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일반

[기초] 블렌딩 와인에 관하여

까브드맹 2018. 6. 4. 07:00

샤토 달마이약(Chateau d'Armailhac)과 사용하는 세 가지 포도

1. 블렌딩 와인의 대표 지역, 보르도(Bordeaux)

한가지 품종만 쓰지 않고 여러 품종을 섞어서 만드는 와인이 있습니다. 이것은 각 품종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서 좀 더 균형 잡힌 와인을 만들려는 것이죠. 가장 대표적인 블렌딩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하는 레드 와인입니다. 보르도에선 99% 이상의 레드 와인을 여러 품종의 포도를 섞어서 만듭니다. 워낙 유명해서 보르도 블렌딩이란 이름으로도 많이 알려졌는데,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에 메를로(Merlot)와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을 섞는 것이죠.

이렇게 혼합하면 탄닌이 많고 산미가 강한 까베르네 소비뇽은 와인의 구조를 강하게 하고, 당도가 많고 탄닌이 적은 메를로는 와인에 부피감과 부드러움을 주며, 까베르네 프랑은 와인의 풍미를 강화해주죠. 이렇게 해서 풀 바디하면서 부드럽고 풍미가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만약 장기 숙성용 와인을 만들고 싶으면 까베르네 소비뇽의 양을 늘리고, 부드러운 맛을 강조하려면 메를로를 더 섞는 식으로 비율을 조정합니다. 또 날씨에 따라 수확 시기가 다른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의 작황이 달라질 때가 있는데, 이럴 땐 좀 더 잘 익은 품종을 더 많이 사용해서 와인을 만들죠. 그래서 같은 샤토의 와인이라도 빈티지에 따라 포도 품종의 혼합 비율이 달라지는 것은 아주 흔합니다.

예를 들어 샤토 달마이약(Chateau d'Armailhac)은 보통 와인을 만들 때 까베르네 소비뇽의 비율이 50%가 넘지만, 1998년에는 9월 말에 큰비가 내려서 수확하지 못한 까베르네 소비뇽의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기 전에 수확을 끝낸 메를로를 38%, 카베르네 프랑을 20% 넣고 까베르네 소비뇽은 42%만 넣어서 와인을 만들었죠. 그러나 날씨가 좋아서 모든 품종의 상태가 좋았던 2000년에는 까베르네 소비뇽을 58%, 메를로를 42% 넣어서 와인을 만들었죠. 두 품종의 상태가 워낙 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선지 까베르네 프랑은 아예 빼버렸답니다. 이처럼 블렌딩 와인의 품종 비율은 포도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요'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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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블렌딩 와인의 포도 품종과 비율

블렌딩에 사용하는 포도 품종과 비율은 지역별로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보르도 메독 지역에선 전반적으로 까베르네 소비뇽의 비율이 높지만, 지롱드강 건너편의 쌩-테밀리옹(Saint-Emilion)에선 메를로와 까베르네 프랑을 주로 사용해서 와인을 만들죠. 까베르네 소비뇽은 많이 넣지 않으며 심지어 사용하지 않기도 합니다. 메독의 주연급 품종이자 세계적인 포도가 강 건너편에서는 조연으로 굴러떨어지다 못해 출연조차 못 하는 상황인 겁니다. 까베르네 소비뇽의 굴욕이라고나 할까요?

프랑스의 남부 론 지역에서도 블렌딩 와인을 많이 만듭니다. 이곳은 법적으로 보르도 보다 훨씬 많은 품종을 섞을 수 있어서 매우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진 와인이 나옵니다. 그러나 보통 그르나슈(Grenache)와 시라(Syrah)를 주로 넣고 다른 품종을 조금 넣어서 탄닌과 향을 보완하는 와인이 많죠.

 

 

칠레, 호주, 아르헨티나 같은 이른바 신세계(New World) 와인들은 보통 하나의 품종으로 와인을 만듭니다. 유럽보다 기후가 좋고 매년 날씨 차이가 크지 않아서 양조용 포도가 잘 익으므로 한 가지 품종만 사용해도 충분히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구세계와 마찬가지로 여러 품종을 섞어서 만드는 와인도 많은데 이런 와인은 하나의 품종으로 만든 것보다 풍미가 더 복합적인 편입니다.

호주는 쉬라즈(Shiraz)가 잘 자라서 쉬라즈를 기본으로 다른 품종을 섞는 일이 많습니다. 좀 더 강한 느낌을 주려고 까베르네 소비뇽을 넣거나 부피감과 부드러움을 강조하려고 메를로를 섞기도 하죠. 레드 와인에 신선한 맛을 더하려고 청포도인 비오니에(Viognier)를 섞기도 하는데, 이 방법은 프랑스 북부 론의 꼬뜨 로티(Cote Rotie)에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호주산 쉬라즈-비오니에 블렌딩 와인인 얄룸바입니다
(대표적인 쉬라즈-비오니에 블렌딩 와인인 얄룸바입니다)

칠레는 특산 포도인 까르메네르(Carmenere)를 블렌딩 와인의 기본 품종으로 쓰는 일이 많고, 좀 더 대중적인 적포도인 까베르네 소비뇽을 기본 품종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칠레] 달과 같은 변화가 기대되는 - Antiyal Kuyen 2007

● 생산 지역 : 칠레 > 센트럴 밸리 리젼 > 마이포 밸리(Maipo Valley) ● 품종 : 시라(Syrah) 47%,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43%, 까르메네르(Carmenere) 10% ● 어울리는 음식 : 소고기와 양고기 등심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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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그대의 별명은 돌쇠! - Vina Tarapaca Terroir El Tranque 2007

● 생산 지역 : 칠레 > 센트럴 밸리 리젼 > 마이포 밸리(Maipo Valley)● 품종 :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60%, 메를로(Merlot) 40%● 어울리는 음식 : 직화로 구운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등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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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도 특산 포도인 말벡(Malbec)에 여러 품종을 섞어서 와인을 만드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진하고 부드러우며 달콤하고 퇴폐적인 - Bodega Benegas Don Tiburcio 2005

● 생산 지역 : 아르헨티나 > 멘도사(Mendoza)● 품종 : 말벡(Malbec) 23%,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16%, 메를로(Merlot) 16%,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12%,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33% ● 어울리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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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의 블렌딩 와인은 특산 포도에 다른 품종을 섞어서 만들지만, 구태여 이런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다양하게 포도를 사용해서 자유롭게 만드는 와인도 종종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