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전통주] 이몽룡이 춘향과 이별할 때 마셨다는 술 - 감홍로(甘紅露)

까브드맹 2024. 1. 14. 07:00

감홍로
<이미지 출처 : https://www.kocis.go.kr/koreanet/view.do?seq=1042320>

감홍로는 한국의 전통 약소주 중 하나로 감(甘)은 단맛을, 홍(紅)은 붉은 색을, 로(露)는 이슬(즉, 증류주)이라는 뜻입니다. 본래 평양을 대표하는 소주로 옛 문헌 속에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1. 감홍로의 역사

18세기 실학자였던 유득공의 시 '애련정'에는 "곳곳마다 감홍로니, 이 마을이 곧 취한 마을일세(滿滿甘紅露/玆鄕是醉鄕)"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1800년대 초에 저술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평양 3대 명물로 냉면, 골동반, 감홍로를 언급하고, '중국에 오향로주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평양의 감홍로가 있다’라면서 조선 4대 명주로 평양 감홍로, 한산 소곡주((韓山 素麯酒), 홍천 백주, 여산 호산춘(礪山 壺山春)을 들었습니다. 1849년에 완성된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평안도 지방의 알아주는 술로 감홍로와 벽향주가 있다고 적혀있죠. 개화기 이후엔 최남선이 조선 3대 명주로 이강고(梨薑膏), 죽력고(竹瀝膏)와 함께 감홍로를 꼽았습니다.

감홍로는 지식인 층에게만 유명한 술이 아니었습니다. <춘향전>에선 이몽룡과 춘향이가 이별할 때 향단이에게 이별주로 감홍로를 가져오라하는 대목이 나오고, <별주부전>에서는 토끼의 간을 탐내는 자라가 용궁으로 가자고 토끼를 꼬시면서 "토선생, 용궁에 가면 감홍로도 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렇듯 감홍로는 조선에서 상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알아주는 당대 최고의 명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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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이 된 후 이병일 옹이 평양에 평천양조장을 세웠고, 아들인 이경찬 옹(1915~1993)은 문배술과 함께 감홍로를 생산하다가 6.25 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로써 감홍로의 맥은 대한민국에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감홍로는 1965년 시행된 양곡관리법 때문에 한동안 생산이 중단되었으나 1988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민속주 제조가 허가되자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경찬 옹은 둘째 아들 이기양 명인(대한민국식품명인 제5호)에게 감홍로를 전수했으나 이기양 명인이 2000년에 사망하자 막내 딸인 이기숙 명인(대한민국식품명인 제43호)에게 감홍로 제조법을 전했습니다. 혼인이 늦었던 이기숙씨는 이경찬 옹이 문화재 지정을 받기 위한 시험주를 만들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서 술을 빚었습니다. 이때 이경찬 옹은 문배술과 감홍로 중 어느 것을 문화재로 신청할까 고심하다가 약재가 들어가지 않은 문배술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홍로는 19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선정한 8대 민속주에 들어가진 못했습니다.

 

 

2. 감홍로 양조법

통밀을 멧돌에 갈아 쌀과 싸래기 삶은 물을 넣고 반죽한 다음 한달 동안 발효해서 누룩을 만듭니다. 멥쌀 고두밥에 좁쌀과 누룩, 물을 넣고 15일간 발효하여 술을 빚은 다음 두 번에 걸쳐 증류합니다.

증류된 술에 장에 좋다는 용안육(龍眼肉), 정기를 북돋아준다는 정향(丁香), 비타민이 풍부한 진피(陳皮), 향긋한 계피(桂皮), 활달한 생강, 달콤한 감초(甘草), 붉은 지초(芝草)의 7가지 약재를 넣고 그 성분을 침출해서 완성합니다. 그래서 감홍로는 한약 향을 풍깁니다. 원래는 풍을 막아준다는 방풍(防風)도 들어가야 하지만, 방풍이 법률상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지금은 넣지 않습니다.

감홍로는 술 색이 붉은 홍주에 속합니다. 홍주에 속하는 술은 증류주로 진도홍주, 감홍로, 관서감홍로, 내국홍로방이 있고 발효주로 천태홍주방, 건창홍주방, 홍국주가 있습니다. 술색을 붉게 내는 방법으로는 지초를 쓰거나, 붉은 누룩인 홍국을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홍국을 써서 만드는 전통주는 사라졌고, 지금은 지초를 사용하는 진도홍주와 감홍로만 남았습니다. 지초를 술에 오래 담궈 두면 술맛을 해치기 요즘의 감홍로에는 지초를 적게 넣고 있으며, 붉은 색도 많이 줄어들어 황색에 가깝습니다.

이경찬 옹은 ‘인간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술과 마약이 있는데, 마약은 만들 수 없으니 술을 만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또한 모든 술에는 독이 있어서 독 기운이 적은 술을 빚어야 하는데 그게 감홍로라고 했답니다. 감홍로는 들어가는 한약재의 약리작용으로 혈액순환을 도와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항산화작용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식물본초(食物本草)>에는 감홍로를 구급약으로 상비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3. 감홍로 마시는 법

감홍로는 원주를 조금씩 반주 형태로 마시는 것이 좋지만 40도라는 높은 도수와 한약 향이 거슬리면 얼음을 넣어서 온더락으로 마시거나 뜨거운 물로 희석해서 마셔도 좋습니다. 토닉워터나 오렌지 주스 등 다양한 과일 주스와 섞어도 잘 맞습니다.

감홍로는 육류와 잘 어울리며 회 같은 날음식은 맞지 않습니다. 육포와 찜, 황태포구이와 녹두전 같은 음식에도 잘 어울립니다.

단맛이 나는 감홍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과 함께 먹어도 좋습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 커피 대신 감홍로를 올린 감홍로 아포가토는 색다른 즐거움이 됩니다. 호두 아이스크림이나 요거트와 함께 먹어도 좋습니다.

4. 에피소드

조선시대의 전통주는 술 이름은 같아도 지역마다 가문마다 제조법이 다른 것이 많았습니다. 국화를 사용하는 국화주나 진달래를 사용하는 두견주(杜鵑酒)와 달리 감홍로처럼 명칭에 재료가 드러나지 않는 술은 차이가 더욱 컸습니다. 감홍로도 문헌에 따라 간단하게 꿀과 자초(紫草=지초)만 사용하거나, 자초 대신 홍국을 쓰거나, 엿으로 단맛을 내는 등 다양한 제조법이 전해집니다.

백종원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백스피릿 3화에는 감홍로가 면천두견주 등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2014년 국제 슬로푸드의 <맛의 방주>에 감홍로가 선정되었습니다.

 

 

2014년 개정된 조주기능사의 40개 칵테일 레시피 중 감홍로가 들어가는 칵테일 ‘힐링’이 포함되었습니다. 힐링의 레시피는 아래와 같습니다.

① 먼저 칵테일 글라스에 얼음을 담아 차갑게 합니다.

② 세이커에 얼음과 함께 감홍로 1+1/2 oz, 베네딕틴 1/3 oz, 크림 드 카시스 1/3 oz, 스위트&사워 믹스 1 oz를 넣고 흔들어 줍니다.

③ 글라스의 얼음을 버리고 혼합물을 부어줍니다.

④ 레몬 껍질로 장식해줍니다.

감홍로는 인사동의 전통주갤러리와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지에서 구매할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