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칠레] 편견의 틀을 깨자 - Gato Negro Cabernet Sauvignon 2008

까브드맹 2009. 10. 24. 09:03

가또 네그로 까베르네 소비뇽 2008

1. 와인과 편견

편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죠. 와인을 마실 때도 그렇습니다. '비싸서 좋을 거야' 혹은 '○○ 품종은 내 입맛에 절대 안 맞아' 혹은 '프랑스 와인은 다 떫더라' 등등... 이런 선입견으로 인해 다양한 와인의 세계를 접하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몇 가지 와인만 고집만 하는 분들을 가끔 보게 되지요.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는 역시 국산 와인인 마주앙' → 대부분의 마주앙은 OEM으로 들여오기 때문에 사실 국산 와인이 아니에요.

'뭐가 와인이야.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는 역시 소주지.' → 삶의 다양성에 따른 즐거움을 스스로 포기하시는 분이십니다. '와인도 좋지만 내 입맛에는 소주가 더 낫더라'라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이렇듯 편견과 선입견을 품게 되면 때로는 상당히 좋은 와인인데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요. 이번에 마신 가또 네그로(검은 고양이) 까베르네 소비뇽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이 와인을 처음 본 것은 꽤 오래전 일입니다. 그런데 첫 대면이 안 좋았죠. 24시 편의점 매대에 놓여 있었고, 칠레 와인이었거든요. 최근에는 칠레 와인을 꽤 마십니다만,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의 와인들이 입맛에 맞아 선호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편의점의 열악한 와인 보관 상태 - 물건의 판매 순환이 늦어 오랫동안 매대에 서 있는 체로 방치되고 24시간 조명을 받는 - 로 인해 도저히 손이 안 가는 와인이었죠. 그러다 보니 그 존재는 알고 있었어도, 마실 생각은 전~혀 안 나는 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가의 쓸만한 칠레 와인을 찾아보자'라는 최근 음주 생각에 따라 마셔보니 이게 의외의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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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또 네그로 까베르네 소비뇽

칠레 센트럴 밸리(Central Valley)의 까베르네 소비뇽 100%로 만드는 가또 네그로 까베르네 소비뇽의 색은 아주 맑고 깨끗한 루비빛입니다. 향은 칠레 저가 와인 치고는 꽤 깨끗한 과일 향을 뿜어냅니다. 물론 칠레 저가 와인에서 종종 맞을 수 있는 비릿한 흙냄새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만, 과일향에 밀려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미미하게 나오지요. 주된 향은 블랙커런트, 체리 향과 달착지근한 감초 향에 약간의 딸기 주스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산도가 적어서 신맛을 싫어하시는 분도 무난히 드실 수 있고요, 첫맛은 달고 끝 맛은 약간 쓴 편입니다. 그리고 살짝살짝 체리 맛도 감지됩니다.

바디는 진하지 않고 와인의 색깔같이 맑고 깨끗한 미디엄 바디이며, 탄닌은 가볍게 느껴질 정도여서 강한 탄닌의 떫은맛을 싫어하시는 분도 즐겁게 드실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다른 저가 와인들이 목구멍으로 와인을 넘기자마자 그 향과 느낌이 사라져 버리는 것과 달리 여운이 3~5초 정도로 상당히 지속하는 편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맛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프랑스 와인처럼 향이 계속 변화하는 복합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않지만, 처음에 느꼈던 향이 더욱 선명해져 가는 것도 인상이 깊더군요.

전반적으로 볼 때 맛과 향이 감동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매우 마시기 편하고 어지간한 음식과 잘 어울릴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기분 좋은 와인이었습니다. 게다가 1만 초반이라는 가격대를 생각한다면 매우 만족할 만한 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 가는 모 와인샵의 점장도 데일리 와인급으로 들여놓으려고 했다가 편의점으로 빠져버리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하더군요. 참고로 가또 네그로 브랜드는 미국의 코카콜라처럼 칠레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칠레 내수 시장 판매 1위의 브랜드이자 70개 이상의 국가에서 리더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소고기 스테이크, 돼지고기, 파스타, 피자 등과 잘 어울립니다. 2009년 10월 23일 시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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