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서사시에 언급된 것처럼 와인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도 잘 알려진 술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대중적인 술은 아니었죠. 왜냐하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기후가 너무 따뜻했고, 흙도 물이 금세 빠지는 충적토라서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이미 보리로 만든 맥주를 즐겨 마셨고 메소포타미아 맥주는 와인보다 훨씬 싸면서도 품질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선 많은 양의 와인을 외부에서 수입했습니다. 수입된 와인은 상류층의 식탁에 올라갔고 제례의식에도 사용되었죠. 기원전 2750년쯤의 유물로 추정되는 우르(Ur)의 점토 서판엔 와인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며, 이로부터 약 750년 뒤엔 와인과 맥주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를 읊조리는 주연의 노래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유물 중엔 왕과 귀족의 연회를 묘사한 부조도 있는데, 학자들은 여기에서 잔으로 마시는 술은 와인, 큰 단지에 담아 대롱으로 마시는 술은 맥주라고 추정합니다. 당시의 맥주는 술지게미를 걸러내지 않아서 대롱을 사용했을 거라는군요.
와인을 만들진 못했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와인 무역은 활발했던 것 같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북쪽과 동쪽의 산간 지방에서 생산한 와인은 수로와 육로를 통해 남부의 도시국가로 수입되었고, 무역로의 거리는 몇백 킬로미터에서 1,600㎞에 달했습니다. 와인 무역은 까다롭고 한계가 있었지만 수익성은 높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점토판 중에는 약속한 고급 와인이 빠진 것을 중개업자에게 따지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 대신 와인을 구매해달라고 요청하는 상인의 편지가 있기도 하죠. 메소포타미아의 와인 무역은 수천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아르메니아와 바빌론 사이에 이루어지던 와인 무역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이걸 통해 당시까지 와인 무역이 계속된 것을 알 수 있죠. 값비싼 수입품인 와인은 부유층과 특권층만 누릴 수 있는 사치였고 평민들은 와인을 거의 마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평민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바로 왕궁에서 일하는 하인들이었죠. 아시리아의 도시였던 님루드(Nimrud)에선 왕족이건 하인이건 상관없이 왕궁에 사는 6,000명 모두에게 와인을 지급했습니다. 배급량은 남성 10명당 하루 1.8ℓ이었고, 특수 기능공에게는 2배의 양을 지급했습니다.
<참고 자료>
1. 로도 필립스 지음, 이은선 옮김,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서울 : 시공사, 2002
2.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