라이스가 캐스터를 담당했다. 따라서 최초의 야구중계는 아나운서가 참가하지 못했으며 그래니 라이스의 중계를 제3전까지 열심히 들은 아나운서 그라함 맥나미가 제 4전부터 마이크를 빼앗아 쥐었다. 경기가 증계되는 동안 뉴옥 메트로 폴리탄 심장부로부터 반경 3백마일 이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라디오 앞에 달라붙었는데 이처럼 열광적인 월드 시리즈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었다. 월드 시리즈는 파란만장이었다. 예상을 뒤엎고 자이언츠가 양키즈를 4대 0, 그러니까 7번승부에서 먼저 4게임을 스트레이트로 이겨 승부를 끝내버렸기 때문이었다.

게임중계 도중 그래니 라이스는 후세에 길이, 유전될 유명한 말을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럭키 세븐>이었다. 웬일인지 자이언츠팀은 약속이나 한듯 7회에 점수를 올렸기 때문이다. 베이브 루스 - 루 게릭 - 밥 뮤설 - 토니 라제리로 이어지는 양키즈팀의 이른바 <살인타선_Murderers’ Row>도 자이언츠의 7회 공격에 비하면 무색할 정도였다.

이제 이야기의 원위치로 되돌아 가보자. 요는 <럭키 세븐>이란 말은 야구에서 나왔다는 것. 그것은 미국의 스포츠 라이터 그래니가 처음 쓴 말이라는 것. 또 그것은 따져보면 논리적 근가 있는 말이라는 것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이 말을 처음으로 썼던 그래니 라이스조차도 그것을 해명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각주:2] 

글의 출처는 국흥주_鞠興柱씨가 지은 "운명의 9회말"이라는 책입니다. 1979년 6월 1일에 출간된 이 책은 우리나라 야구의 태동기부터 1950년까지 고교야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야구의 역사를 기록해 놓았는데(하긴 당시에는 고교야구 외에는 이렇다할 야구팀이 없었던 시기이기도 하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 야구의 역사적인 기록 - 특히 베이브 루스와 얽힌 - 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방대하고 상세한 자료가 작가의 맛깔나는 글솜씨와 어우러져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접니다^^)도 한 번 손에 잡으면 끝을 볼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책이죠. 야구팬들이라면 꼭 한 번 읽으보실만한 책입니다만, 지금은 절판된지 오래되어 헌책방에서도 찾기 어려울 듯 합니다. 국흥주씨는 이후 이 책의 2부를 쓰신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내놓지 못한 것 같습니다.


  1. 국흥주 저, 운명의 9회말 p223 [본문으로]
  2. 국흥주 저, 운명의 9회말 p 238~24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