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65, 와인 이름과 마케팅
1865는 몬테스 알파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좋은 칠레 와인입니다. 2008년에 몬테스 알파가 전 종류를 다 합쳐서 1년에 약 80만 병, 1865가 전 종류를 다 합쳐서 1년에 약 30만 병 가량 팔렸다고 합니다.
"18홀을 65타로 끝내라는 골프 와인."
"18살부터 65세까지 마실 수 있는 와인."
1865의 이름에 관한 풀이들입니다. 첫 번째 풀이는 수입사인 금양인터내셔널의 스토리텔링 마케팅에서 나온 것으로 골프의 18홀을 65타에 끝내라는 것입니다. 18홀에서 전부 파(Par, 각 홀에 지정된 타수)를 기록하면 72타가 됩니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바라 마지않는 싱글 플레이어, 정확히는 "싱글-디지트 핸디캐퍼(single-digit handicapper)"는 72타에서 9 오버 이하, 즉 81타 이하를 치는 골퍼를 말하죠. 따라서 65타는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꿈의 점수인 겁니다. 1865를 마시고 65타로 경기를 끝내라는 것은 골퍼에게 엄청난 덕담이자 축복이 되는 거죠.
금양인터내셔널은 비즈니스 골프를 많이 치는 안양베네스트 등의 클럽하우스에서 일하는 소믈리에와 종업원들에게 집중적으로 1865 마케팅을 펼치면서 위의 스토리를 알려줬습니다. 소믈리에와 종업원들은 클럽 하우스를 찾는 고객들에게 ‘18홀을 65타로 치라’는 행운의 뜻으로 1865를 권했죠. 이 전략은 큰 효과를 발휘해서 골프 스코어와 브랜드를 연결한 스토리가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골프 와인'을 구할 수 있냐는 문의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또 주요 대기업의 CEO 사이에 1865 마니아가 생겨나서 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로 스토리 텔링 마케팅의 살아있는 표본 같은 사례입니다.
두 번째 풀이는 신세계 이마트가 자체 상표(PB)의 신상품을 발표했을 때, 건배 제의 요청이 들어오자 당시 이경상 이마트 대표가 평소 즐겨 마시는 1865를 주문하면서 했던 얘기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당시 이경상 대표는 “18홀을 65타로 치라는 의미로 레이블을 읽기도 합니다만, 18세부터 65세까지 누구나 PB 고객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1865를 마시고 싶습니다.”라고 했고, 이 얘기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이죠. 그러면 과연 1865라는 이름에 대한 진실은? 그냥 1865를 생산하는 산 페드로 와이너리의 설립 연도일 뿐입니다.
위에 나온 성공 요인 외에 1865는 여러모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호응할 만한 요소를 가졌습니다. 우선 향과 맛이 뛰어나면서 우리나라 사람의 기호에 잘 맞는 편입니다. 진하지만 프랑스 와인처럼 탄닌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지 않죠. 신맛도 적고 당도도 적당합니다. 향은 달콤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와인을 처음 마셔보는 사람도 편하게 마실 수 있고, 어느 정도 마셔본 사람도 만족할 수 있는 와인이죠.
두 번째는 외우기 쉬운 이름입니다. 우리에게 와인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와인의 긴 이름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와인이어도 이름이 길면 판매가 안 되는 일이 많죠. 예를 들어 '샤토 피숑 롱그빌 콩테스 드 라랑드(Chateau Pichon Longueville Comtesse de Lalande)' 같은 와인은 아무리 맛이 뛰어나도 우리나라에서 많이 팔리기엔 애당초 그른 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와인 샵에서 사려 해도 긴 이름이 도저히 기억 안 나고, 이름이 연상될 만한 다른 요소도 없거든요. 하지만 맛과 향이 좋은데 이름도 간단하면? 그 와인은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표적인 와인이 '샤토 딸보(Chateau Talbot)' 죠.
히딩크가 월드컵 8강전에서 이긴 후에 마신 와인이라고 해서 크게 히트 친 샤토 딸보는 그전에도 외우기 쉬운 이름 덕에 잘 팔리던 와인이었습니다. 잘 팔리던 와인이 월드컵과 히딩크 때문에 더욱더 잘 팔리게 된 것일 뿐이죠. 과연 히딩크가 "샤토 피숑 롱그빌 콩테스 드 라랑드"를 마셨다면 샤토 딸보만큼 잘 팔렸을까요? 사람들이 와인 이름 외우려다 머리 아파서 구매를 포기했을 거라는데, 제 INAO 와인잔 한 개를 걸겠습니다. 그런데 히딩크가 휴식하면서 마실 와인으로 샤토 딸보를 고른 게 아니라 와인 수입사에서 쉴 때 마시라고 샤토 딸보를 갖다 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수입사의 마케팅 담당자도 긴 이름을 외우기 싫어하는 우리나라 사람의 성향을 잘 파악했던 것이죠. 1865도 무척 외우기 쉬운 이름입니다. '일팔육오', 간단하죠?
마지막으로 묵직하고 있어 보이는 병 모양입니다. 와인을 음식과 함께 하는 알코올성 음료라기보다 상류층의 아이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병 디자인은 와인 구매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같은 가격이라면 좀 더 커 보이는 병을 사용하거나 화려하면서 품격 있어 보이는 레이블이 붙은 와인이 더 많이 팔리죠. 그런 면에서 1865는 검은색에 묵직한 형태여서 국내에선 소위 먹히는 디자인인 겁니다. 이처럼 1865는
•맛과 향
•이름
•병 디자인
의 세 요소가 한국인의 취향과 맞았기에 히트 상품이 된 것이라고 봅니다.
2. 비냐 산 페드로 1865 싱글 빈야드 까베르네
칠레 중부 센트럴 밸리 리젼의 마이포 밸리(Maipo Valley)에서 기른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100%으로 만든 1865 까베르네 소비뇽은 가운데가 보라색, 주변은 검붉은 빛입니다. 개봉해서 잔에 따르면 매우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나는데, 마치 "버터를 발라 구운 토스트 향", "버터를 발라 볶은 아몬드 향", "버터를 발라 튀긴 팝콘의 향" 같습니다. 일단 버터의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향을 지배합니다. 보통 버터 향은 오크 숙성한 샤도네이 와인에서 많이 맡을 수 있는 향으로 미국과 신세계 샤도네이 와인에서 종종 맡을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샤르도네 와인 중에서도 버터 향이 아주 풍부한 것이 있죠.
레드 와인은 오크 숙성하면 삼나무 향이나 초콜릿과 박하 향을 맡을 수 있는데, 1865 까베르네 소비뇽도 초콜릿 향을 맡을 수 있지만, 역시 가장 강하게 나오는 향은 버터 향입니다. 이렇게 버터 넣고 튀긴 팝콘 같은 향이 강해서 마치 극장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추가적인 향으로 레드 체리 같은 붉은 과일 향과 모카커피, 초콜릿, 바닐라, 오크 향이 섞여 나옵니다. 진하고 부드러운 단맛에 살짝 신맛이 함께 하며 마시고 난 후엔 약한 떫은맛과 살짝 쓴맛이 입안을 자극합니다. 목에서 스파이시한 자극을 주는 여운은 무척 길고 강하며 기분 좋은 느낌과 함께 퍼져나갑니다.
불고기와 양념갈비, 비프스튜처럼 풍미가 진한 고기 요리와 잘 맞습니다. 그냥 마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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