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포도 품종

[프랑스] 샤르도네 -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하얀 도화지 (재업)

까브드맹 2023. 11. 22. 23:00

샤르도네 포도와 포도잎

샤르도네(Chardonnay)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화이트 와인용 품종입니다. 와인이 보여주는 맛과 향의 다양성과 놀라운 완성도에 한 번 맛을 본 사람은 흠뻑 빠지고 마는 품종이죠. 샤르도네는 토양과 기후, 양조법과 숙성 방법 등 모든 외부의 영향을 100% 받아들여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훌륭하고 완벽한 원자재"로서 떼루아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품종이기도 합니다. 마치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하얀 도화지와 같죠.

1. 샤르도네의 특성

1) 재배하기 쉬운 포도

레드 와인에서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 차지하는 위상과 특성을 가진 화이트 와인용 품종이 샤르도네입니다. 까베르네 소비뇽이 왕이라면 샤르도네는 여왕이랄까요?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Merlot), 시라(Syrah) 같은 국제 품종은 따뜻하거나 더운 지역에서 잘 자라고, 피노 누아와 리슬링은 서늘한 지역에서 잘 자라지만, 샤르도네는 춥거나 덥거나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포도입니다. 그래서 샹파뉴(Champagne)나 부르고뉴(Bourgogne)처럼 봄 날씨가 쌀쌀하고 겨울이 일찍 오는 곳에서도 샤르도네로 훌륭한 와인을 만들 수 있고, 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한낮이 무더운 곳에서도 좋은 샤르도네 와인을 생산하죠.

샤르도네는 추위에 강해 냉해에 잘 견디고 싹이 빨리 트기 때문에 일찍 익습니다. 그래서 서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병충해에도 강하고 어디서든 웬만큼 잘 자라는 효자 품종으로 다 익었을 때 포도 숙성도가 높고 양조도 수월해서 포도 농사꾼과 와인 메이커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포도입니다. 아마 와인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거의 유일한 품종일 겁니다. 포도 농사꾼은 재배하기 편하고, 와인 메이커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어렵지 않으며, 상인 입장에선 잘 팔리는 데다가 소비자는 품질에 대해 큰 불안 없이 믿고 마실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죠. 그래서 양조학자 나딘(Nadine)은

"잘 익은 샤르도네라면 이걸 가지고 수준 이하의 와인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라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이것이 전 세계에서, 특히 신세계에서 샤르도네 와인을 만들지 않는 와이너리가 드문 이유입니다.

물론 샤르도네도 100% 완벽하진 않습니다. 태생적으로 일찍 싹이 트는 조생종이라 이른 봄에 순이 돋을 때 냉해가 잦은 곳에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부르고뉴에선 포도밭 고랑 사이로 밤새 난로를 피우는 등의 냉해 대책을 세우죠. 그러나 냉해 걱정은 샤르도네가 주는 혜택에 비하면 큰 문제가 아닙니다. 샤르도네는 피노 누아(Pinot noir) 다음으로 일찍 익어서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9월에 몰아닥치는 일기 불순을 피할 수 있죠. 그래서 햇볕이 풍부한 여름철이 짧은 지역에서도 재배하기 좋습니다. 추위에도 강해서 춥고 습한 대륙성 기후 지역이면서 연중 평균 기온이 10℃에 머물고, 겨울 날씨가 매서운 샹파뉴 같은 지역에서도 잘 견딥니다.

재배자의 의도대로 수확량이 일정하게 나오는 것도 샤르도네의 장점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고품질의 포도를 얻으려면 식재밀도를 높이거나 가지치기해서 생산량을 엄격히 통제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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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조자의 뜻을 따라주는 포도

이런 샤르도네의 가치는 양조장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샤르도네는 고급 품종이라면 당연히 있을 것 같은 "까탈스러움"이 없습니다. 품종 특성 때문에 한정된 스타일의 와인만 만들 수밖에 없는 다른 포도와 달리 자신만의 맛과 향을 가진 와인을 만들려는 와인 메이커의 시도를 잘 받아주죠. 그래서 양조 방법에 따라서 다양한 변형이 가능한 품종입니다. 귀족적이고 우아한 품위를 가진 부르고뉴의 그랑 크뤼 와인, 열대 과일과 오크 풍미가 가득하고 발랄한 느낌을 주는 신세계 와인, 작고 세련된 거품과 오랜 숙성을 통한 깊은 풍미를 보여주는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샴페인 등이 샤르도네가 연출하는 다양한 모습입니다.

