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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예술] 샤토 무통 로칠드 와인의 레이블 세계 - 1948 빈티지, 마리 로랑생

까브드맹 2013. 5. 29. 06:00

샤토 무통 로칠드 1948 빈티지 레이블
(이미지 출처 :  http://www.theartistlabels.com/mouton/1948.html)

샤토 무통 로칠드의 1948 빈티지의 레이블 그림을 그린 사람은 프랑스 화가인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입니다. 1883년 10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마리 로랑생은 화가이며 판화가로 생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냈죠. 18살에 세브르(Sèvres)에서 도자기 장식 그림을 공부한 로랑생은 파리로 돌아온 후에 "아카데미에 엄베르(Académie Humbert)"에서 계속 예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때 전공을 유화로 바꾸죠.

20세기 초반 마리 로랑생은 파리의 전위파 예술가 사이에서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이끄는 그룹과 장 메쳉제(Jean Metzinger), 아르베르 그레이즈(Albert Gleizes),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앙리 르 포코니에(Henri le Fauconnier),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같은 이들이 관여한 "황금 분할 그룹(Section d'Or)"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독립 예술가 협회전(Salon des Indépendants, 1910-1911)"과 "가을 전시회(the Salon d'Automne, 1911-1912)"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죠. 

그녀는 시인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와 연애했고, 그래서 종종 그의 "뮤즈(muse)"로 인정받곤 했습니다. 또한 유명한 레즈비언이었던 미국인인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Natalie Clifford Barney)의 살롱과 중요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결혼은 독일 출신의 오토 폰 뷔첸 남작(Baron Otto von Waëtjen)과 했고, 이로 인해 프랑스 시민권을 상실했죠. 그래서 1차 세계 대전이 계속되는 동안 안전을 위해 남편과 함께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으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로랑생 부부는 독일 뒤셀도르프(Düsseldorf)에서 짧은 기간 함께 살았지만, 1920년에 이혼했고 그녀는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남은 생을 파리에서 보내면서 예술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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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은 유화, 수채화, 소묘, 판화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소냐 딜루네(Sonia Delaunay)와 마리 요로비에프(Marie Vorobieff), 프란시스카 클로젠(Franciska Clausen)와 함께 몇 명 안 되는 여성 입체파 화가였던 마리는 파블로 피카소와 그녀의 절친한 친구였던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영향을 받았죠. 하지만 로랑생은 추상화에 대한 독특한 접근을 시도했고, 여자가 여럿 나오는 그림이나 여성의 초상화 속에서 그러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입체파의 표준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있으며, 파스텔컬러와 곡선을 사용해서 확실히 여성적이며 탐미적인 모습을 추구합니다. 여성적인 시각적 언어의 창조에 대한 로랑생의 고집은 그녀의 작품을 특징 지웠고, 이러한 모습은 그녀가 생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죠. 이것은 입체파의 오만한 남성성에 대한 응답으로 보일 수 있다고 합니다.

마리 로랑생의 작품
(마리 로랑생의 작품.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e/e7/Marie_Laurencin%2C_1913%2C_Le_Bal_ élégant%2C_La_Danse_à _la_campagne..jpg )

2017년에 마리 로랑생의 작품전이 열렸습니다. 관련된 글을 보시려면 아래의 포스트를 클릭하세요.

◯ 마리 로랑생 전 - 구름처럼 퍼지는 그녀의 필치
<참고 자료>
1. 영문 위키피디아 마리 로랑생 항목
2. 애플사우르스님 블로그 포스트 - Marie Laurencin - 마리 로랑생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