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칠레] 메를로, 야누스의 모습을 보여주다 - Santa Alicia Reserva Merlot 2006

까브드맹 2009. 11. 1. 09:33

산타 알리샤 레세르바 메를로 2006

1.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한 예측

와인을 어느 정도 마시다 보면 이제 지역별로 품종별로 맛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측은 크게 빗나가지 않지요. 예를 들어 호주의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이라면, 기본적으로 블랙커런트 향을 위시한 붉은 과일 향, 초콜릿, 박하 향 그리고 바닐라 터치, 맛은 조금 달고 탄닌은 부드럽지만 강건한 편이고.... 대략 이 정도 이미지가 떠오르며 구매한 와인이 어느 정도 이러한 예측과 맞아떨어지느냐가 문제가 되는 겁니다. 고급 와인일 경우 위의 요소가 잘 표현되면서 그 맛과 향의 어울림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저가의 와인일 경우 위의 요소가 중간중간 빠지거나 그 균형이 형편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끔가다 보면 이러한 예측을 벗어나는 와인이 있습니다. 좋건 나쁘건 간에요. 칠레 센트럴 밸리(Central valley)에 있는 마이포 밸리(Maipo Valley)에서 수확한 메를로(Merlot) 100%로 만드는 산타 알리샤 리세르바 메를로의 경우는 좋은 쪽으로 예측을 벗어나는 와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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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와인 시음기

첫 향은 딸기와 체리가 섞인 듯한 부드러운 향이 올라옵니다. 잔을 흔들면 은은한 오크 향이 약간 피어납니다. 첫 모금은 산도가 약간 느껴지는데, 동급의 까베르네 쇼비뇽과 다르게 단맛은 거의 없는 편이고 입안에서 화~하는 스파이시한 느낌이 나옵니다. 메를로 치고는 은근히 탄닌이 있으며 쓴맛이 있습니다. 대개 신대륙의 와이너리들은 까베르네 쇼비뇽-메를로-쉬라즈의 3종류로 단일 품종 와인 시리즈를 만드는 일이 많은데, 그럴 때 메를로는 바디감이 가장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산타알리샤 레세르바의 경우에는 메를로가 오히려 까베르네 쇼비뇽보다 더 강한 느낌을 주는군요. 마치 쉬라즈처럼 느껴지는 풀 바디한 질감에 스파이시하고 매운 느낌이 밀려 들어와 입안이 얼얼해질 지경입니다. 또한, 입안의 여운도 이 정도 급의 와인치고는 매우 깁니다.

오픈한 지 15분이 지난 상황에서도 아직도 처음의 강한 맛이 느껴집니다. 대개의 칠레 저가 와인들이 이 정도 단계에 이르면 부드러워지면서 처음의 강한 맛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하는데, 이 와인은 그렇지 않군요. 그리고 이때쯤 단맛이 살짝 돌기 시작합니다. 전체적으로 약간 매콤하면서 스파이시한 것이 메를로라기보다는 오히려 까르메네르에 가까운 그런 맛입니다.

 

 

오픈 후 40분 정도 지나니 쌉싸래한 맛과 함께 달콤한 담배 향이 묻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건 뭐랄까... 범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 주먹 할 듯한 그런 인상? 메를로라고 우습게 봤다가는 큰코다칠 듯합니다. 향은 점차 찐득하고 달큼한 것이 묻어나는 듯한 말린 자두나 체리 향이 느껴집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얼핏 얼핏 바닐라 향도 섞여 나오네요. 맛은 처음에 비교하면 아주 부드러워졌으나 아직 꺾이지는 않았습니다. 단맛과 쓴맛이 적절히 섞여 있는 느낌이 고기를 무척 당기게 하더군요. 1시간 15분이 지난 시점에서야 맛이 꺾이기 시작하더니 점차 완만하게 가라앉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보통 메를로 품종의 와인이라고 하면 '과일 향이 풍부한 부드러운 와인'이라는 말로 표현되고는 합니다만, 샤토 가쟁(Chateau Gazin)을 드셔보신 분들이라면 메를로의 숨겨진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아실 겁니다. 산타 알리샤 레세르바 메를로 또한 메를로의 또 다른 야누스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와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쯤 시음해보시길 권합니다. 

소고기 스테이크, 소고기 등심, 양고기 등과 어울립니다. 2009년 10월 31일 시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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