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일반

[수다]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와 메를로(Merlot)

까브드맹 2018. 5. 19. 08:30

영화 사이드웨이의 포스터
(이미지 출처 : https://www.goldenglobes.com/articles/2005-musical-or-comedy-sidewa ys)

"No, if anyone orders Merlot, I'm leaving. I am not drinking any fucking Merlot!"

"아니, 누구라도 메를로를 주문한다면 난 나가버리겠어. 나는 빌어먹을 메를로는 절대 마시지 않아."

2004년에 상영된 영화 "Sideways"의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인 '마일즈'와 '잭'이 레스토랑에 들어서면서 나누는 대화 중 마일즈의 대사 부분이죠. 싸구려 메를로(Merlot) 와인에 대한 선입견이랄까, 편견이 잔뜩 묻어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이드웨이는 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았고,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감독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우리나라에선 매우 잠잠(...)한 모습을 보여준 영화입니다. 사이드웨이가 국내 흥행에서 실패한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영화 상영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가진 와인에 관한 지식이 짧았던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겁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나오는 포도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 피노 누아(Pinot Noir) 등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맛보지 못한 사람에겐 영판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세계 이야기밖에 될 수 없는 것이죠.

 

 

만약에 우리나라 사람에게 막걸리와 동동주에 관한 생각을 얘기한다면 공감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많겠지만, 미국 사람에게 얘기한다면 그게 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더구나 영화에서 마일즈가 갖고 있던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 1961 빈티지나 잭의 여자친구가 된 스테파니가 집에 보관한 와인 중에서 다른 건 다 마셔도 좋지만, 그것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리쉬부르(Richebourg)'가 언급된 부분은 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겐 흥미진진한 내용이겠지만, 와인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저 '비싼 와인'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겠죠.

드라마에 나왔다는 이유로 난데없이 조지아(Georgia) 와인이 뜨는 시대가 되었지만, 사이드웨이를 국내에서 개봉했던 2004년만 하더라도 이 영화 덕분에 와인 판매량이 늘어났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영화조차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했는데 영화 속 와인이 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리 만무하죠. 이런 걸 보면 불과 7년 차이인데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영화에 관한 스토리와 기타 관련 사항을 더 알고 싶은 분은 아래의 사이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사이드웨이

Daum영화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movie.daum.net

 

우리나라 사정이야 이랬지만, 와인을 즐겨 마시는 사람이 상당한 미국선 사이드웨이가 미친 파급 효과가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영화 속에서 마일즈가 좋아하다 못해 열광하는 포도로 언급된 피노 누아는 영화 개봉 후에 판매량이 꽤 늘어났답니다. AC 닐슨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피노 누아 와인의 판매액이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6% 늘어났고, 특히 캘리포니아의 와인 소매점과 술집을 중심으로 매출이 많이 늘어났다는군요. 반대로 그전까지는 미국에서 제일 잘 팔렸던 메를로 와인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지에서 ”어느새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던 메를로 레드 와인의 인기가 식고 있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판매량이 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드럽고 단맛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입맛이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바뀔 리 없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를로 와인 판매량이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판매량의 회복에는 아마 메를로 와인의 저렴한 가격과 피노 누아 와인의 비교적 비싼 가격도 한몫했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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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혹평을 받은 메를로이지만, 사실 메를로는 장점이 많은 포도입니다. 몇 가지 장점을 들어보면 

첫째, 와인을 만들면 풍부한 과일 향에 조금 단 맛이 나서 와인 초보자도 쉽게 마실 수 있습니다.

둘째, 토양과 기후의 특성을 덜 타는 편이라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재배할 수 있습니다.

셋째, 조생종으로 수확 시기가 빨라서 늦가을의 비와 서리를 피할 수 있으므로 안정된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넷째, 숙성이 빨라서 와인을 만든 후 4~5년 정도만 지나면 맛과 향이 무르익습니다.

다섯째, 앞의 장점과 결합해서 제법 괜찮은 와인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습니다.

여섯째, 지역별로 와인 특성이 조금씩 달라서 다양한 메를로 와인을 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레드 와인보다 한식에 잘 맞는 편입니다.

저렴한 메를로 와인은 음식과 함께 편하고 즐겁게 마실 수 있는 평범한 것이 많지만, 비싼 메를로 와인은 어떤 품종의 와인에도 뒤지지 않는 향과 무게감, 질감, 풍미를 보여줍니다. 보르도 최고의 와인이 메를로를 거의 100% 사용해서 만드는 '샤토 페트루스(Chateau Petrus)'와 92%가량 사용하는 '르 뺑(Le Pin)'이라는 사실은 메를로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또 유명한 슈퍼 투스칸(Super Tuscan) 와인인 '마제또(Masetto)' 역시 메를로로 만든다는 점은 메를로가 그저 마시기 편하고 부드럽기만 한 와인을 만드는 포도가 아니라 뛰어난 특성을 가진 포도 품종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재밌게도 사이드웨이의 주인공인 마일즈가 애지중지 보관하던 샤토 슈발 블랑 역시 메를로를 60~42%가량 섞어서 만드는 와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