3) 오크와 친화력이 있는 포도

샤르도네는 특히 오크통 발효와 숙성을 통해 풍미가 더욱 복합적으로 발전하는 특성을 가졌습니다. 샤르도네 와인은 오크 향과 탄닌 성분을 받아들여 과일과 바닐라가 녹아든 것 같은 복잡미묘한 향을 풍깁니다. 이런 작용은 입에서 느끼는 질감을 더욱 세련되고 조화롭게 해주죠. 오크 숙성하지 않은 샤르도네 와인은 숙성 가능 기간이 5년 정도로 짧지만, 오크 숙성하면 10년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도 오크 숙성의 장점입니다. 오크 숙성하지 않은 샤르도네 와인은 초록빛이 살짝 도는 레몬색이 많지만, 오크 숙성하면 주로 진한 레몬색과 황금색을 띱니다. 오크 숙성하지 않은 샤르도네 와인은 미디엄 바디 정도이지만, 오크 숙성하면 풀 바디 와인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4) 스파클링 와인의 주재료

샤르도네는 샴페인으로 대표되는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포도로 널리 사용됩니다. 일반 샤르도네 와인을 "소나타"로 비유한다면 샴페인은 "교향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피노 누아나 피노 뮈니에 같은 흑포도와 함께 발포성 와인을 만드는 블렌딩에 참여하여 와인에 특유의 귀족적 활기와 장기 숙성 능력을 부여해 주죠. 다른 포도를 섞지 않고 샤르도네만 사용하여 만드는 샴페인도 있습니다. 라벨에 'Blanc de Blancs'이라고 쓰인 샴페인이 그런 것들이죠. "하얀 것에서 나온 하얀 것"이라는 뜻입니다.

 

 

2. 샤르도네의 역사

샤르도네의 원산지는 프랑스 부르고뉴입니다. 예전에는 피노 누아 계통에 속한 포도라고 알려졌지만, 유전학적 연구 결과 피노 누아와 구애 블랑(Gouais Blanc)이라는 중세 시대에 많이 재배하던 포도의 교배종이라는 것이 밝혀졌죠.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마꼬네(Mâconnais) 쪽에 샤르도네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습니다. 샤르도네가 이 마을의 이름을 딴 것인지, 아니면 마을이 샤르도네 포도의 이름을 딴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3. 샤르도네 재배지

고급 품종이지만 재배지를 가리지 않는 소탈한 성격 덕분에 전 세계에서 널리 재배합니다. 특히 신세계 와인 산지를 중심으로 재배지가 빠르게 늘고 있죠. 기후와 토양, 와인 생산자의 양조 철학, 와인 시장의 트렌드에 따라 샤르도네 와인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1)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1970년대 이후 나름대로 "캘리포니아 샤르도네" 스타일을 만들었습니다. 70년대 초의 높은 알코올 도수에 새 오크를 과다하게 사용한 "힘 있는" 스타일에서 더 은은하고 부드러우면서 힘과 볼륨감에 기초한 스타일로 바뀌었죠. 그래서 미국산 샤르도네 와인은 부드러우면서도 오일리(Oily)하여 마치 녹인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많습니다. 향을 강하게 하려고 주로 조그만 오크통에서 숙성하며, 바닐라와 토스트, 버터 스카치 풍미가 강하죠. 최근에는 "오크 폭탄"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려고 오크 숙성을 절제하면서 부르고뉴 와인에 좀 더 가까운 맛과 향을 가진 샤르도네 와인도 나옵니다.

