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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이탈리아 와인에 대한 생각, 그리고 끼안티 끌라시코

까브드맹 2018. 4. 3. 10:55

펠시나 끼안티 끌라시코를 비롯한 여섯 가지 끼안티 끌라시코 와인의 사진

1. 이탈리아 와인이 외면 받는 이유?

최근 많이 나아졌지만, 이탈리아 와인은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 와인 애호가들은 "왜 이탈리아 와인이 인기가 없냐! 그 맛있는 와인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와인은 프랑스 와인, 많이 사는 와인은 칠레 와인입니다. 이탈리아 와인은 선호도나 판매량에서 그다지 호응이 좋은 편이 아니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국 중 하나로 프랑스와 함께 오랜 전통을 가진 이탈리아 와인이 우리나라에서 외면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특유의 신맛이라고 봅니다.

이탈리아의 레드 와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 와인으로 피에몬테(Piemonte) 지역에서 네비올로(Nebiolo) 포도로 만드는 바롤로(Barolo)와 바르바레스코(Barbaresco), 토스카나(Toscana)에서 산지오베제(Sangiovese) 포도로 만드는 끼안티(Chianti)를 꼽는데 이의가 없을 겁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맛과 향이 훌륭한 고급 와인이 많이 나오지만, 국내 소비자에게 많이 알려진 와인은 위의 세 가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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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국내 와인 시장에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보다 끼안티 와인이 많이 수입된 거로 압니다. 가격과 생산량에서 끼안티 와인이 수입과 판매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겠죠. 끼안티 와인 특유의 강한 신맛은 곧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이탈리아 와인의 첫인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게다가 끼안티에 이어 들어온 베네토 지역의 발폴리첼라(Valpolicella)와 아부르쪼 지역의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쪼(Montepulciano d'Abruzzo) 와인 역시 끼안티 못지않게 산도가 높았으므로 "이탈리아 와인=시다"라는 생각이 이탈리아 와인을 접한 소비자의 머릿속에 깊게 새겨져 버렸죠.

문제는 한국인은 신맛이 나는 술에 익숙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마시는 소주, 맥주, 양주 그리고 단맛 나는 막걸리까지 신맛이 강한 술이 있던가요? 기껏해야 산사춘 정도인데 이것도 단맛이 강해서 와인과 비교하면 신맛은 별로 강하게 느껴지지 않죠. 우리나라 사람에게 신맛이 강한 술은 영~ 낯선 존재인 겁니다. 더욱이 와인을 자주 마실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계층은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은 신맛을 싫어하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도가 강한 이탈리아 와인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 거라고 봅니다. 더구나 값싼 끼안티 와인은 산미가 다듬어지지 않아서 맛까지 날카로우니 더더욱 외면받게 되었고요.

 

 

2. 이탈리아 와인이 신맛이 강한 이유

이탈리아 와인이 신맛이 강한 것은 이탈리아에선 음식과 와인을 함께 먹는 일이 많고 음식에 토마토와 레몬, 발사믹 식초처럼 산도가 높은 재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의 신맛은 와인의 자극적인 신맛을 누그러뜨리면서 상큼하고 맛있게 느끼도록 만들어 줍니다. 만약에 와인의 산도가 너무 낮으면 음식의 신맛에 와인이 압도되는 일이 일어나죠. 그래서 신맛이 강한 음식과 마시는 와인은 산도가 비슷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와인을 이탈리아 요리와 함께 먹으면 와인도 요리도 맛있어지지만, 요리와 함께 먹기보단 와인만 마시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선 이탈리아 와인의 강한 산도가 안 좋은 쪽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최근 이탈리아 와인을 좋아하는 애호인이 늘어나고 와인을 음식과 함께 먹는 분이 늘어나면서 이탈리아 와인의 판매량이 많이 늘어났지만, 아직도 와인이 낯선 분에게 이탈리아 와인을 권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황도 끼안티 끌라시코 리제르바(Chianti Classico Riserva) 정도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값싼 끼안티 와인의 날카로운 산미와 달리 3년 이상 숙성되고 최소 1년 이상 오크통에서 둥글게 다듬어진 끼안티 끌라시코 리제르바의 산미는 아주 매혹적이고 섬세하며 군침이 돌게 하는 신맛이죠. 와인을 많이 마시지 않은 사람의 입맛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맛입니다. 산지오베제 와인에서 종종 맡을 수 있는 붉은 과일 향과 오크통에서 배인 그윽한 나무 향이 부드러운 신맛과 어우러지면서 나오는 그 맛과 향은 마치 무르익은 과일을 갈아서 마시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계속 마시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답니다. 그러니 끼안티 끌라시코 리제르바를 마셔보기 전까지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인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탈리아 와인의 신맛을 싫어하는 분이라면 꼭 한 번 끼안티 끌라시코 리제르바를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이탈리아 와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리라 확신합니다. 다만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게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