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역사

[역사] 10개의 문단으로 구분해본 와인의 역사

까브드맹 2011. 9. 5. 06:00

스페인의 레드 와인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Tempranillowine.jpg)

1. 약 8,000년 전부터 조지아에서 와인 양조 시작 

와인은 맥주와 함께 가장 오래된 술로 알려졌으며 탄생에 관한 두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1) 원숭이 전설

포도가 땅에 떨어져 자연 발효되어 와인이 되었고, 원숭이가 땅에 고인 와인을 먹고 취해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와인을 빚기 시작했다… 는 이야기. 와인 레이블에 원숭이가 종종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전설 때문입니다.

원숭이 와인설을 빗댄 와인 레이블
(이미지 출처 : http://www.winelabeldesign.com/portfolio/images/Monkey-Business_jpg.jpg)

2) 페르시아 왕녀 설

포도를 너무너무 좋아한 페르시아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잘 익은 포도를 저장실에 보관해 두고 일 년 내내 포도를 먹었죠. 그러나 많이 쌓아놓다 보니 위쪽의 포도 무게로 밑에 깔린 포도알이 터졌고 터진 포도에서 흘러나온 즙은 껍질에 붙은 효모에 의해 발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탄산가스가 발생했고 포도 창고에 들어간 노예 몇 명이 가스를 마시고 기절하는 사건이 발생했죠.

이때 왕의 노여움을 산 후궁이 이 사건에 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포도에서 흘러나온 액체가 극약일 거라고 믿었고 죽을 각오로 이걸 마셨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죽지 않고 오히려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되더라는 겁니다. 이걸 본 왕은 포도에서 나온 포도즙이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해서 본격적으로 이 신비한 음료를 만들도록 명령했다는 얘기. 하지만 페르시아가 건국하기 전부터 와인이 있었으므로 이 얘기는 단지 전설일 뿐입니다.

3) 고고학적 연구

학자들은 고대 조지아 일대에서 처음 와인을 양조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가을에 수확한 포도를 땅에 묻은 항아리에 보관했는데 포도알이 터지면서 자연스럽게 발효되어서 와인이 생겨났고, 이걸 본 인류가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거로 보고 있죠.

조지아의 크베브리 항아리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b/Georgian_Kvevri.jpg)

2. 인류가 와인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다.

“나는 일꾼들을 위해

매일 소를 잡고 양을 잡았다.

목수들에게는 

실컷 마실 수 있도록 독주, 

붉은 술과 기름, 

흰 술을 내주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中

1)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은 와인 재고와 거래 규약, 방지법을 점토판에 기록했습니다. 

2) 바빌로니아 시대의 일상을 기록한 점토판을 살펴보면 공기 접촉을 막기 위한 아스팔트 사용과 시원하고 온도가 일정한 곳에 와인을 보관하는 방법 등이 개발되었습니다.

3) 창세기 9장, 20절과 21절에는 노아가 대홍수 후에 아라라트산에 정착했을 때, 포도를 심고 와인을 담가 마셨다가 크게 취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4) B.C 2700년경의 이집트 무덤에서 와인을 마셨다는 기록과 함께 와인을 보관한 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벽화를 통해 이때 이미 포도 재배에 격자시렁이 도입된 것을 알 수 있죠.

고데 이집트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를 그린 벽화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C3%84gyptischer_Maler_um_1500_v._Chr._001.jpg)

3. 와인, 유럽의 문턱인 그리스에 들어서다.

1) 각종 유물을 통해 그리스에서는 약 2,500년 전부터 와인을 빚어서 마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호머(Homer)는 오디세이와 일리아드에서 와인에 관해 상세하게 언급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와인으로 외눈박이 거인인 키클롭스를 골탕 먹이는 대목이 유명하죠.

3) 히포크라테스는 "알맞은 시간에 적당한 양의 와인을 마시면 인류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해서 주당들의 변명거리를 만들어줬습니다.

4) 고대 그리스의 병사는 식량으로 하루에 약 2ℓ의 보릿가루, 약 0.5ℓ의 와인, 고기 한 조각을 배급받았습니다.

5) 와인은 올리브와 함께 그리스의 주요한 수출품으로 암포라라는 항아리에 담겨서 지중해 각지로 수출되었죠.

6) 다만 그리스인은 와인을 그대로 마시지 않고 약 5:5의 비율로 물에 타서 마셨습니다. 스트레이트로 그냥 마신다면 당신은 술꾼이나 야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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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로마인, 와인에 홀딱 빠지다.

1) 이탈리아반도의 북쪽에 살던 에트루리아인과 남쪽에 살던 그리스인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에트루리아인은 질 대신 양, 그리스인은 양 대신 질. 다른 문명의 발명품을 배우는 능력이 뛰어났던 로마인은 두 문명으로부터 포도 재배와 와인 재배법을 배운 후 더욱 발전시킵니다.