2) 호주와 뉴질랜드

호주에서는 태양의 기운이 가득한 "호주산 샤르도네"를 맛볼 수 있습니다. 저온 발효 방식을 사용해 드라이하면서 견고한 맛이 나는 세계적인 수준의 샤르도네 와인을 생산하죠. 호주산 샤르도네 와인은 꾸밈 없이 맛이 솔직하며, 오크를 사용해서 오크와 버터 스카치, 토스트 풍미가 나오는 것과 오크를 쓰지 않고 과일 향을 좀 더 강조한 것, 이렇게 두 종류의 와인을 생산합니다. 레이블에 적힌 "언우디드(Unwooded)"란 표시를 통해 마셔보지 않아도 두 종류의 와인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호주에서 개발한 오크 칩을 사용한 오크 터치. 싼 가격에 오크 풍미 가득한 샤르도네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호주에서 개발한 오크 칩을 사용한 오크 터치. 싼 가격에 오크 풍미 가득한 샤르도네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뉴질랜드에서도 저온 발효법으로 샤르도네 와인을 생산하며, 과일과 나무 열매 향이 진한 와인이 나옵니다.

3) 칠레

칠레산 샤르도네 와인은 미국이나 호주와 비슷하지만, 좀 더 단순하고 과일 향이 많습니다. 오크 숙성을 덜 한 샤르도네 와인은 화사한 열대 과일 향과 함께 매우 마시기 편하고 즐거운 느낌을 주죠. 칠레산 샤르도네 와인은 대중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고급 샤르도네 와인은 품질이 상당합니다.

4)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샤르도네 와인은 상등품 포도를 혼합해서 양조하기에 제때 마시면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기후가 쌀쌀한 우코 밸리(Uco Valley)에서 샤르도네를 많이 재배합니다. 재배량은 아르헨티나의 특산 청포도인 토론테스(Torrontés)에 이어서 두 번째이죠. 아르헨티나산 샤르도네 와인은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나며, 까테나 자파타(Catena Zapata) 같은 와이너리의 샤르도네 와인은 품질도 가격도 상당합니다.

 

 

5) 프랑스

신세계의 샤르도네 와인은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에스파냐의 샤르도네 와인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그러나 샤르도네의 가장 귀족적인 구현은 부르고뉴 블랑(Bourgogne Blanc)입니다. 이들만큼 섬세하고 우아하며 동시에 힘찬 복합미를 겸비하는 와인은 드물죠.

특히 샤블리(Chablis)와 꼭똥-샤를마뉴(Corton-Charlemagne), 몽라쉐(Montrachet), 뫼르소(Meursault) 등의 유명 생산지가 있는 꼬뜨 드 본(Cote de Beaune) 지역, 뿌이 퓌세(Pouilly-Fuisse)가 있는 마꼬네의 샤르도네 와인은 드라이한 샤르도네 와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 지역들의 화이트 와인은 품질에 놀라고 가격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죠. 그만큼 가격도 비싸고 맛도 뛰어납니다.

지역마다 와인의 맛과 향에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섬세하고 우아하며 동시에 힘찬 복합미를 겸비하죠. 북쪽의 샤블리 와인이 높은 산도와 싱싱한 과일 향으로 직선적이라면 남쪽의 꼭똥 샤를마뉴와 몽라쉐 와인은 더욱 풍부한 질감과 나무 열매 향이 섞인 복합적인 풍미를 지녀 관록 있는 여왕 같은 느낌입니다. 특히 몽라쉐는 세계 최고의 위대한 화이트 와인으로 불리며, "고고한 기품과 화려함을 두루 갖춘 장엄한 화이트 와인"이라는 찬사는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한 입만 마셔보면 틀린 것이 아니란 걸 느낄 겁니다. 19세기 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도 "몽라쉐는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마실 것'" 을 권고했죠.

르무아스네 페레 에 피스의 몽라쉐 와인 라벨

샹파뉴에서는 위에 언급했듯이 피노 누아, 피노 므니에와 함께 샴페인에 사용하는 3대 주요 포도 중 하나입니다.

