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와인의 향기
와인 향을 맡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향이 날 때가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에서 동치미 냄새가 난다던가, 보졸레 누보에서 버터 스카치 캔디향을 맡는다던가 하는 일이 있죠. 향이란 결국 결합된 화학 분자가 코 안의 감각기관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라고 보면 포도와 오크통의 다양한 화학분자가 어떻게 결합했느냐에 따라 와인 향은 수천가지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일반인은 비슷한 향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사실 다른 향이지만 같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훈련을 거친 소믈리에들은 와인의 변화에 따라 나오는 다양한 향을 집어낼 수 있죠. 어느 쪽이든 와인 애호가로서 다양하고 독특한 와인의 향과 맛은 와인을 마시면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입니다.
2. 까보 뒤 록(Caveau du Roc)
까보 뒤 록은 2007은 보르도(Bordeaux)의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바탕으로 한 보르도 블렌딩 AOC 와인입니다. 가격은 15,000원 정도로 국내에서 살 수 있는 프랑스 와인 중에선 비교적 낮은 가격이지만, 향과 맛이 꽤 재미있습니다. 처음 느껴지는 향은 콩 비린내, 혹은 메주 냄새와 비슷합니다. 효모에서 유래한 냄새 같은데 은근히 토속적인 느낌이더군요. 슬슬 허브 향과 풀 비린내가 퍼져 나오는데, 묘하게도 1970년대의 여름철 바닷가에서 볼 수 있었던 시커멓고 커다란 고무타이어 튜브 냄새를 맡았습니다. 저렴한 호주 쉬라즈 와인에서 고무 냄새를 맡은 일은 종종 있지만, 보르도 와인에서 이런 냄새를 맡아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덕분에 어렸을 적 바닷가의 추억이 떠오르더군요.
한 모금 마셔보면 비슷한 가격의 프랑스 와인에서 종종 느껴지는 정도의 신맛이 나고, 무게감은 별로 없습니다. 탄닌은 떫은 맛이 별로 없어서 가볍게 마실 수 있죠. 달지 않고 드라이하며 후반부에 쓴맛이 약간 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무게감이 적은 것치고 여운은 상당히 강하고 깁니다.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마셔보면 산도가 좀 있어서 그렇지 매우 마시기 편한 와인이 됩니다. 제법 강한 산미가 마치 이탈리아 와인 같은 느낌을 주지만, 꽤 편안하면서 전혀 떫지 않고 부드러운 맛을 보여주죠.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마시면 향도 맛도 나아지는 스타일입니다.
소고기 및 양고기 요리, 갈비나 불고기 같은 한식 고기 요리, 치즈를 많이 올린 피자 등과 잘 어울리는 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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