2) 포도를 품종과 색, 숙성 형태에 따라 구분했고, 포도에 어떤 질병이 있으며 어떤 품종이 어떤 토양에서 가장 잘 자라는지에 관한 연구도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3)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카토(Cato)도 B.C.160년경에 ‘농업론(De agri cultura)’를 저술하면서 포도 재배에 관한 효율적인 방법을 언급할 만큼 포도 농사와 와인 생산은 많은 로마인의 관심사였습니다. 

4)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벌하면서 병사들의 식수 문제를 해결하려고 유럽 각지에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프랑스와 독일 땅에 와인 양조기술이 퍼져나갔죠. 

5) 와인 덕후들이 등장합니다. 네로 시대의 집정관인 페트로니우스도 유명한 와인 마니아였습니다. 

6) AD 100년경이 되면 프랑스, 영국, 독일 등으로 이탈리아 와인을 수출합니다.

로마의 와인 수출. 암포라와 오크통을 함께 사용하던 시기의 부조
(로마의 와인 수출. 암포라와 오크통을 함께 사용하던 시기의 부조인 모양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Commerce_du_vin_sur_la_Durance_%28%C3%A9poque_gallo-romaine%29.png)

7) AD 2세기경에 오크통이 나와서 토기와 가죽 부대를 대신합니다. 오크통은 토기보다 가볍고 가죽 부대보다 보관하기 쉬워서 와인 운송과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납니다.

5. 로마는 망했지만 와인은 살아남다.

1) 로마가 망하면서 와인 산업도 함께 쇠퇴하는 듯했습니다. 게르만인은 맥주를 즐겨 마셨거든요.

2) 하지만 와인은 교회 성찬식에 꼭 필요했기에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게르만 귀족들도 무역을 통해 이미 와인 맛에 길들어져 있었습니다.

3) 그 후 십자군 전쟁과 수도원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와인 산업이 더욱 발전합니다.

와인 테이스팅을 하는 13세기의 수도승
(와인 테이스팅을 하는 13세기의 수도승.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Monk_tasting_wine_from_a_barrel.jpg)

4) 수도원은 교회 의식에 필요한 와인을 충당하고 남은 와인을 판매했고 수입이 대단했답니다. 와인 뿐만 아니라 맥주도 수도원의 판매 아이템이었습니다. 포도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은 와인, 그렇지 않은 곳은 맥주.

수도원에서 양조, 판매하는 트라피스트(Trappist) 맥주들
(수도원에서 양조, 판매하는 트라피스트(Trappist) 맥주들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De_zeven_trappisten.jpg)

6. 세계로 뻗어 나가는 유럽인, 함께 퍼져나간 와인

영원불멸이라고까지 말하는 마데이라 와인
(영원불멸이라고까지 말하는 마데이라 와인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Justino_Henriques_Madeira_wine,_colheita_1996.JPG)

1) 14~15세기 유럽인은 새로운 대륙을 탐험하고 침략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그들의 식생활과 종교의식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와인도 이때 멕시코와 브라질 등의 남미 지역과 남아프리카까지 전해집니다.

2) 15~17세기 대항해시대에 서양 세력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와인은 이제 미국, 호주, 칠레, 남아프리카 등지로 퍼져 나갑니다. 다만 아직은 지배층의 음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품질도 조잡했죠.

3) 와인을 보관하는 용기가 여전히 오크통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와인은 적도를 지나면서 상했습니다. 이 문제는 식민지로 와인을 수출할 때 어려움을 가져왔고, 각지에서 포도원을 가꾸려는 시도를 불러왔습니다. 아울러 브랜디를 첨가해서 만드는 강화 와인도 발달합니다.

7. 과학의 발달이 와인의 발전을 가져오다.

1)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는 외부 공기를 거의 차단해서 와인 보관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려줬습니다. 이로 인해 장기 숙성을 거친 다음 와인의 맛과 향이 완성되는 “뱅 드 가르드(Vin de Garde)"라는 장기숙성용 와인이 탄생합니다. 그 이전에는 와인의 보관 기간이 기껏해야 2~3년 정도였죠.

2) 와인에 탄산가스가 발생하는 현상은 로마 시대부터 관찰되었지만, 이를 활용한 와인을 만들 방법이 없었습니다. 튼튼한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가 나오면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 수 있게 되었죠. 

3) 파스퇴르 같은 학자의 노력으로 미생물학이 발전하면서 와인이 산화하고 변질하는 이유가 밝혀집니다. 저온살균법이 발명되었고 숙성 과정에서 와인이 식초로 변하는 일이 크게 줄어듭니다.

4) 세계 각지의 토양에 맞는 포도를 재배하면서 신세계 와인의 품질이 조금씩 좋아졌고 담배와 커피, 초콜릿, 차 같은 다른 기호 식품과 경쟁하기 시작합니다.