북서쪽의 루아르 밸리(Val de Loire)와 남쪽의 랑그독-루씨옹(Languedoc-Roussillon)에서도 샤르도네 와인이 나오지만, 다른 지역만큼 유명하진 않습니다.

4. 샤르도네 와인의 향

샤르도네 와인은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여운이 길게 남는 다양한 향이 나옵니다. 사과와 레몬, 배, 시트러스 같은 과일 향의 특성을 잘 갖췄고, 오크 배럴 숙성을 통해 오크와 바닐라, 버터 향이 추가되죠. 역시 국제 품종인 리슬링과 소비뇽 블랑과 오크 숙성에 적합하지 않지만, 샤르도네는 오크 숙성을 거치면서 향이 더욱 복합적으로 발전합니다. 오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샤르도네로 훌륭한 와인을 만들 수 있으며 이런 와인은 라벨에 “unwooded”나 “unoaked” 같은 표시가 적힌 것이 많습니다.

샤르도네 와인의 향은 오크 숙성을 하지 않은 향, 강건한 향, 싱싱한 향, 오크 숙성을 한 향 등으로 나뉩니다. 오크 숙성하지 않은 와인은 사과와 시트러스, 복숭아, 서양배, 파인애플, 멜론, 바나나 같은 과일 향이 주로 나오지만, 오크 숙성을 약간 한 것은 나무 열매와 오트밀 등의 가벼운 향을 풍기고, 오크 숙성을 많이 한 것은 버터와 열대 과일, 견과류, 볶은 견과류, 코코넛, 토스트, 커피, 바닐라 같은 고소하고 진한 향과 버터 스카치처럼 농후하고 강렬한 향이 올라옵니다.

샤르도네는 재배지의 기후에 따라서 와인 향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서늘한 곳에선 시트러스와 사과, 배, 오이 같은 식물성 향이 주로 나오고, 온화한 곳에선 감귤류와 멜론, 복숭아 향이 나옵니다. 더운 곳에선 복숭아와 바나나, 파인애플, 심지어 망고와 무화과 같은 열대 과일 향이 나오죠.

 

 

양조법에 따라 생기는 향과 맛도 있습니다. 양조법에 따른 향과 맛을 적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젖산 발효(Malo-lactic fermentation)

이스트의 작용으로 사과산이 부드러워지고 유제품 향이 납니다.

2) 쉬르 리(Sur lees), 또는 바토나쥬(Bâtonnage)

이스트의 잔해인 리(Lees)와 오랫동안 접촉하면 부드러운 질감과 풍부한 맛이 생깁니다.

3) 오크통 숙성

오크 성분이 배어들면서 토스트, 견과류와 바닐라 풍미가 나옵니다.

5. 샤르도네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샤르도네 와인의 장점은 거의 모든 서양 음식과 대단히 잘 어울린다는 겁니다. 일반 샤블리 와인이나 오크 숙성하지 않은 신세계 샤르도네 와인같이 바디가 가벼운 것은 생선과 해산물, 연성 치즈, 샐러드처럼 가벼운 음식과 잘 어울립니다. 고추나 마늘처럼 매운 양념이나 토마토나 시트러스같이 신맛이 강한 양념을 넣은 음식도 잘 맞죠. 동양의 매콤한 해산물 요리도 좋습니다. 리슬링이나 소비뇽 블랑 와인과 마리아쥬가 비슷합니다.

오크 숙성해서 버터 향을 진하게 풍기는 풀 바디 샤르도네 와인은 파스타와 피자, 닭고기 같은 백색육, 경성 치즈와 어울리며, 부위와 조리법에 따라 돼지와 소고기 요리에 맞을 때도 있습니다. 양념이나 소스도 버터나 크림, 겨자, 버섯 등 묵직하고 진한 것이 좋죠.

잘 구운 생선이나 맛이 진한 버터나 크림 소스를 얹은 연어와 농어 스테이크를 오크 숙성한 샤르도네 와인과 함께 먹으면 아주 맛있습니다. 소스가 진할수록 와인의 오크 향이 더욱 진하게 느껴집니다