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전통주] 달콤한 배 향 그윽한 전통 증류주 - 문배술

까브드맹 2024. 1. 13. 07:00

문배술
<이미지 출처 : https://ko.m.wikipedia.org/wiki/%EB%AC%B8%EB%B0%B0%EC%A3%BC>

국가무형문화재 제86-1호로 지정된 문배술은 우리나라의 전통 증류식 소주 중 하나입니다. 문배는 우리나라의 토종 돌배로 문배술은 술에서 문배 향이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그러나 술 재료로 문배가 들어가진 않습니다.

1. 문배술의 역사

문배술은 원래 평양 지역의 향토주입니다. 고려 시대에 어느 가문이 조상 대대로 전해오던 제조법대로 문배술을 빚어서 태조 왕건에게 진상했고, 왕건은 매우 기뻐하면서 높은 벼슬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우리나라에 증류법이 전해진 건 몽골 침략 때이므로 글자 그대로 전설이거나 같은 이름을 가진 발효주로 추정됩니다.

일제강점기의 전통주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문배술은 가문 내에서 자손들에게 제조 비법을 전수하며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해방 이후 1대 박씨 할머니의 뒤를 이은 2대 이병일 옹이 평양 근처에 평촌양조장을 설립하여 문배술을 생산했고, 3대 이경찬 옹(1915~1993)은 연생산량 3만 석, 대지 7,000평, 건평 1,000평 종업원 수 80여 명의 규모로 양조장을 확장했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이경찬 옹은 남쪽으로 내려왔고, 종전 후 가업을 잇기 위해 서울에 양조장을 설립해 ‘거북선’이라는 제품명으로 문배술을 다시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희석식 소주와 맥주, 막걸리를 제외한 곡식으로 만드는 술의 생산이 금지되자 문배술은 20여 년간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게 되자 정부는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당시까지 밀주(密酒) 형태로 이어지던 민속주 중 8개를 선정하여 생산과 판매를 허가했습니다. 이때 문배술도 서울을 대표하는 술로 선정되었고, 이경찬 옹은 1986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86-가호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경찬 옹은 1990년에 정식으로 전통주 제조 허가를 받아서 서울 연희동에 문배술 양조장을 열었고, 이로써 문배술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경찬 옹은 애주가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고 1980년대에 이경찬 옹의 손길이 닿은 문배술의 맛이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합니다.

문배술은 1990년대부터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김포시, 정확히는 구 통진군 지역인 통진읍 서암리에서 생산됩니다. 1995년에는 이경찬 옹의 아들인 4대 이기춘 문배술양조원 대표가 전통식품명인 제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 양조법

우리나라 전통주의 주재료는 쌀이지만, 문배술은 쌀을 전혀 쓰지 않고 누룩을 만들기 위한 밀과 수수, 좁쌀만으로 만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마도 벼농사가 맞지 않아 쌀이 부족한 평안도 지방에서 탄생한 술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문배술은 찰수수와 메조에 누룩을 넣고 발효해서 밑술을 만든 후에 증류해서 만듭니다. 제조 과정에서 곡류와 누룩을 제외한 일체의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으며, 진(Jin)처럼 향을 첨가하는 과정도 거치지 않습니다. 수수가 주재료인 문배술은 중국 고량주와 닮은 흰 과일 향이 나오며 이것이 문배 향으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증류 과정이 끝나면 술을 안정시키기 위해 보통 6개월∼1년 동안 숙성하며 저장합니다. 증류와 숙성이 끝난 문배술의 알코올 도수는 48.1%에 달하므로 장기간 저장이 가능하며, 출시할 때는 물을 타서 알코올 도수를 40% 이하로 낮춥니다. 40%의 알코올 도수는 전 세계적으로 위스키 같은 증류주에 적용되는 도수로 40% 일 때 알코올이 몸에 가장 잘 흡수되고 해(害)도 적으며 최상의 술맛을 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속 증류기를 거쳐 나온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가 90%에 달하지만 판매되는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가 대부분 40%인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문배술은 원래 평양 대동강 유역의 석회암층에서 솟아나는 지하수를 사용해서 만들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조되는 문배술은 화강암층의 물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만찬주로 문배술이 나오자 김정일은 "문배술은 평양 주암산 물로 만들어야 제맛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3. 어울리는 음식

이경찬 옹이 설립한 문배주양조원에서는 다양한 문배술을 생산하지만, 알코올 도수로 구분하면 40도와 23/25도로 나뉩니다.

문배술 40도는 배와 사과, 과실 꽃 같은 달콤한 향이 주로 나오며 카르다몸, 정향, 팔각 같은 향신료 향이 뒤를 받쳐줍니다. 한 모금 마시면 강한 알코올 기운과 함께 뜨거운 생강과 구수하고 담백한 수수 풍미가 퍼집니다. 이런 맛 덕분에 팔각 같은 향신료를 주로 쓰는 중국 음식, 특히 냉채류와 궁합이 맞습니다. 문배술은 출신에 어울리게 북한 음식과 끈끈한 애착 관계가 있으며 차갑게 식힌 제육과 매콤한 홍어무침, 대창 순대 같은 음식에 잘 어울립니다. 넓게 보면 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살린 요리보다 복합적인 재료와 향을 쓴 요리가 잘 어울립니다.

알코올도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문배술 23/25도는 40도처럼 단맛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과실보다 꽃에 가까운 향이 은은하며 담백하고 구수한 수수 향이 느껴지지만 지배적이진 않습니다. 그래서 문배술 23/25도는 어울리는 음식의 폭이 넓습니다. 담백한 흰 살 생선과 기름기가 도는 방어나 참치 뱃살, 미네랄 풍미가 도는 굴, 새조개, 홍어가 문배술 23/25도와 잘 어울립니다. 젓갈을 많이 쓰는 남도 음식도 궁합이 좋습니다. 육류로는 철분이 느껴지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잘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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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에피소드

위에 언급했듯이 2000 남북정상회담에서 만찬주로 쓰였고,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만찬주로 나왔습니다. 2004년 남북 장성급회담에서는 북측 대표단이 점심 반주로 문배술을 제안하며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되었는데, 당시 북측 단장을 맡았던 안익산 단장이 ‘남측의 문배술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여 남에 오면 문배술을 맛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왕에게 진상했던 술로 알려진 문배술은 현대에도 그 전통을 이어받아서 귀한 외국인 손님의 환영연에는 문배술을 대접하고 있습니다. 문배술을 대접받은 대표적인 외국 귀빈으로는 빌 클린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을 들 수 있죠.

문배술은 군납 제품이 있어서 PX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문배주양조원은 2010년대 들어서 현대적인 디자인의 투명 유리병 제품을 내놓는 등 젊은 층을 공략하는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병에 담기 전에 인공적으로 술에 산소를 주입하는 공법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디캔팅을 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술맛이 더 부드러워지지만, 장기보존 시 변질에 취약해진다는 단점도 지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