5) 순수효모 배양, 살균, 숙성에 이르는 제조 방법의 개선으로 와인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비교적 싼 값에 좋은 와인이 공급됩니다. 물론 부자가 마시는 와인과 서민이 마시는 와인은 가격 차이가 컸죠.

8. 대재앙, 필록세라의 난 + α

필록세라의 스케치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Dactylosphaera_vitifolii_1_meyers_1888_v13_p621.png)

1) 19세기 말에 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던 '필록세라(Phylloxera, 포도뿌리혹벌레)'가 유럽으로 넘어와 각지의 포도밭을 강타합니다.

2) 필록세라는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 각지의 포도나무를 전멸시켰습니다. 여기에 '밀듀(Mildew)’라 부르는 가루곰팡이와 노균병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나마 살아남은 포도밭을 공격합니다.

3) 모래가 많이 섞인 토양 덕분에 필록세라의 공격을 피한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남부, 스페인 남부의 와인 생산지는 전 유럽에 와인을 공급하는 와인 공장 역할을 했지만, 물량 위주의 생산 때문에 품질은 전혀 신경 쓰지 못합니다. 훗날 와인 산업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이 지역의 와인은 싸구려 품질 때문에 외면받습니다.

4) 와인 생산자들은 미국 포도나무의 뿌리 부분에 유럽 포도나무의 줄기 부분을 접붙여서 필록세라의 피해를 막아내고, 보르도 믹스춰(Bordeaux mixture) 같은 살균제를 개발해서 밀듀의 피해를 줄여나갑니다. 

5) 하지만 세계 1, 2차 대전이 연이어 터지면서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9.  AOC, DOC... 와인법의 정비

1) 필록세라와 밀듀 같은 포도 질병과 전쟁으로 인해 와인 품질이 형편없어지자 소비자의 관심은 다른 술로 옮겨갑니다. 이때 시기적절하게 다단식 증류기가 발명되어 이걸로 만드는 ‘진(Gin)’과 '압생트(Absinthe)’ 같은 스피리츠(Spirits)들이 저렴한 가격과 깔끔한 품질로 인기를 끕니다.

2) 국내 와인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고 느낀 프랑스 정부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품종과 지정된 포도 재배법과 양조법을 준수한 와인에만 생산지의 명칭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지역명칭통제법(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AOC)"을 제정해 최소한의 와인 품질을 국가에서 보증합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와인은 믿을 수 있는 와인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습니다.

AOC 로고
(이미지 출처 : http://www.thefrenchcellar.sg/wp-content/uploads/2015/08/AOC_winemag.png)

3)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유럽의 다른 국가도 프랑스의 AOC를 본떠서 자국의 상황에 맞춘 와인법을 제정합니다. 이로써 붕괴 일보 직전이었던 유럽 와인 산업은 부흥하죠.

10. 신대륙 와인의 도전, 더 나은 미래로의 한 걸음

1) 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새로운 와인 양조 기술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 무더운 지역에서도 신선한 과일 풍미가 나는 와인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온도 조절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조

• 탄닌의 양을 조절해서 와인의 맛을 좀 더 섬세하게 만들어주는 신형 압착기

• 포도에 공급하는 수분의 양을 자동으로 조절해서 당분과 산도가 충실한 포도가 자라도록 해주는 센서

• 저렴한 가격에 오크 풍미가 풍부한 와인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오크 칩의 사용. 

• 소비자가 와인의 정보를 쉽게 파악하도록 해주는 품종 표시 위주의 레이블.

입니다. 이로 인해 신대륙 와인은 유럽에 못지않은 품질과 인기를 가집니다.

2) 1976년에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프랑스와 미국의 와인을 평가한 "파리의 심판"은 신대륙 와인의 우수한 품질을 보여준 사건으로 캘리포니아 와인들이 프랑스 와인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죠. 미국과 프랑스의 와인은 30년 뒤에 다시 맞붙었지만, 이번에도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30년 전의 평가가 틀리지 않은 것을 입증했습니다.

파리의 심판에 나왔던 와인들
(파리의 심판에 나왔던 와인들.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Producers_from_Judgement_of_Paris_wine_tasting.jpg)

3) 한편,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도 신대륙 와인에 뒤지지 않도록 와인 품질의 향상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래식 기구를 버리고 신형 기계 장비를 도입하는 한편 수확량을 더욱 철저히 통제해서 포도 품질을 향상하고 새로운 포도 재배법과 와인 양조법을 받아들여 와인 생산에 반영하죠. 한편으로는 더욱 자연 친화적인 와인을 만들기 위해 유기농 재배와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4) 이처럼 와인 업계의 경쟁으로 와인 품질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 등장하는 와인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 해피 엔딩~ 해피 엔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